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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빈소총 탄약통 돈통으로 활용
카빈소총 탄약통 돈통으로 활용
글. 김윤식_시인 사진. 홍승훈_자유사진가

금속금고_일제시대
금고도 필경은 근대 개화 문물의 하나였을 터인데도 그것이 일상에 흔히 쓰이고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어서인지 그에 관련한 별다른 기록이나 사연을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금고가 전해진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 또 우리 인천에는 어느 때, 누구에 의해, 어떤 식의 금고가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금고는 문자 그대로 ‘금’을 넣는 ‘곳집’ 즉 ‘곳간이나 창고’를 뜻하는 말이다. 물론 손금고 같은 소형 금고도 있기는 하지만 말의 본뜻이 이러하다는 것이다. 금은 또 실제의 금뿐만 아니라 현금과 채권, 귀금속 같은 보화(寶貨)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니, 금고는 아무리 보아도 일반 서민용은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고라는 단어조차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금고는 손금고서부터 100㎏이 넘는 육중한 몸매의 철제 금고 등 다양하다. 웬만한 회사 경리부서에서부터 전당포, 은행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것은 방 전체가 금고인 ‘금고실’이다. 전당포 주인을 제외하고 금고를 ‘일상에 흔히 쓸 수’ 있는 개인은 최상위 부자 계층뿐으로 금고 하나쯤 자기 집안 깊숙한 곳에 모셔 두고 있을지 모른다.
인천에 어떤 형태의 금고든 금고가 전래된 것은 개항과 동시에 들어온 외국 무역상사와 은행 등 금융기관의 개업 때문일 것이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에는 벽장 속의 돈 궤짝이나 땅 속에 묻어 둔 항아리밖에 없었다. 6·25 후 흘러 다니던 카빈소총 탄약통이 한때 중앙시장 비단 가게 주인마님의 금고 역할을 하기는 했다.

흰색나무금고_6~70년대
개항 이후 도입되어 지금까지 인천에 남아 있는 근대식 금고는 현재 중앙동 1가에 있는 구일본제일은행지점(舊日本第一銀行支店) 부속 금고와 중앙동 2가의 구일본제18은행 금고가 대표적이다. 특히 일본은 인천에 해관(海關)이 설치되던 1883년, 관세를 독점 관리하기 위해 구일본제일은행부산지점 인천출장소를 개설했는데, 세금과 주요 통관 서류를 보관할 금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현존 건물의 금고실은 본관과 함께 1899년에 지어졌다. 따라서 오늘날 남아 있는 금고는 출장소로 개점했던 초기의 금고가 아닐지도 모른다. 개설 16년 만에 짓는 새 지점 건물이니 틀림없이 확장해 지었을 터이고, 금고도 거기에 맞춰 규모가 큰 새 것으로 교체 설비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1890년 10월에 개점한 구일본18은행지점(舊日本一八銀行支店)과 1892년 7월에 개점한 구일본제58은행지점(舊日本五八銀行支店) 금고가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자는 현재 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으로 변모했고, 후자는 사건물이어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특이한 것은 제일은행과 58은행은 본관 밖에 별도의 금고실을 지었는데 18은행은 내부에 설치한 점이다. 외국 무역상사로는 개항과 함께 달려 들어온 독일계 세창양행(世昌洋行)이 외국은행 대리점, 보험업, 고리대금업 등을 한 것으로 보아 규모 있는 금고를 가졌었을 것이고 미국계 타운센드상회 역시 은행대리점을 병행했으니 든든한 금고를 비치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곳 다 기록이든 흔적이든 남은 것이 없다. “인천시청 뒷거리 첫 모퉁이에 서 있는 볼품 있는 흰 2층 양관으로서 초석(礎石)에
H.S.B.C. 1898년 8월이라고 새겨져 있고 또 1층 안에 굉장히 큰 금고가 있어서 이채롭다. 1896년 10월 인천지점을 개설한 ‘홈·링거 양행(Holme Ringer & Co.)은 그 본점을 일본 나가사키’에 두고 있는 영국계 상사로서, 당초에는 현 인천시 해안동 모처에 임시로 사옥을 가졌다가 1898년 8월에 신사옥을 건축하였는데, 전기 H.S. B.C.라 함은 홍콩상하이(Hongkong & Shanghai Bank Corporation) 인천지점의 영문 첫 자를 떼어 표시한 것이므로, 큰 금고가 있게 된 연유도 스스로 해명되리라고 믿는다.”
고 최성연(崔聖淵) 선생의 저서 『개항과 양관 역정』에 보이는 구절인데 금고에 대한 언급으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후일 전란(戰亂)에도 멀쩡했던 이 양관을 부술 때 금고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서 ‘인천시청 뒷거리’는 지금 중구청 뒤편 모 모텔과 한식 음식점이 있는 터전을 말한다.
대형금고_일제시대
금고는 귀중품이나 서류를 아주 은밀하게 보관하는 것이 그 근본 쓰임이어서 승인받은 극소수의 관계자 외에는 일반의 접근이 어려운 데다가 그에 얽혀 무슨 큰 사건이 터지지 않은 한 금고 자체가 화제가 될 이유가 없고, 또 서민의 삶과는 직접 관련을 가지지 않은 까닭에 일상에 아무런 일화를 남기지 않은 것이다. 굳이 찾는다면 과거 일인(日人)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기 위해 세운 전라북도 군산 소재 시마타니 금고 같은 것이 그나마 이야기 거리가 될는지 모른다.
별난 역사, 별난 물건 시리즈에 게재된 금고 관련 물건 및 사진은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근대박물관(관장 최웅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희귀한 근대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 76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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