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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하고 인심좋은 김치찌개백반 50년

2012-10-05 2012년 10월호


푸짐하고 인심좋은
         김치찌개백반 50년


명월집 주소는 중구 중앙동 3가 46번지, 새 도로명으로는 신포로 23번 길 41호인데, 한국마사회 실내 경마장이 들어 있는 크고 웅장한 중앙플라자 건물이 바로 옆에 있어서 초행이라도 찾기가 수월하다. 또 신포로는 넓지 않은 옛날 시가지 길인 데다가 통행인의 왕래도 많지 않아 찬찬히 간판만 살펴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흰 바탕에 ‘명월집’이라고 춤추는 듯, 흥겨운 듯 흘려 쓴 간판 글씨가 특이해서 쉽게 눈에 들어온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간판이 좀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글씨도 쓰고 디자인도 하는 작가가 밥맛에 빠져 썼다고 한다.

글. 김윤식_시인   사진. 김보섭_자유사진가

 


손님에 대한 무사공평, 넉넉한 음식 인심
인천 토박이들, 특히 중구 토박이들에게는 명월집은 어쩌다 생각나면 가끔씩 가서 백반 한 상을 받는 평범한 밥집에 불과했는데, 얼마 전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에 선정되어 전국의 대표적인 100군데 식당, 밥집들과 함께 나란히 책자에까지 실린 것을 보고는 “어!” 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또 한 부류, 그 옛날 인천시청 공무원이나 경찰국, 언론사, 각종 선사, 해운사, 그리고 경기은행 본점 등 여러 금융기관과 인천상공회의소, 부두노조 등에 몸담고 있었던 이들도 그 비슷한 감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명월집 일대가 인천 최대의 밥집 거리, 술집 거리였기 때문에, 일상 드나들던 한 군데 밥집으로 평소 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명월집이 오늘 전국의 100군데, 맛과 소문을 지닌 전통의 식당, 밥집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창업 50년 동안 자신의 원칙과 특색을 깨지 않은 한결같은 ‘백반집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백반집 정신이라는 말이 좀 과장스러울지 모르나 그 비슷한 것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책자에 실려 있다. 물론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지극히 소박하면서 단순해서 어쩌면 여느 백반집에서나 다 익히 숙지하고 있을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할 터이다.
“절대 직업이고 이름이고 묻지 말 것. 다 똑같은 밥 손님이야. 백반 한 끼 먹고 가는 손님 직업 알면 뭐하며, 이름 알면 무엇 하나? 그런 것 아는 순간 주인도 손님도 피차 불편하고 껄끄러워지는 거야. 넉넉하게 한 상 차려 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그냥 큰 보람이지. 또 없어 보인다고 해서 절대로 박대하거나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 될 일이야.”
‘손님에 대한 무사 공평한 태도와 넉넉하고 푸짐한 인심의 음식!’ 이것이 처음 밥집을 연 김복녀 사돈 할머니의 말씀이면서 곧 손님에게 밥을 내는 명월집의 태도요, 운영 원칙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수절하듯 흐트러짐 없이 50년을 지켜온 것이다. 


요즘도 김치찌개는 석유풍로에서 보글보글 끓어
거기에 명월집은 밥집으로서의 특색도 50년을 이어 왔다. 백반집이니 결국 밥이나 반찬의 특색을 말하는데, 특히 이 집 반찬이 특색을 가졌다. 반찬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김치찌개와 두툼하게 말아서 썬 달걀말이를 든다. ‘그 까짓 흔해빠진 것들을 두고서는!’ 이렇게 탓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한껏 배부른 사람들이다.
50년을 끓어 온 김치찌개는 요즘도 석유풍로 위에서 상시 끓고 있다. 적당하게 비계가 붙은, 흠씬 무른 돼지고기 점들이 묵은 김치와 어우러져 찌개를 아주 좋은 냄새와 맛으로 조화시킨다. 셀프여서 마음껏 떠다 먹을 수 있다. 요즘 식으로 무한 리필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 옆 찬장에 상추쌈과 풋고추, 고추장이 놓여 있어 역시 셀프로 제공된다. 이것들도 1년 내내 변함이 없다. 다만, 상추만은 이따금씩 값이 크게 요동을 치고 품귀해지곤 해서 배추 속으로 대치되는 경우가 있다. 나머지는 국 한 가지와 일반 찬으로 제철 나물 무침, 채소, 두부, 콩장, 맛김, 멸치볶음, 생선 무 조림 등 9가지가 나온다.
미각에도 각별한 식견을 가지셨던 고 신태범 박사께서 평소 식미(食味)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 어느 도시건 도착해 백반집, 상밥집을 가게 되면 반드시 시장 근처를 들르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그것은 입맛 까다로운 여러 상인들과 장 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시장 근처 백반집 음식이 정성스럽고 푸짐하다는 지론에 따르신 것이다.
그 말씀에 거의 맞아 들어간 밥집이 이 명월집이랄 수가 있다. 1962년에 처음 문을 열면서는 그 위치가 지금보다는 신포시장 쪽에 훨씬 더 다가간 중앙동 4가였기 때문이다. 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너 ‘푸코’라는, 제법 특이한 상호를 쓰는 바로 그 다방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사실 신포시장 쪽을 상대했다기보다는 인천항 부두 노동자들과의 거리가 더 가까운 만큼 그들을 주 고객으로 상대했다고 해야 한다.

현재 명월집을 이끌고 있는 남영심 사장

‘메리’가 ‘명월’로 바뀐 에피소드엔 웃음나와
그러나 부두 노조원들이라고 해서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장사람들처럼 까다로운 그들의 입맛을 맞추다가 오늘의 메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접하면서 곧 그 경영 원칙이 선 것이다.
오늘의 자리로 집을 옮긴 것은 그 푸코 다방 자리가 워낙 협소해서 1, 2층을 써도 더 이상 밀려드는 밥 손님을 다 맞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 곳을 물색해 보다가 중앙동 통으로는 이 집이 나와 있어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밥집이 직원이 많은 시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또한 얼마나 큰 득인가.
삶에 곡절이 없을 수 없고, 운명은 늘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게 된다. 경주에서 올라와 서울 모 회사 경리부 여직원으로 있던 남영심씨가 그런저런 운명의 곡절 끝에 3대 사장이 되어 오늘까지 18년 동안 김치찌개를 끓여 온다. 
에피소드-사장이 되어 간판을 다는데 영업감찰을 내러 갔던 사람이 그만 새로 지어 간 상호를 깜빡 잊었다는 것이다. 밥집 근처에 있는 서양인을 상대하는 바 ‘위스키 메리’와는 또 무슨 연관이 있었는데 상호를 잊은 그 사람이 입속으로 ‘위스키 메에리’ 운운했던 모양이다. 이것을 듣고는 허가를 내주는 공무원이 유식하게 대뜸 ‘명월(明月)’로 작명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메리’가 ‘명월’이 된 것이다. 백반집이라기보다 요염한 요정 냄새가 풍기는 상호의 작명은 그런 식으로 전혀 엉뚱하게 이루어졌다. 서예 하는 분은 어떤 명월을 생각하며 그런 간판 글씨를 썼는지….
‘흰밥에 국과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파는 한 상의 음식’이 백반이다. 명월집은 그렇게 50년 동안 백반을 팔았다. 100년 노포(老鋪)를 찾기가 결코 쉽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그나마 김치찌개 백반 50년이라니! 기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명월집 ☎773-7890


※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은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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