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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한옥에서 장어를 맛보다

2013-03-06 2013년 3월호

 

마당깊은 한옥에서

장어를 맛보다


국화 꽃무늬를 놓은 창호지 문이 그런 대로 그윽하고, 달빛 비치는 어느 가을밤 혹여 이불잇에 떨어지는 창살 그림자가 있다면 참으로 제법일 듯싶다. 마당 가운데에 돌을 밖아 치장한 우물과 붉은 녹을 쓰고도 아직 소임을 충분히 하고 있는 펌프 따위가 머릿속 생각을 금세 몇 십 년 뒤로 돌아가게 한다.

글 김윤식 시인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엊그제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큰 불이 나 건물 6동, 20여 점포가 소실됐다는 신문보도를 보며 언뜻 ‘검암한옥’이 뇌리에 스쳤다. 그 신문은 화재와 관련하여 칼럼도 실었는데 “다미·우정·태화·향정도 손바닥만한 ‘ㅁ’자 마당을 둔 한옥이다. 쩨쩨한 골목, 웅숭깊게 들어앉은 방에서 밥을 먹다 비라도 오면 마음부터 촉촉이 젖는다.”라고 적고 있었다. 그 구절이 더욱 이 한옥 생각을 하게 했다. ‘검암한옥’은 한옥 본래의 격조를 완벽히 갖추었던 집은 아닌 데다가 장사를 위해 여기저기 손질을 해서 개량 한옥이라고 할 것이지만, 인사동 집들과 똑같이 손바닥만한 ‘ㅁ’자 마당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방안에 앉아 밥을 먹으며 이 겨울, 옹색하기는 해도 그 마당에 내리는 눈발을 내다보는 마음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던 것이다.

 

 

빌라촌의 유일한 한옥, 70년 묵은 멋
물론 ‘검암한옥’은 값이 헐하지 않은 장어구이 집이어서, 시인, 화가, 회사원, 기자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끼 밥을 파는 인사동류의 그런 정취는 없다. 또 애초 ‘ㄱ’자 형 집에 ‘ㄴ’만큼 덧대어 지은 한옥인 터라 웅숭깊은 맛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청마루 위 천정에 드러난 대들보와 반들반들 윤이 나는 서까래, 그리고 사이사이에 바른 희고 단정한 회칠은 70여 년 묵은, 서른 평짜리 한옥의 맛과 멋을 내기는 내는 것이다.
국화 꽃무늬를 놓은 창호지 문이 그런 대로 그윽하고, 달빛 비치는 어느 가을밤 혹여 이불잇에 떨어지는 창살 그림자가 있다면 참으로 제법일 듯싶다. 마당 가운데에 돌을 밖아 치장한 우물과 붉은 녹을 쓰고도 아직 소임을 충분히 하고 있는 펌프 따위가 머릿속 생각을 금세 몇 십 년 뒤로 돌아가게 한다.
서구 검암동 196번지 ‘검암한옥’. 온통 빌라촌이 되어 버린 허암산 발치 일대에 어떻게 이 집만 혼자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주인 송병일(宋炳一·70세)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십수 년 전 구획정리 당시, 다른 집들은 모두 헐리는데 이 집만은 상태가 양호해 존치 건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런 운명이었던지 지금은 ‘검암한옥’이라는 옥호로 검암지역 대표처럼 행세를 하는 것이다. 하기야 여기 살던 옛 토박이들도 이 ‘검암한옥’을 바로미터삼아 ‘이쯤이 누구네 집, 이쯤이 누구네 대문, 저만큼이 정씨네 안채’ 등등을 떠올린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이번 호도 음식 이야기보다 또 이렇게 곁가지로 나가 많은 지면을 없앤다. 그러나 굳이 ‘검암한옥’을 부각하는 까닭은 사라져버린 ‘우리 삶의 모습’이 이집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 어느 구석에서 옛날 기와집 한 채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한편 요즘 어느 집이나 장어 조리법이 크게 다를 리 없고, 또 그 맛이 어디에 가면 뭐 얼마나 다르랴 싶어서다.

 

 

인천 장어집들 관서식 가바야끼 요리법 따라
솔직히 말해 그것은 장어요리를 많이 경험하지 못해 썩 정통하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천생이 인천이어서 어려서부터 조개, 꽃게 조기, 민어, 준치 따위나 입에 대 보았지, 장어는 그야말로 ‘시커먼 뱀처럼 생긴 데다가 몹시 미끈거려 다루기가 지겹고, 물에서 나와도 오랫동안 죽지 않아 징그럽기’ 짝이 없는 존재여서 부엌에서고 식당에서고 이놈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양식에 성공하여 양만장(養鰻場)이 들어서고 전국에 장어집들이 생겨나면서 너도나도 흔히 먹는 음식이 된 것이다. 그런 바람을 타고 인천에 장어 조리 전문점이 생긴 것은 얼추 1980년대에 이르러서가 아닐까 싶다. 조리법은 일본식이었다.
“모든 사물에 관동(도쿄 지방)과 관서(오사카 지방)의 지방 차가 있듯이 가바야끼(蒲燒·장어구이)도 뚜렷하게 다르다. 관동에서는 몸체를 등 쪽으로 가르고 관서에서는 배 쪽을 짼다. 관동은 무사 사회라 우리나라의 사약처럼 절복(切腹)이라는 처벌제도가 있어 배를 짼다는 것을 기피했고, 관서는 상인 사회라 편한 대로 배를 갈랐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굽는 식도 다르다. 관동에서는 그대로 구워낸 시라야끼(白燒)를 가볍게 쪄서 살을 무르게 한 후 다시 다레(양념간장)를 발라가면서 홍야끼(本燒)로 마무리를 지으므로, 모양은 단단하게 보이나 젓가락을 대면 부스러지도록 살이 연하다.
관서에서는 시라야끼와 찌는 일이 없이 처음부터 다레를 발라 구워내므로 탄력이 살아 있다. 서로 자기 방식이 좋다고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으나 피차간 장단점은 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나라의 장어구이는 모두가 관서식 가바야끼 일색이다.” 향토사가요 미식가이셨던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 쓰신 ‘뱀장어의 진미와 효능’이란 글의 일부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두 지방 장어 조리법에 이런 차이가 있었구나, 흥미롭다. 장어 귀신들의 독특한 조리법과 함께 그 맛은 어떨까 싶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신 박사께서 지적하신 대로 인천에 생긴 장어구이집들 역시 관서식 가바야끼를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실제 모든 업소들이 다 이 방식이었다. 관동식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까닭에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손님들의 경원(敬遠)으로 이어져 업소의 앞날에 큰 차질을 가져 올지 모른다. 

 

 

장어뼈 삶아 만든 독특한 소스가 맛 비결
신 박사께서는 당시 인천 시내에 새로 개업한 장어구이집에 대해 “앞날을 위해 심한 표현을 해도 좋다면, 기름에 지진 밀전병을 들큰한 간장으로 구워낸 것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혹평을 쓰시기도 했지만, 지금은 웬만한 집들도 비교적 우리 입맛에 맞게 장어를 구워낸다. 여기 ‘검암한옥’의 조리법도 관서식을 따르고 있는 셈인데, 늦게 터득한 입맛임에도 상당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구이가 맛이 좋다는 것은 재료의 수분이 굽는 동안에 증발하여 향미(香味)가 농축되기 때문이다. 특히 가바야끼는 부채질을 해가면서 약한 불에 오랜 시간을 두고 구워야 제 맛이 나는 것이다.” 주인에게 신 박사의 비결을 들려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이 집은 지하에서 퍼 올린 맑고 시원한 청정수에 장어를 하루 정도 두어 뱃속의 흙탕물을 토하게 하는 정성이 있고, 공장에서 배달하는 소스가 아니라 직접 장어의 뼈를 삶아 우려낸 뒤 거기에 몇 가지 재료를 첨가해 독특한 비법으로 자가 생산하는 소스가 있다. 더불어 생강 외에는 순무, 무, 배추, 감자, 마늘, 고추 등속의 채소를 모두 인근 4백여 평 자기 밭에서 손수 재배해낸다. 밑반찬 한 가지, 한 가지가 신선한 맛을 잃지 않는 비결이다. 
불과 15년 남짓한 경력이지만, 이 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였다고 한다. 동네 사람 찾아다니며 만나고, 회의하는 일을 오래 하다가 이제는 오는 손님을 맞는 업으로 바꾼 것이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집이어서 동네 사람, 친지나 드나들었는데 오늘날은 한 번 왔던 사람들의 구전(口傳)으로 제법 손님이 든다고 한다. 큰아들이 대를 이을 것이라는 주인의 말이 고맙고, 크게 안심이 된다. 사면 빌라가 들어선 곳에 알 박히듯 서 있는 ‘검암한옥’이 그나마 보존될 수 있어서 마음 놓인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 아들이 지금 자기 아버지쯤에 이르면 이 집도 어엿한 노포(老鋪)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문의 : 566-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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