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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어야 하나?
무엇을 먹어야 하나?
글-김용희 (인천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장)
지난 1년 사이에 참으로 많은 식품안전사고가 있었다.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고, 생식제품에서는 식중독균이, 비타민C 음료에서는 발암물질인 벤젠이, 장어에서는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되어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학교급식사고가 생겨 학생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최근에는 폐광산 지역에서 재배된 농작물에서 중금속이 나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때마다 아는 분들께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걱정스럽게 나에게 묻곤 한다. “도대체 무얼 먹어야 하나요?”
언론에서 보도가 나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많이 잊혀지기는 하지만 잠재의식 저 밑에는 식품에 대한 불신이 차곡차곡 쌓여 가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인가 요즘은 정상적인 먹을거리는 뒷전이고 특이한 먹을거리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다. 상표 앞에 ‘무농약’, ‘유기농’, ‘청정’, 최소한 ‘저농약’정도의 표시가 들어가야 팔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정도의 관심이야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인 걸 어쩌랴 싶지만 문제는 지나칠 정도로 집착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몸에 좋다면 천연기념물 먹기도 마다하지 않는 어른들,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 어떻게 해보겠다는 어머니들의 욕심, 무언가 약이 되는 것을 먹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건강염려증 환자들,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지금 우리 사회는 먹지 않아도 될 것을 먹고,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소문과 확인되지 않은 학설을 말하며 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듯 TV에 나와 자랑스럽게 이런저런 만병통치형 식품을 말하는 연예인을 볼 때면 우리 사회가 너무 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몇몇 사례를 보자. 건강을 위해 곡류 등을 날로 먹는 생식은 제조과정에서 각종 미생물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건강을 해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한다. 무설탕, 무가당이라 표기된 식품은 설탕이 없다는 말이지 다른 종류의 당이나 감미료인 아스파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아침마다 한 주먹 가득 먹는 비타민제와 건강보조식품은 대부분 건강염려증 때문에 불필요하게 섭취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간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주부들이 장을 볼 때면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항상 농약은 없나, 중금속은 없나, 식중독균은 없나를 걱정하며 식품을 고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부들은 정성껏 고른 식품을 집에 가지고와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방치해 버리고(뒷 베란다와 냉장고는 만능이 아니다), 고기와 야채를 함께 손질한다.(칼과 도마를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내 몸이 서늘하면 음식도 절대 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앞서의 식품을 고르는 노력 모두를 허사로 만든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식품은 무엇을 골라 먹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싼 가격의 고급 식품(과연 그만한 효과가 있을 것인가는 모르지만)이 아닌 평범한, 내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도 명품(?)으로 변신시키는 방법이 있다. 식품 취급의 원칙 세 가지(잘 씻고, 잘 익히고, 잘 보관하기)를 잘 지켜만 준다면 농약도, 중금속도, 식중독균도 모두 비켜갈 수 있을 것이고, 이것저것 따져가며 고르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경제적이고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도 있기는 하지만 원칙과 양심을 지키며 농사짓는 농민과 회사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언론에 보도된 몇몇 식품의 잘못은 분명하게 바로잡아 나가는 사회적 노력이 따라야하지만, 이런 일 때문에 식품 전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지 말고 한번 크게 믿어주고 너무 염려하지 말며 호탕하게 마음을 열고 원칙 세 가지를 지켜가며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불안한 마음으로 먹는 건강식품보다는 편안히 먹는 밥 한 그릇이 훨씬 보약노릇을 할 것이다.
앞에서 친구가 물어본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세상 그 많은 것 중에서 왜 먹을 게 없겠어요. 마음 편히 드세요. 단 원칙을 지키고, 욕심을 버리고요. 식품은 약이 아니라 식품일 뿐입니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15-16절 -
* 성경에 있는 말씀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내가 지켜야 할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가끔 읽어보곤 한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읽을 때마다 조금씩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우울했던 마음이 편해짐을 느끼게 된다. 나를 높이기는 무척 어려우나 지금보다 조금만 눈을 낮춰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은 재물에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동료들과 함께 하고,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직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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