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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은 어민의 생명입니다
2014-03-10 2014년 3월호
닻은 어민의
생명입니다
글 이용남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닻을 만들면서 어민들을 생각하고, 양심을 속이지 않으면서 정성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일해 왔습니다.” 인천 파라다이스호텔 인근에서 50여 년 넘게 닻을 만들고 있는 동광철공소 길철근 사장(67)의 일에 대한 철학이다. 길 사장은 50여 년 넘게 쇠를 주무르고 만지는 일을 해왔기에 쇠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그에게 쇠는 딱딱하고 차가운 물질이 아닌 어르고 달래가면서 영혼을 불어넣는 대상이다. 그래서 그에게 완성된 닻은 예술품이고 창작물이다.
길 사장은 어릴 때부터 쇠 덩어리 옆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일하는 철공소에서 놀았고, 일을 도와주면서 쇠와 친해졌다. 대학도 포기하고 철공소 일을 배웠다. “제 이름이 ‘철근’이잖아요. 다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그는 50여 년 넘게 철공소를 지켜왔다.
아버지의 철공소를 물려받은 후 닻 전문으로 바꿨다. 그의 아버지는 배 못을 주로 만들었다. 목선이 없어지고 ‘에팔피(FRP)’라 불리는 플라스틱 배들이 나오면서 배 못의 수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민들이 참 불쌍해요. 사람들이 그렇게 착하고 순박할 수 없어요. 밤낮없이 일하고 예전엔 배 줄을 당기다가 죽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가 만드는 닻에는 어민들의 생명이 달려있다. 바다 한가운데서 고기를 잡을 때 배가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서있게 하며, 그물을 지지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돕는다. 풍랑이 쳐도, 파도가 거세도 끝까지 바다에서 견뎌야 하는 것이 닻이다. 바다속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에 장비가 곧 생명인 셈이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아들에게 ‘저울을 속이지 마라, 정직하고 정확하게 살아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길 사장은 아버지의 유언같은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영리를 생각하지 않고 닻 만들기에 정성을 다한 장인이다.
어민들을 생각해 허투루 만들 수 없었던 닻은 서해바다에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주문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덤핑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 약삭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노라면 우직하게만 살아 온 자신의 삶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길 사장은 유학까지 다녀온 두 딸을 잘 키운 걸 인생 최대의 보람으로 삼았다. 딸들도 아버지의 예술혼을 닮아 피아노,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평생 어민과 함께 하며 좋은 닻을 만들려고 노력한 세월이 아쉽지는 않다. 남은 시간도 주어진 일을 하면서 뱃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일을 하는 게 희망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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