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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에 예술이 피었네

2012-01-02 2012년 1월호

 


뿌리 깊은 나무에
예술이 피었네


음악으로 세상 빚 탕감하는 최불휘

 

글 유동현 본지편집장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이름, 참 별나다. ‘최불휘’ 라는 이름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고집’이었다. 그 느낌이 아주 세게 왔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반복해서 이를 되내이며 남동구 간석동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름만큼이나 외모도 튄다.
“부모님은 항렬 따라 ‘도열’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 이름으로 살았고 그 이후엔 ‘불휘’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름을 자작(自作)해서 고쳤다. 그 이름만 있는 게 아니다. 한때 그림도 그리고 시인으로 등단을 했을 땐 ‘예촌’이란 이름을 썼다.
여러 갈래로 살아왔지만 최불휘(58)의 뿌리를 따라 내려가 보면 그 끝에 음악이 있다. 노래가 좋아 고등학교 졸업하고 당대의 기라성 같은 성악가 오현명, 박성원을 무작정 찾아갔다. 수업료를 낼 만큼 여유롭지 못해 어깨 넘어 귀동냥 하듯 배웠다. 그러던 중 일본 동경 YB합창단 객원지휘자 제의를 받고 얼떨결에 데뷔를 했다.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길로 보따리를 싸서 본고장 독일로 건너가 1년 6개월간 오선지와 씨름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맨하탄 유스오케스트라 등 십여 개의 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이끌었다. 그리곤 뮤지컬 장르에 또 하나의 뿌리를 내린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황태자의 첫사랑’ 등을 한국 초연으로 무대에 올린다. 내친김에 극단 ‘민네’의 상임연출자로 자리를 옮겨 연극 ‘신의 연출’을 음극(音劇)이란 실험적 공연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근데 마음이 허하다. 예술이 채워주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때 십정동의 신명보육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악기는 있는 데 선생님이 없단다. 겨우 소리 내는 법을 가르쳤는데 덜컥 청와대에서 초청장이 왔다. 악기 잡은 지 3개월 만에 대통령 앞에서 연주를 했다. 삑삑 소리만 냈는데 모두들 감동 먹은 모습이었다. 
최불휘는 이런 봉사활동을 ‘빚 탕감’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큰 채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 재능기부를 하면서 그 허한 마음도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일수 찍듯 하루하루 빚을 갚으면서 뿌리 깊은 그의 나무에는 꽃 좋은 열매가 많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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