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스물다섯 살짜리 처녀 소방관의 당당함 윤선숙 소방사
스물다섯 살짜리 처녀 소방관의 당당함 윤선숙 소방사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고…. 아무리 세상이, 남자 여자 구별이 없다고 해도, 이런 일을 여자들이 해 내랴 싶은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힘들고 어려운 일을 스스로 택해 하는 여성의 숫자가 많아 희소(稀少)에서 오는 관심조차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기야 공군사관학교 같은 데에 심심치 않게 수석으로 입학하는 것이 여학생들이고 보면 이 일이라고 못할 것이 뭐가 있으랴.
그러면서도 한편, 이쪽의 옹색한 심정은 여전히 과연, 정말…, 이런 식으로 못미덥고 신빙이 가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 스물다섯 살짜리 처녀 소방관은 그런 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기만 한 것이다. 오히려 남자 소방관들보다도 먼저 저 육중한 불자동차를 몰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갈 그런 태세다.
윤선숙(尹善淑) 소방사. 갸름한 얼굴에 왼쪽 쌍꺼풀이 조금 희미한 듯해서, 옛날에 읽은 어느 일본 소설 속 표현을 슬며시 인용해 던진 ‘절름발이’라는 말에 배시시 이를 보이며 웃던 눈빛이 맑고 고운 처녀이면서, 말하는 것이며 앞서 걷는 모습이며가 모두 송혜교 같기도 하고 이효리 같기도 한 그저 숫되고 예쁜, 어쩌면 코스모스, 또 이 가을꽃의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 아직은 애잔한 모습인데 그 내면에, 남을 위해서는 생사(生死), 안위(安危)를 일순에 바꿀 수도 있는 그런 의롭고 위대한 마음을 지닌 소방관이라니….
“사실 첫 소망은 스튜어디스였어요. 그게 꿈이었는데 실패했어요. 아마 소방관이 되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스튜어디스에 대한 열망 때문에 그녀는 이미 합격했던 서울의 모 4년제 대학교 동양어문학부를 그만두고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를 택하고 말았다. 그러나 2학년 때 치르는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특채 시험에 낙방을 한 것이다. 실망이 컸지만 싹싹하게 돌아설 줄도 알았다. 인연이 아닌 일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는 슬기가 있었다.
졸업을 하고는 스튜어디스에 대비해 쌓은 영어 실력을 밑천으로 학원 강사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 일은 1년 만에 그만 두었다. 고3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어서 매일 밤 자정을 넘겨 끝이 나는 데다가 아무래도 자신의 직업으로 학원 강사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 공채에 응시해서 합격한 곳이 제일은행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8개월 만에 끝이었다. 안정되고 비교적 고임(高賃)에 특히 오늘날 여성의 직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직장이었지만 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도무지 갑갑했던 것이다.
“왜 그런지 은행에 앉아 일하는 게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제 팔자라면 우습지만, 저에게는 운명의 길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여학교 다닐 때, 친구들도 제게 그런 말들을 많이 했어요. 저는 소방관이 정해진 운명이었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이 맹랑하고 신비스러운 운명 이야기는 주민등록 번호와 관련이 있었다. 주민등록 앞 번호, 즉 821119라는 생년월일 숫자 때문이었다. 821119! 그 속에 119구급대 전화번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일까. 이 처녀의 운명은 그런 것이었을까. 그 무렵 우연하게도 남자 친구가 준비를 하던 것이 또 소방관 시험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 친구로부터 여자도 소방관 응시가 가능하다는, 정말 귀가 번쩍 트이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고.
“아버지께는 차마 말씀을 못 드리고 엄마한테만 이야기했죠. 그리고는 은행 그만두고 두 달 동안 공부했어요. 영어는 자신 있으니까 주로 소방학 개론이나 행정학 같은 과목을 들고 팠죠. 은행 다니면서도 뭐, 다른 공부는 늘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나중에 아버지의 반대가 커서 혼이 났지만요. 그렇게 소방관이 된 것이 작년 5월이었어요.”
충청남도 전체 소방관 임용 시험에서 당당 1등 합격이었다. 서산소방서에서 6개월을 근무하다가 여성이라곤 구급대원 두 명뿐인 이곳 남동구 서창소방파출소에 홍일점 소방관으로 전임해 온 것이다. 현재 사는 곳이 부평이고, 그보다 인천에서 나서 초, 중, 고, 대학을 모조리 인천에서 다닌 순 인천산(仁川産)이었지만, 아버지의 고향, 그녀의 본적지인 충청도에서 시험을 치른 것이고, 서산소방서에 임용되어 6개월이 지난 뒤 시도(市道) 간 인사 교류 때, 실제 거주지인 인천으로 오게 되었던 것.
“실제로 충남은 본적지이기도 했지만 시험 일자가 5월이었기 때문에 먼저 시험을 본 것이지요. 인천 지역 시험은 그보다 훨씬 늦은 11월이었거든요.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전 하루가 급한데. 정말이지 그 무렵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완전한 선망이었어요. 빨간 소방차만 보아도 흥분이 되었으니까요.”
아무튼 대견하다. 체구도 그다지 크지 않은, 외모와는 다른 몸 어디에, 이런 진취성과 과단성과 공부에 대한 근면함과 꾸준함,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책임 아래 밀고 나가는 고집스러운 힘이 존재하는 것일까. 남을 위해 늘 자신을 갈고 닦아 빛을 내는 보석 같은 그녀의 마음 바탕. 진정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가진 처녀 소방관.
“팔씨름 하면 웬만한 남자 대원도 이길 수 있어요. 이 직업은 늘 체력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죠.”
오늘 특별히, 처음으로 얼굴에 무엇을 좀 발랐다는 그런 말을 하며 처녀는 푸른 상추 잎사귀 같은 싱싱하고 환한 웃음을 웃는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급하고 비상(非常)한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이 언제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며, 무슨 헤어숍이고 무슨 손톱 화장이냐는 말을 기특하게 덧붙이면서. 그리고는 남자들 틈에 끼어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남자들에 동화되어 스스로 여자라는 생각을 잊게 된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이 참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듯, 그리고 그토록 행복한 듯, 체력단련실로, 식당으로, 상시 출동 준비가 완료된 빨간 불자동차, 그리고 구급차 옆으로, 또 언제든 잽싸게 차려 입어야 하는 방화복과 화이버, 장남감처럼 작은 안전화(安全靴)가 비치되어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안내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상사 한 분이 ‘넌 머지않아 울고 나갈 거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전 속으로 ‘천만에요’ 했지요. 물론 그럴 뻔한 적이 있기는 했었어요.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을 때인데, 사망자를 보는 순간 좀 충격을 받았던 거죠. 끔찍하다는 생각에 밥을 먹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지난 1년여 동안 출동 횟수를 따져 보면 아마 수백 번은 좋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 이상 지독하고 끔찍한 현장을 당해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앞으로 그런 상황을 겪어야만 하고, 또 두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면…. 인간으로서 안타깝고 슬프기는 할지라도 절대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말대로 이 처녀는 누구보다도 완전한 등황색 제복의 소방대원이니까.
말수가 적고 순한 남자 소방관들 틈에서, 그녀는 출동할 때의 운전자들의 교통질서라든가 고속도로 갓길 확보, 주택가 골목 주정차 같은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시민의식을 강조한다. 당차고 기특하다. 이제 아버지도 늘 몸조심을 당부하는 가장 든든한 응원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 아무나 못하는 고귀한 일이에요. 진짜 인간의 정, 인간의 멋을 느낄 줄 아는 그리고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결혼하고 애 낳고, 힘이 자라는 한은 이 일을 계속할 테니까요.”
헤어져 오면서 입속으로 조그맣게 뇌어 본다. 네가 참 당당하고 미덥고, 정말 머리가 숙여지는구나. 항상 몸조심하렴.
- 첨부파일
-
- 이전글
- 차 사고내고 감사하다
- 다음글
- 김치~~찰칵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