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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역사의 이력서

2013-01-04 2013년 1월호

 

인천
역사의 이력서

글. 강옥엽 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누구나 각자의 이름으로 된 나름의 이런 저런 삶의 궤적을 갖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경험이라 하고, 혹자는 스펙이라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통상 이력(履歷)이라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이 공간도 ‘인천광역시’ 라는 이름과 함께 다양한 역사의 이력서가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인천의 이름은 비류의 미추홀(彌鄒忽)로부터 출발하여 매소홀(買召忽), 소성현(邵城縣), 경원군(慶源郡), 그리고 조선 태종 13년(1413) 10월 15일에 이르러 인천군으로 불려졌다. 따라서 웬만한 ‘인천인’이라면 비류의 미추홀로부터 2000년,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올해가 B.C.18년으로부터 기산하여 2030년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인천’ 이름의 탄생으로 보면 600년이 되는 시점이 2013년이라는 사실도 인천지역사회에는 널리 이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이름의 변화처럼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날 인천광역시로, 또 대한민국의 제3의 도시로 자리한 현재, 인천광역시에는 280만 인구를 품고 있는 10개의 군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군구에도 그 지명에 따른 나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 군구의 지명이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졌음에도 지금은 ‘인천광역시’라는 범주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인천광역시라는 행정단위에 의해 인위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지역이 ‘인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한, 그 범주 안에 생활하는 우리 인천인들은 2000년이 넘는 역사와 지명 탄생 600년이라는 역사성과 공간적 공통점을 정신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근래 인천지역사회의 화두는 단연 GCF 사무국 송도 유치,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최에 따른 여러 제반사항 준비 문제다. 명실상부하게 국제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인천으로서는 세계 각국에서 오는 방문객들에게 적어도 인천이 어떤 도시인지? 그리고 ‘인천적’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아울러 인천 정체성 찾기의 원천적 자료는 결국 인천의 역사와 문화의 이력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 정명(定名) 600년’으로 상징되는 이러한 인천의 역사적 이력을 기억하기 위해 인천광역시에서는 2013년을 기해 『인천광역시사』 편찬을 비롯하여, 사업추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고 학술대회, 사진전시회, 합창제, 인천역사 퀴즈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인천은 2013년 전국체전과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최의 과제를 안고 있다. 행사를 치뤄야 할 입장에서는 경기장 시설을 마련해야하는 재정적 여건에서부터 인천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인상적인 개폐회식도 기획해야 하는 등 여러 부차적인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물론, 그동안 모두 4차례의 전국체전을 개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겠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인천인들이 정신적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점이다.
2013년, 우리 ‘인천’이라는 이름이 탄생한지 600년, 숱한 역사적 질곡을 헤치고 오늘날의 인천광역시로, 대한민국의 제3의 도시로 자리한 인천, ‘정명600년’의 역사적 의미가 우리 인천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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