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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현미경으로 인체 신비 확인

2012-04-05 2012년 4월호

별난 물건, 별난 역사 | 과학 문물

 

구한말 현미경으로 인체 신비 확인


글. 김윤식_시인   사진. 홍승훈_자유사진가

 

21일이 과학의 날이니 이번 4월호에서는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과학 문물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래로 우리 조상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 정신은 경주 첨성대가 상징하는 천문학, 역학(曆學), 목판 인쇄술의 발명,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 등 찬란한 것이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천문학 연구기관인 서운관(書雲觀)을 설치해 혼천의(渾天儀), 앙부일구(仰釜日晷), 자격루(自擊漏), 측우기 등을 만들어 백성들의 실생활 편리 도모와 농업 생산을 크게 이롭게 했다.
과학 문물 중에는 1603년에 들어온 리치(Ricci,M.)의 「세계지도」가 최초로 조선 학자들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했다. 이어 1631년에는 망원경과 자명종, 서구의 천문, 지리학서 등이 도입되는데 『성호사설』을 쓴 실학자 이익(李瀷)은 ‘공자(孔子)가 다시 태어나도 서양과학을 수용하리라’며 그가 접한 서양 과학을 높이 평가했다. 또 실학자 홍대용(洪大容)은 서양과학서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지전설(地轉說)을 생각해 내었고, 정약용(丁若鏞)은 빛의 굴절을 이해하여 렌즈와 함께 원시, 근시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 놓았다.
1881년 청나라 영선사(領選使)로 갔던 김윤식(金允植)은 천문, 지리, 수학, 물리, 화학, 항해, 증기기관, 채광, 야금, 화약 등 각종 과학기술서적 53종을 수입해 왔고, 유길준(兪吉濬)은 1895년 『서유견문(西遊見聞)』을 통해 서양의 문물, 제도를 소개했다.
근대 과학기기인 ‘망원경’은 천리경(千里鏡), 혹은 원시경(遠視鏡)이라고도 불렸는데 1631년에 부연사(赴燕使) 정두원(鄭斗源)이 북경에서 서양 선교사 로드리게스(Rodriguez J.)로부터 기증받아 가지고 돌아온 것이 최초의 도입이다. 천체망원경으로는 인천에 있었던 총독부관측소(總督府觀測所)의 지름 6인치(15cm) 굴절망원경이 최초였다.
아주 훗날의 일이지만 망원경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1902년 12월 17일 오후 4시 30분에 인천에 주재하던 가등(加藤)이라는 자가 자기 나라 ‘임(林) 공사’에게 내장원경(內藏院卿)을 지낸 친러파 대신 이용익(李容翊)의 동태에 관해 감시 보고 전문(電文) 내용이 전한다.
“러시아 군함 탑승 목격 확인 건”으로 되어 있는 이 전문은 “이용익이 러시아 군함에 탄 것은 그를 알아보는 당관(當館) 소속 산내(山內) 순사가, 그가 러시아 공사와 함께 군함의 소형 증기선으로 갈아타는 것을 목격하고, 더욱이 그 소형 증기선이 그대로 러시아 군함으로 돌아가는 것을 망원경으로 확인한 것이므로 확실함.”이라며 망원경 확인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를 몹시 견제하고 있던 터라 이렇게 한러 관계에 예민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나침반은 2000여 년 전, 중국에서 발명된 것으로 사남(司南)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기를 띤 ‘천연 자석을 국자모양으로 깎아 매끄럽고 광택나는 석판이나 청동판 위에 올려놓으면 저절로 움직여 항상 국자의 손잡이는 남쪽을, 우묵한 국자 머리 부분은 북쪽을 향했는데, 학자들은 중국인들이 북극성과 나란히 북두칠성이라는 별자리에 대한 애정 표시로 일부러 국자 모양을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침반은 작동 원리에 따라, 지구의 자기성(磁氣性)을 이용하여 자침으로 방위를 지시하는 자기나침반과, 지구의 자전성(自轉性)을 이용하여 고속회전의 자이로로 지북성(指北性)을 갖는 자이로나침반의 두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자기나침반 외에도 광복 이후 고속 회전하는 자이로 축에 추를 달아서 지구 자전축을 지시하게 한 자이로나침반이 도입되어 현재 대형선박 등에 사용하고 있다.
현미경은 한말에 서양문물과 함께 도입된 것으로 보는데, 1866년 최한기(崔漢綺)가 지은 『신기천험 身機踐驗』에는 그가 청나라에 갔을 당시 그곳에서 현미경으로 남성의 정자(精子)를 보았다는 희한한 내용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실제 현미경의 도입이 한말 때보다 훨씬 전일 가능성이 있다.
지구의(地球儀)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우 1267년에 아라비아에서 가져온 모형에 관한 기록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중국 천주교계의 학자로 알려진 황비묵(黃斐默)의 『정교봉포(正敎奉褒)』에 ‘여지구(輿地球) 1대’ 운운하는 구절에서 그 도입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인즉 인조 때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 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1645년 봄 ‘여지구’를 서울로 가져 왔다는 것인데 아무튼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된다. ‘여지구’는 바로 지구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과학기기가 있으나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 등이 확실하지 않아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다.

 

 

 

별난 역사, 별난 물건 시리즈에 게재된 과학문물 관련 물건 및 사진은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근대박물관(관장 최웅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희귀한 근대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 76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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