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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동안 피어난 재스민향
120년 동안 피어난 재스민향
인천에 중국인들이 거주하게 된 것은 1884년 ‘인천구화상지계장정(仁川口華商地界章程)’을 체결하면서부터이다. 현재의 중구 북성동 일대 구릉지 5,000평에 청국 조계(租界)를 설치하고 청국영사관이 문을 열며 그들의 자치지역을 형성해 나갔다. 조계는 우리나라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사법적으로도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나라 속의 나라’였다. <인천부사(府史)>에 의하면 이미 그때 중국인 5명이 옛 세관 뒤편에 집을 짓고 식료품 잡화류의 수입과 해산물류의 본국 수출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 동네의 이름은 양국의 친선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 선린동(善隣洞)이라고 명했다. 사람들은 그냥 차이나타운을 청관(淸館)이라고 불렀다.
인천에 거주하는 중국인의 수는 한 때 1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번창했으나 6·25 전쟁과 1960년대 화교에 대한 각종 규제로 중국인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졌다. 한동안 청관의 시계도 멈추었다. 퇴락한 부락으로 전락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던 중 1992년에 한국과 중국이 다시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북성동에 다시 재스민향이 피어나고 있다.
글-유동현 (본지 편집장) | 사진-김보섭
사진설명-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 영화촬영때 중국인 복장을 한 엑스트라들 (1991년)
박물관에서 청관을 만나다
김보섭은 ‘청관(淸館) 작가’이다. 그는 20년 전부터 북성동을 드나들었다. 처음 몇년간은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화교들과 친구되기가 먼저였다. 화교들이 마음을 열자 그들의 삶을 ‘밀착’해서 필름에 담았다. 그의 사진 속 화교들의 모습을 보면 가족처럼 편안하다. 김보섭은 그들과 함께 중국 고향길에 동행해서 그들의 ‘뿌리’를 담아오기까지 했다. 청관과 화교들의 모습을 담은 그의 흑백사진을 시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10월20일부터 11월19일까지 김보섭 사진 50여점이 전시된다. (문의_ 시립박물관 440-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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