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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에서 만나는 유럽과 아시아의 조화
2014-03-11 2014년 3월호
순수의 땅, 라오스를 가다
글·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인천과의 인연
60년대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 축구스타 홍인웅 감독이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한 피부때문에 라오스 사람인가 혼동할 정도로 친근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홍 감독은, 10~11세 선수들로 구성된 라오스 유소년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린 2013 아시아 유소년 축구축제에 참가했다.
1970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한 당대의 축구대표선수 홍 감독은 축구의 불모지인 라오스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축구의 즐거움과 함께 한국을 알리는 민간대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 라오스 사람들은 축구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어린 청소년들에게 축구는 꿈이자 희망이다. 그런 희망을 실현하는데 홍 감독은 일조하고 있다. 라오스의 축구선수들이 우리 돈으로 일당 5천원 정도밖에 벌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인 홍 감독은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또 다른 주역이다.
라오스는 지난 2013년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 4명의 선수만을 파견해 캄보디아(2명). 브루나이(3명)에 이어 가장 적은 선수단을 파견했고,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즈는 왜 라오스를 꼭 가야할 여행지로 꼽았을까?
2009년 뉴욕타임즈는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라오스를 꼽았다. 도대체 라오스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런 찬사가 이어지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어렵게 여행 일정을 잡은 건 12월 초순이다. 11월이 라오스의 여행에 가장 적합하다는 건기가 시작되는 때로 알려져 있어 기대는 자못 컸다.
비엔티엔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저가 항공은 주로 저녁에 출발해 밤 늦게 라오스에 도착하기 때문에 공항에서 10분여 만에 도착한 호텔에 여정을 푼 것은 늦은 밤이다. 2008년 9월부터 대한민국 국민은 15일 동안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해져 라오스를 찾는 한국인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메콩강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도 비엔티엔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었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를 한 곳에 조화시켜 놓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느낌이 들지만 한낮에는 긴팔 셔츠 하나만으로 다니기에 충분한 12월의 날씨는 여행자들에게는 최적이다. 한눈에 봐도 도심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라오인들의 첫인상은 매우 친절했다.

현지여행사에 아침 일찍 전화를 해 가이드가 포함된 하루 투어를 신청했다. 아직 성수기의 시작인지라 1시간 만에 운전이 가능한 가이드가 승용차 한 대를 몰고 호텔까지 와 주었다. 다른 여행객들처럼 필자도 라오스의 역사가 묻어있는 화려한 사원들과 도심을 둘러보는 것에서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도심에서는 심심치 않게 유럽인들을 볼수 있다. 특히 유명한 관광지는 유럽인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유럽사람들이 라오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우선 가까운 환전소에서 달러를 라오스 돈인 킵으로 바꾸자 주머니가 두둑한 게 자신감이 생긴다. 제일먼저 찾은 곳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었다는 빠뚜사이 문이다. 일명 라오스의 개선문으로 불리는 빠뚜사이는 그 규모가 대단하다. 1957년에 만들어진 이곳은 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에서 제공된 시멘트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해서 ‘수직 활주로’라는 애칭도 함께 가지고 있다. 빠뚜사이의 옥상에 오르면 비엔티안의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황금색의 탓루앙(Wat Thatluang) 사원은 부처님의 가슴뼈 사리가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 햇빛에 반사된 사원은 찬란한 빛을 발한다. 많은 사원들이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보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을 발품을 팔았다.

라오스의 소금마을에서 소래염전을 생각하다
얼마전 다큐멘터리에서 익스트림 잡(극한 직업)을 소개한 내용중에 라오스의 소금마을을 본 기억이 있다. 땅에서 나는 소금물을 증류해 소금을 얻는 곳으로 비엔티엔 도심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가이드를 재촉해 소금마을로 차를 달렸다.
라오스는 아주 오래 전 바다였던 곳으로 지반이 융기하면서 지하수는 그대로 소금물이 머금고 있는데 이 마을이 바로 끊임없이 소금물을 뿜어내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건기에는 우리의 염전처럼 강한 태양에 소금물을 증류해 소금결정체를 얻지만 문제는 비가 잦은 우기다. 마을 사람들은 우기에도 소금을 얻기위해 소금물을 엄청난 온도로 증류해 결정체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소금마을은 항상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힘든 노동 속에서도 웃음을 잊지 않는다. 귀찮을 정도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도 웃음으로 답한다. 갑자기 인천의 오래되지 않은 과거였던 소래염전이 생각났다.
야시장 구경은 날 새는 줄 모른다. 여행자 거리에서 인접한 메콩강변을 따라 형성된 야시장은 저녁 5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변도시에서 모여든 라오 원주민들부터 장사치들이 모여 매일 밤 형성되는 야시장에는 손으로 직접 만든 라오스의 전통 직물에서부터 각종 공산품은 물론, 먹거리까지 다양하다.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뒤섞여 이미 국제시장이 되어버린 야시장은 한번 빠지면 수차례 오가야 하는 마력에 빠진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씩 사다보면 이내 양손이 가득하다. 하지만 워낙 물가가 싼지라 큰 돈을 들지 않으면서도 라오스인들의 넉넉한 마음까지 덤으로 사서 기쁨은 배가된다.

프랑스풍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루왕프랑방’
라오스 제2의 수도인 루왕프라방(실제로 비엔티엔 이전의 수도였다가 1975년부터 바뀌었다.)은 여행객들에게는 수도 비엔티안보다 더욱 매력적인 도시다. 거리는 깨끗하고 시내에는 흙먼지 대신 깔끔한 도로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모여있다. 루왕프라방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사원의 도시라는 뜻인데, 그에 걸맞게 정갈한 모습의 사원이 곳곳에 있고,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와 노천레스토랑, 심지어 고소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수 있는 카페까지 있다. 뿐만 아니라 노천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간편하게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바게트 빵과 신선한 과일주스는 젊은 여행자에게는 또 다른 매력으로 와 닿는다.
비엔티엔에서 40분의 짧은 비행기 여행으로 루왕프라방에 도착한 것은 점심 무렵이다. 미리 예약한 그랜드 루왕프랑방 호텔(The Grand Luangprabang Hotel)은 도심에서 10여 분 떨어져있는 곳이지만 과거 왕궁으로 쓰였던 곳을 호텔로 리모델링해서 개방한 곳이라, 마치 왕궁에서 지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서비스도 그에 못지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숙소는 도심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다. 장기간 여행을 즐기는 유럽인들의 눈높에 맞추어 깨끗하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저렴하기까지하다.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은 프랑스풍의 오래된 건물을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 내부를 리모델링해 놓았다. 도시를 하루만 둘러보면 왜 이곳이 도시 전체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놓았는지를 금방 알게 된다.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환경과 함께 여행객들이 원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저렴하게 둘러볼 수 있는 관광 상품들이 즐비하고, 어느 유럽의 레스토랑을 옮겨 놓은 듯한 매력적인 식당들은 루왕프라방의 가치를 증폭시킨다.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에 흑먼지 날리고, 서걱거리는 소리가 피부에서 들려도 행복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짧은 라오스의 여행을 통해 그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순수한 영혼에 대한 동경과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라오스를 찾고 싶은 나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더해 불교라는 전통적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함께 저렴한 여행비용과 친절한 라오사람들 때문에 라오스가 꼭 가봐야 하는 이유였음을 알게하는 여행이었다.
라오 맥주(Beer Lao)와 ‘보펜양’ 라오스를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이곳에서의 라오 맥주 인기는 우리나라의 걸그룹 못지않다. 그도 그럴것이 더운 날씨에 물을 들이키는것 보다 시원하면서도 단맛이 도는 맥주가 훨씬 당기기 때문이다. 또 하나 라오스 문화의 특징이 있는데 한국말로 ‘괜찮아’ 또는 ‘그럴수도 있지 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보펜양’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라오스의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라오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 나서 좀처럼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보펜양은 때로 사업을 하는 한국사람들 한테는 아주 답답한 말이다. 봉급 다음날이나 주말을 보낸 후 갑자기 직원들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화를 내면 왜 화를 내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무엇이 더 인간적인지 참 고민스럽다.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와 독립 180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는 동남아시아국가를 식민지화하는데 주력했다. 1860년대 캄보디아와 남부 베트남을 식민지화한데 이어 동남아에 대한 식민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드디어 1893년에 베트남 전역과 라오스를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한 프랑스는 실제적으로 라오스의 모든 권력을 프랑스에 귀속시키는 식민지 정책을 추진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 일본은 라오스를 프랑스로부터 독립시키고 다시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라오스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이나 일본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1945년 9월 1일 라오스 남북부를 통합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 독립을 선포한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은 라오스의 루왕프라방을 현존하는 프랑스풍의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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