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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처럼 불처럼 살다

2013-12-31 2014년 1월호

흙처럼 불처럼 살다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벽재(碧齎) 고상순(67)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 눈이 쏟아졌다. 하늘에도 땅에도 나무에도… 하얀 눈이 온 세상을 푹 뒤덮었다. 그 길 끝에 다다른 벽재도예연구소 안은 따사롭기 그지없다. 그 안에서 만난 선생도 온유한 성품의 맑고 따스한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예가란 모름지기 오랜 시간 흙을 달래고 보듬고, 무수한 망치질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그는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겸손이 뼛속까지 스며있을 것이다.
길은 이미 정해져있던 것일까. 주안 수봉산 자락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신기촌 중앙도자기 공장에서 도자기 파편과 점토를 가지고 놀았다.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다 40여 년 전 한국 도예계의 명인 고 변산(?山) 위군섭 선생을 운명처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986년에는 고려시대 녹청자도요지를 품은 역사적인 장소인 서구에 벽재도예연구소를 세우기에 이른다.
둔탁한 녹갈색 빛에 거칠고 투박한 꾸밈없는 아름다움. 벽재는 선조들의 질박한 삶과 정서가 깃든 녹청자에, 이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담아 다음 세대에 전하고픈 생각이 가득하다.
“경서동 녹청자는 한민족의 전통적인 생활이자 예술로서 그 역사적인 가치가 큽니다. 이를 재현하고 이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후세에 전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물레를 돌리고, 무늬를 새겨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하고, 1천300도 가마 안에서 ‘불의 심판’을 기다리고… 시간이 멈춘 듯, 흙처럼 불처럼 살아 온 40여 년. 앞으로도 그는 묵묵히 제 길을 갈 것이다. 그의 가마에서 피어오른 불꽃도 세월이 흐를수록 ‘활활’ 더 뜨겁게 뜨겁게 타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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