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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근대 건축물 종합전시장
인천은 근대 건축물 종합전시장
우리 인천은 개항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개항장이라고 불리는 자유공원 일대에는 개항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여럿 남아 있다. 개항초기에 세워진 인천의 근대 건축물들은 대개 100년 전에 머릿돌을 박았다.
구(舊)인천일본제일은행은 64평의 석조 단층건물로서 1899년 세워졌다. 외형은 반원아치의 현관을 중앙에 두고, 머리에 르네상스풍의 작은 돔을 올려서 좌우 대칭으로 지었다. 외벽은 화강암을 다듬어 쌓고 처마 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파라펫 난간을 올렸다. 제일은행 건물은 당시 순수한 서구양식의 석조 건축물로 수준 높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동에 소재한 구(舊)일본58은행은 18은행과 더불어 현존하는 인천 최고(最古)의 양식 건물로 일본에서 들여 온 벽돌로 건립했다. 초기 양식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외관은 벽돌조 구조물에 석판마감으로 구성했다. 1층은 석조 기단으로 되어 있고 2층 발코니와 아래 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도머(Dormer)창이 특징이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과 연결돼 있는데 2층은 목조의 발코니 형식으로, 지붕은 2중의 경사를 이루는 맨사드(Mansard) 지붕이 조화되어 전체적으로 프랑스식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준다.
동구 창영동에 있는 구(舊)여선교사 합숙소는 1892년부터 1894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상 2층, 지하 1층에 건평 142평 짜리 붉은 벽돌로 북유럽 양식을 띠고 있는 이 건물은 근대 르네상스 양식을 띠고 있다. 검정 함석을 사용한 지붕은 물매가 매우 가파르며 창문의 형태가 모두 오르내리창이라 외관이 독특하다. 조선시대 서원이나 사찰의 승방에서 사용했던 ‘용(用)’자살 창호형태를 원용하고 가장자리는 교살 등의 문양으로 짜 넣은 것이 눈길을 끈다.
현재 중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舊)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6월 당시 인천에 거주하던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인들의 사교장으로 지어졌다. 응봉산 비탈을 깎아 벽돌조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32평)이 2층(85평) 보다 좁은 관계로 전체적인 모습은 2층 위주의 단층집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의 형태는 단순한 편이지만 지붕 형태는 상당히 복잡하고 양철로 덮여 있다.
현재 답동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바오로 대성당은 1895년 착공해 1897년 준공됐다. 준공당시에는 벽돌조 단층 건물로 고딕적 양식을 띠었으나 1934년 개축공사를 시작해 1937년에 단층 벽돌조로 다시 고쳐 지었다. 옛 성당건물을 세워둔 채 그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린 공사였다. 답동성당은 서양미술을 도입해 지은 인천 근대 건축 제1기에 속하는 건물로 고딕(Gotic)과 로마네스크식이 어우러져 예술적 가치가 가장 큰 건축물이다. 건물의 외형은 동서양 절충양식으로 반원 아치창문을 주제로 돔을 얹고 장미창을 마련했다.
우리시는 개항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자유공원 일대의 외국인 사택과 별장 등 5~8군데를 복원해 당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복원 후보에 오른 건물은 존스톤별장, 세창양행사택, 영국영사관, 알렌별장, 러시아영사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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