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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살아지다
골목 살아지다
인천의 골목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풍파에 깊게 패인 도시의 주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얼굴이 변하는 것처럼 도시의 모습도 바뀐다 한 도시가 어떤 주름살과 어떤 피부 어떤 눈빛을 갖게 되는가는 전적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도시의 모습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닮기 때문이다 인천 골목만큼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는 도시도 드물다
글·사진. 유동현_본지 편집장

십정동 2010
오래된 골목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젖가슴이 생각난다. 자식들에게 다 빨리고 축 늘어진 젖 모양처럼 도심 속 골목은 그렇게 퇴락한 채 겨우 연명하고 있다. 엄마의 그 젖무덤에는 ‘틈’이 있었다. 우린 그 틈에서 나오는 따스한 온기와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집과 집이 만들어낸 틈, 골목. 골목은 우리를 낳았고 키워줬다. 한 집, 두 집이 모여서 만들어낸 공간인 골목에는 개인, 가족, 동네 그리고 도시의 크고 작은 내러티브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로 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의 첫 줄이 된다.
인천의 골목은 개항 이후 파란만장했던 도시발전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바다가 열리자 언덕바지 양지 바른 곳에 다다미방 일본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한쪽에는 하루 종일 춘장 볶는 냄새가 진동하는 중국 동네가 생겨났다. 이어 항구 막노동 일자리를 쫓아서 올라 온 팔도 사나이들은 고향의 식솔과 친지들 까지 불러들여 한동네에서 함께 살게 된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그리고 이북 말투를 사용하는 골목들이 하나 둘 만들어졌다.
6·25 전쟁이 터졌다. 인천은 전쟁통에 밀려들어 온 피란민에게 또 다른 거처를 내준다. 그들 대부분은 산등성이나 구릉지에 솥단지를 걸면서 달동네 풍경을 만들어 냈다. 산 반대편에는 진한 향수 풍기는 미군동네가 생겨났고, 한쪽엔 나병환자들이 닭을 치고 천형(天刑)을 극복하면서 삶의 끈을 놓지 않던 골목도 형성됐다. 이러한 골목들은 인천의 과거, 그리고 엄연한 현재의 사진첩을 구성하는 소재들이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내쉰 공기가 만들어낸 기억과 시간이 훑고 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동안 인천은 ‘반달족’의 침입을 받은 것처럼 곳곳이 무참히 파괴당하는 모습이었다. 재생사업이란 이름 아래 어제 보았던 골목이 불도저의 삽날 아래 하루아침에 사라지곤 했다. 인천의 골목은 추억을 지나 ‘역사’로 가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다시 골목을 찾고 있다. 도시의 속도에 싫증나고 밀려난 사람들이 ‘영원한 노스탤지어’ 엄마의 젖무덤을 그리워하듯 안식과 치유를 위해 하나 둘 퀴퀴하고 눅눅한 골목길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골목은 ‘힐링(Healing) 캠프’다. 이제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와 함께 ‘살아’지고 있다.

수인역 2008

십정동 2011
골목, ‘살아’지다 展
장 소 미추홀도서관 1층 갤러리
기 간 5월 16일(수)~6월 3일(일)
오프닝 5월 16일(수) 오후 5시
작가(유동현)와의 대화 5월 22일(화)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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