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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AG가 열린 신비의 땅, 인도 델리(Delhi)
첫 AG가 열린 신비의 땅, 인도 델리(Delhi)
인도 델리의 풍경은 아시아경기대회의 정신과 묘하게 닿아 있다. 다양한 언어와 민족, 종교가 공존하는 12억 인구의 수도는 ‘이념, 민족, 종교를 넘어선 화합’이라는 대회 슬로건과도 궤적을 같이한다.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이곳 뉴델리에서 처음 열린 것도 나름 사연을 지닌 셈이다. ‘문화의 용광로’에서 쏟아내는 개성 넘치는 단상들은 다채로운 역사만큼이나 상상 밖 정경을 만들어낸다.
글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희귀하면서도 반가운 오래된 풍경
예측불허의 땅 델리에서는 ‘어긋남’보다는 조화의 모습이 강렬하다. 경계를 넘어선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살가운 호흡을 나눈다. 델리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여행자들이 함께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은 빠하르간지다. 뉴델리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어떻게 보면 배낭족들의 아지트와도 같다. 골목 가득 게스트 하우스와 환전소들이 몰려 있고 덩치 큰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하루 종일 서성거린다. 인도 북부나 남부로 향하는 버스들도 이곳 빠하르간지 초입에서 출발한다. 1박 2일 넘게 달릴 버스를 기다리는 청춘들은 퇴색한 복장에 얼굴만은 달뜬 표정이다. 국적도 민족도 피부색깔도 제각각인 이들은 분위기 만큼은 닮아 있다.
빠하르간지의 4층 노천 식당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더욱 낯설다. 식당 안은 대낮인데도 히피 복장의 젊은이들이 반쯤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차를 홀짝 거리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아래 골목은 시장 풍경이다. 온갖 좌판대가 늘어서 있고 사이클릭샤를 타고 번잡하게 사람들이 오간다. 뉴델리 지역은 사이클릭샤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느리게 흘러가는 사이클릭샤를 흔하게 볼수 있는 곳은 이곳 빠하르간지 일대다. 최근 공항에서 뉴델리역까지 고속 공항철도가 개통된 것을 감안하면 이런 오래된 풍경은 희귀하면서도 반갑다.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과 옛것들이 아직까지는 이질감 없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빠하르간지를 벗어나 뉴델리 지역에서 만나는 차량들은 유독 차체가 높다. 영국차를 본딴 덩치 큰 엠베서더 택시가 다운타운을 오가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키 큰’ 차량이 인기 높은 것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도 연계가 깊다. 잘 살펴보면 인도인들이 서구사람들처럼 키가 큰 것은 아니다. 인도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땅이고, 힌두교도나 시크교, 이슬람교도 등은 기념일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니는 경우가 잦다. 옛 골목이 남아 있는 올드델리의 찬드니 촉 거리 등에서는 이런 두건 쓴 주민들과 쉽게 조우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상징하는 두건이 차량 때문에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체가 높은 차량을 선호한다. 초기에 외국 자동차 기업들은 이런 기호를 몰라 수출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요즘도 거리의 차들을 살펴보면 같은 경차라 할지라도 차체가 높은 차량들이 애용된다.
혼재된 종교 안에서의 통일성은 차량에만 그치지 않는다. 델리 전역에 널려 있는 세계문화유산 유적에서도 아슬아슬한 공존의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델리를 대표하는 유물은 ‘꾸뜹 미나르’다. 1193년 델리의 마지막 힌두 왕국을 무너뜨린 직후 이슬람 군주에 의해 세워진 탑은 높이가 73m에 달하고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 아프가니스탄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미나르 옆에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도 들어서 있다. 힌두교 사원을 부순 위에 이슬람 모스크가 들어선 형국인데 사원 가운데 오파츠라는 쇠기둥은 1천5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녹이 슬지 않은 신화적인 사연을 지니고 있다.
올드 델리의 지난한 세월을 담다
델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다양한 건축물들에 대한 공존이 이해가 간다. 영국이 만든 계획 도시인 뉴델리 이전부터 델리는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땅이다. 델리 자리에 있었던 도시만 7개인데 그중 5개가 외부민족에 의해 세워졌다. 델리 지역은 외세가 인도평원으로 들어서는 관문에 위치했고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잦은 흥망의 역사 때문에 ‘델리를 점령하는 자, 곧바로 델리를 잃는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뉴델리를 건설해 델리를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영국은 겨우 16년만 이곳에서 주인 행세를 했을 뿐이다.
옛 영국의 흔적은 라즈쁘라빠띠 바반으로 불리는 대통령 궁이나 국회의사당 등에서 선명하게 엿보인다. ‘왕의 길’로 통하는 라즈파트 일대는 영국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됐고, 가로등 위에 범선 등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나 엠베세더 관용차들이 늘어선 풍경들은 여지없이 서양의 한 곳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디아 게이트를 지나는 이 대로를 따라서 인도 공화국의 창건일 등에는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퍼레이드의 종착점이 올드 델리의 레드포트라는 점이다. 레드포트는 올드 델리가 수도였던 시절 무굴 제국의 왕궁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외곽은 붉은 벽돌로 철벽같이 둘러싸여 있다. 성의 입구이자 구권력의 상징인 라호르 게이트까지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게이트를 지난 골목은 찻타촉이라는 장신구 상가가 들어선 일상의 풍경이다.
레드포트 앞 거리는 찬드니 촉으로 불리는 올드 델리 최고의 번화가다. 번화가라고 하지만 은시장, 향신료 시장들이 어수선하게 들어서 있는 옛 장터의 정경을 보여준다. 가득한 인파 사이로 소떼도 다니고 오토릭샤도 달리는 모두 생경한 모습들이다.
아시아경기대회 History
인도 뉴델리에서는 역대 아시아경기대회가 두 차례 열렸다. 1951년 첫 대회에 이어 1982년 9회 대회가 이곳에서 치러졌다. 아시아경기대회의 모태가 된 서아시아경기대회가 1934년 처음 열린 곳도 이곳 뉴델리다. 극동선수권대회와 서아시아경기대회로 양분돼 있던 경기는 1948년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인도, 필리핀, 미얀마, 타이완, 스리랑카 등 6개국이 모여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정해, AGF(아시아경기연맹)을 창설하면서 현 아시아경기대회의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한편, 우리나라는 1회 대회 당시 6·25 전쟁의 여파로 참여하지 못했다.
가는 길 인천국제공항에서 델리 인디라 간디 공항까지 아시아나 항공 등 직항편이 운항 중이다. 델리까지는 약 8시간 소요. 인도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공항에서 뉴델리역까지는 공항열차가 다닌다. 공항에서 시내로 갈때는 일반택시 대신 공항버스 ‘EATS’ 나 안내소에서 미리 티켓을 구입하여 프리페이드 택시를 이용하는 게 안전하고 편리하다.
음식&숙소 인도에서는 밥 보다 빵이 일상적이다. 서민식에 속하는 짜빠티나 고급에 속하는 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빵들은 카레와 곁들여 먹으면 맛이 좋다. 델리의 저렴한 숙소는 빠하르간지 일대에 몰려 있다. 깔끔한 숙소는 뉴델리의 코넛 플레이스 근처에 있다. 인더스빌라스(www.indusvillas.com) 등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시설도 깔끔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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