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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문학이 가슴에 스미다
가을, 문학이 가슴에 스미다
시린 하늘 수더분한 땅 빛. 문학이 가슴에 스미는 계절이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훌쩍 길을 나선다.
인천에는 강화문학관과 육필문학관, 두 곳의 문학관이 있다. 문향(文香) 머무는 그곳에서, 가만히 문인의 가슴을 그려본다.
글. 정경숙_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성환_포토저널리스트

꽃자리에 그윽히 서린 문향
강화문학관은 역사 깊은 고려궁지와 성공회성당 그리고 용흥궁의 품에 안겨 있다. 기품 있는 소나무와 목백일홍이 에두르고 있는 반듯한 건물. 현대적 풍경 속 더디고 정묵한 풍경이 오롯하다.
“이곳은 사십년 고려도읍의 터전이자 조선 오백년의 강화유수부가 자리했던 강화도의 유서 깊은 꽃자리입니다. 이 좋은 터에 피어난 강화문학관에는 사람을 사랑하고 학문과 글을 높이 산 선인들의 정신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곳을 ‘꽃자리’라 칭하며 보듬어 아끼는 이는 강화문학관의 초대관장 양태부 시인이다. 시인은 관장자리를 떠난 지금도 객을 문학관과 그 주변으로 이끌고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서는 사실 좀 낙심하였다. 주변의 아름다운 정취와 유구한 역사에 비해 문학관은 설익고 궁색했다. 1층 전시실에는 이규보, 정철, 정제두, 권필, 정인보… 강화와 인연이 깊은 문인들의 삶과 작품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유품이아닌 패널 전시물로만 그 흔적을 쫓기에 강화문학의 역사는 너무 깊고도 깊다. 하지만 20여 년 강화 땅에 살며 인문학적 가치를 전해 온 이의 설명에는 뿌듯함이 배어있다.
“많은 사람이 강화도를 역사적 의미를 지닌 전적지로만 알고 있지, 역사에 길이 남을 문장가들이 인문학적 뿌리를 형성했다는 사실은 모릅니다. 강화 가슴 깊숙이 이 땅의 자랑스러운 정신과 인문학적 전통이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층으로 오르면 현대 수필문학의 대모 조경희 선생의 삶과 문학이 펼쳐진다. 시심이 흘러넘치던 펜과 시인이 앉던 나즈막한 책상, 손수 쓴 원고 등의 유품과 지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예술작품들까지. 선생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 속 깊이 간직했던 전부를 아낌없이 내주었다. 하지만 그 큰 뜻에 비해 옹색하게 꾸며진 전시환경을 접하니 마음 한편이 쓸쓸하다.
“캄캄한 어둠만이 있는가 하면 밝은 태양과 광명이 있듯이, 천차만별의 얼굴들 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얼굴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랑할 수 있는 얼굴들이 지닌 표정의 색깔이란 막연하나마 좋은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마디로 좋은 인간성의 표현일 것이다. 인격이나 교양, 지성 등등 이라고 해도 좋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할 수 있는 인간의 진실한 의미의 표지일 것이다.” (‘얼굴’ 중에서)
그의 글은 시간을 초월해 울림을 전하는 데, 시인의 자취는 자욱한 먼지에 묻혀 늙어가고 있었다.

육필에 흠씬 배인, 시인의 마음
문향에 이끌려 강화에 온 이들이 강화문학관을 건너 다다르는 곳은 육필문학관이다. 해안도로에서 논두렁 사잇길로 가다 보면 아담한 자태의 건물이 객을 반가이 껴안는다. 선명한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쓴 그 이름, ‘육필문학관’.
노희정 관장은 어릴 적 품었던 문학의 꿈을 놓지 않고 한 다발 꽃 같은 공간을 피워냈다. 관장은 임찬일 시인에게서 시화 40여 점을 건네받은 것을 시작으로 작가의 손글씨를 하나둘 그러모아 8년째 문학관을 꾸려오고 있다.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시를 쓰는 마음이 있는 한 순수의 시대는 끝나지 않으리라. 그것이 바로 노 관장이 곧 흩어지고 사라질 아날로그 시대의 흔적들을 그토록 열심히 모으는 까닭이다.
서정주, 조병화, 김춘수, 정호승, 피천득… 이름도 향기로운 문인들이 하얀 종이에 써 내려간 글씨에는 그 마음처럼 맑고 숭고한 기운이 감돈다. ‘노희정 시인에게’. 악필이어서 남에게 자필을 남기지 않는다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짤막한 글을 본건 뜻밖의 수확이다. 김춘추 시인의 글 앞에서도 느릿하던 발걸음이 멈추어 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중에서)
살면서 문득문득 맴돌던 시구를 시인의 손끝에서 핀 글씨로 마주하니 울림이 더하다. 찬찬히 시를 음미해본다. 달보드레한 향이 마음 꽉 차게 번진다.
그에게도 김춘수 시인을 찾아갔을 때의 기억은 특별하다. 백합꽃과 펜을 사 들고 댁으로 찾아가 육필원고를 부탁했는데, 문학관 운영하는 데 쓰지 뭣 하러 돈을 썼느냐 나무라시며 ‘꽃’을 직접 써 주셨단다. 그리고 1년 후 시인은 꽃처럼 세상을 졌다. 그가 시인을 회상하며 바라보는 창 너머 노란 들판이 바람에 취해 몸을 뉘고 있었다.
노을이 내리고, 다시… 일상의 문턱을 넘는다. 문향은 문학관에만 흐르지 않았다.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 차이는 돌 한 덩이에도 문인들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가만히 문인의 가슴을 그려본다. 그 여운이 길다.

여행노트
강화문학관
가는 길 강화대교→강화군청→강화초교 입구 삼거리에서 우회전→고려궁지 방면으로 약 200m 직진, 용흥궁공원 내.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문의 933-0605
육필문학관
가는 길 초지대교 건너 우회전→광성보 입구에서 좌회전→해안도로→드라마세트장에서 좌회전→농로 진입 후 우회전. 이용 팁 육필문학관에서는 초중고등학생 대상의 전국 백일장과 초등학생 대상의 전국 시낭송회를 운영하고 있다. 시낭송회와 동시교실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전화로 예약해 참여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내년 개관
근대문학의 꽃 다시 피다
개항기 근대문화가 흠씬 배어있는 중구에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문학관이 들어선다. 인천문화재단은 오는 2013년까지 아트플랫폼 옆에 한국근대문학관을 건립한다. 문학관에는 전시실과 수장고, 자료실, 세미나실 등이 들어선다. 문화재단은 문학관을 짓기 위해 근대문학자료 1만6천800여 점을 수집했다. ‘보리피리’, ‘파랑새’ 등의 작품을 통해 한센병이라는 천형(天刑)의 병고를 애조 띤 가락으로 읊었던 고 한하운 시인의 육필원고 등 관련 자료 220여 점을 수집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재단은 아트플랫폼과 문학관이 함께 하는 교육·홍보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근대문학을 보존하고 연구해 후세에 길이 전할 한국근대문학관의 개관일이 기다려진다.
문의 인천문화재단 455-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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