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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영화학당, 공책 연필 사용
1892년 영화학당, 공책 연필 사용
글. 조우성_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사진. 홍승훈_자유사진가

▲ 먹통 조선말기(백동으로 제작),상감기법으로 글과 그림 조각
개항 전까지 명맥을 이어 온 인천의 교육기관은 몇몇 향교와 서당이 고작이었다. 이 중 향교는 도호부의 관할 하에 학동을 가르쳐 왔으나, 1894년 고종황제가 과거제도를 폐지하자 예로부터 해왔던 문묘 향사(享祀)에 주력하면서 교육기관으로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일반 백성들의 자제를 교육시킨 것은 사학(私學)인 서당이었다. 수학 연령은 8, 9세에서 15, 16세까지 다양했지만, 입문서는 ‘천자문’이었다. 훈장이 ‘하늘 천, 따 지’ 하고 읽으면, 학동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 읽는 소리가 온 동네에 합창처럼 낭랑하게 퍼졌다고 한다.
댕기머리들이 ‘천자문’을 다 떼고 나면, 훈장이 노고를 치하하고, 글을 처음 배운 학동들을 격려하기 위해 떡 등을 해 가지고 와 책거리를 했다. 그 후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 독서의 폭을 넓혀 갔는데, 당시 훈장의 교수법은 온 세상사를 넘나드는 ‘전인적 교육’이었다.
학습의 첫 과정은 아무래도 ‘읽기’와 ‘쓰기’였을 것이다. ‘읽기’야 입으로 소리내면 그만이지만, ‘쓰기’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종이 한 장을 금쪽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엔 ‘공책에 하늘 천 자 100번 써 오기’ 같은 고생스러운 숙제가 있을 수 없었다.
공책과 연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학동들은 어떻게 글씨를 익혔을까? 대나무 붓으로 일정한 크기로 만든 ‘사판(沙板)’에 글씨를 썼다 지우거나, 붓에 먹물 대신 물을 적셔 ‘나무 서판(書板)’ 위에 썼다가 마르면 다시 쓰는 ‘경제 문구’를 활용했던 것이다.

▲ 파이로트 만년필 60년대, 은장에 용 조각
학동들이 연필과 공책을 비로소 접하게 된 것은 개화기 이후였다. 문방사우 곧 붓, 벼루, 연적, 종이를 다 갖추었다고 해도, 갖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행여 실수라도 하면 손이며 옷이 먹투성이가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신교육의 선구인 인천 영화학당이 설립된 것이 1892년이고, 수업과목이 산수, 영어, 성경, 지구약론, 바느질 등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초기 형태의 공책과 연필을 사용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존스 목사 내외가 미국 현지인들에게 지원을 받고 있는 마당에 10여 명의 학생들에게 공책과 연필을 나누어 주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듯싶다. 더불어 산수 시간에 없어서는 안 될 분도기, 대나무 자, 삼각자, 지우개, 컴퍼스 등도 이 무렵에 소개됐을 것으로 본다.
신학문을 접하면서 문화적 충격과 생활의 혁명이 몰아닥쳤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자, 학동의 학용품도 일본이라는 굴절된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책 보퉁이 대신 등에 메는 세칭 ‘란도셀’이었다.
원래 ‘란도셀’은 네덜란드 군인의 배낭 ‘란셀(Ransel)’을 일본인들이 차용해 그리 불렀는데, 일본군이 그것을 모방해 사용했던 것을 학교에 들여와 보급시켰던 것이다. 값이 비쌌지만, 부모들은 ‘학동’들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품으로 이를 장만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학동’들이 비로소 미래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로 불린 것은 1923년이었다. 엄혹한 일제강점기였지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색동회 회원들의 노고가 결실을 본 것이다. 일제는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1939년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중단시켰으나, 광복 후 재개했다.
서당에서 학당을 거쳐, 보통학교, 국민 학교,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동안 ‘학동’은 ‘어린이’로 거듭 태어났고, 문방사우가 문구의 대명사였던 시대에서 볼펜, 샤프, 전자사전, 컴퓨터가 필수인 시대로 걸어 왔지만, ‘어린이날’만은 우리 겨레와 영원히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작가용 만년필 일제시대,오래쓸 수 있도록 대용량으로 제작 됨
별난 역사, 별난 물건 시리즈에 게재된 문구 관련 물건 및 사진은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근대박물관(관장 최웅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희귀한 근대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 76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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