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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향에 취하고 홍가권에 빠지고
보이차 향에 취하고 홍가권에 빠지고
붉은 색이 선명한 기둥에 황금색 용이 용틀임을 하고, 까만 지붕엔 붉은색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거리에서는 지글지글 춘장 볶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희미하게 재스민차 향도 섞여오는 듯한데 어디선가는 야래향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행인을 향해 빠르고 높은 어조로 말을 섞는 상인들. 마치 이역만리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다. 차이나타운은 그렇게 우리 인천의 한 풍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흔히들 자장면을 떠올리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아쉽다. 그곳에는 중국대륙의 문화와 예술, 교육이 살아 숨쉬고 있다.
글-정경애 (본지 편집위원) | 사진-김성환(자유사진가)
황비홍 제자 돼 볼까
차이나타운이라고 하기에는 좀 떨어진, 파라다이스 호텔 근처에 ‘정무문(精武門)’이라는 무술도장이 있다. 좀 허름한 건물 2층에 세 들어 있는 이 무술 도장은 외관과는 사뭇 다른 ‘실력’을 자랑하는 중국 무술의 산실이다. 남파 소림권의 분파인 홍가권(洪家拳)의 대가 필서신(畢庶信)관장이 이곳에서 정통 중국 무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 필관장은 한국에서 유일한 화교 출신 현역 무술 지도자로 황비홍-임세영-장극치-필서신으로 이어지는 황비홍의 4대(代) 제자다.
주말이면 이곳에 서울·대전 등에서 중국 무술을 배우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쿵푸(우슈)가 아닌 중국전통무술인 홍가권과 사자춤, 용춤 등 중국민속문화를 배우려는 이들이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체육관은 지금은 평일에는 인적이 드물 정도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필관장은 3개월간은 무료로 무술과 중국 전통 춤을 가르친다. 무술과 춤의 맛을 알고 더 깊이 빠지고자 하는 이들에게 비로소 수련비를 받는다.
사자춤, 용춤, 북춤 등은 3개월 정도 배우면 공연을 할 수 있고 초등학생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765-4665)
보이차 한 잔에 신선되다
휘황찬란한 붉은 등을 내건 거리 끝에서 중국차를 판매한다는 글자에 이끌려 ‘귀비기포(貴妃旗抱)’에 들렀다. 그곳에서 전통 중국차를 공부한 원소흠(原所欽)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평소 중국차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원 사장은 5년 전부터 본격적인 차공부를 시작해 지난해에는 중국 항주(杭州)의 절강대(浙江大)에서 차 교육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기도 했다.
귀비기포에 들어서면 우선 다양한 종류의 차에 먼저 놀란다. 주로 보이차가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매장 한쪽에는 작은 테이블이 마련돼 있고 그 위로 다양한 다기(茶器)들이 놓여있다. 조그만 주전자에서 찻물이 끓고 주인 원씨와 마주 앉으면 풍부한 차 이야기가 시작된다. 100℃까지 물을 끓였다가 첫 번째 탕수는 버려야 하는 이유라든가 청차, 숙차, 산차 같은 차의 종류 그리고 대엽종, 중엽종, 소엽종 같은 보이차의 종류 등 차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별한 차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를 좋아하고,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원 사장과 차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정통 보이차의 향에 빠져볼 수 있다. (772-1887)
씨에씨에 라오슈
차이나타운에 화교중산학교가 있다는 것쯤은 웬만한 인천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그 곁에 부속유치원이 있어 화교보다 더 많은 한국 아이들이 중국어로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공부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부속유치원은 작은반(5세)과 큰반(6세)으로 나뉜다. 유치원은 중국의 학제를 따라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 이제 막 입학한 작은반 아이들 중 중국인은 5명. 나머지 30명이 한국인이다. 인천에, 그것도 북성동 주변에 모여 살고 있는 화교들을 가르치기 위해 문을 연 유치원이지만 화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어 열풍이 불면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수가 역전된 지는 이미 오래다. 큰반도 다르지 않다. 45명의 아이들 중 중국인은 10명 나머지는 한국인이다.
연수구 옥련동에서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는 이미자씨(45·연수구 옥련동)는 중산소학교 2학년인 딸과 유치원 큰 반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다. ‘왜 중산학교냐?’는 물음에 이씨는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좀 더 일찍 접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싫어서”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중산소학부속유치원의 교육은 우리나라 유치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놀고, 노래하고, 그리고, 배우고…. 이 모든 일련의 교육들이 중국어로 진행된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선생님은 쉼 없이 중국어로 말하고 설명한다.
한국보다 중국말이 더 편한 동네. 그 동네에서 한국 아이들은 조금씩 중국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국제시민’에 한 발 다가선다.
한어 하오하오
한국 아이들이 중국말로 공부하려면 어찌 어려움이 없으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것은 뻔한 이치. 그래서 중산학교 근처에 한국아이들을 위해 중국어로 수업하는 ‘한어교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삼삼오오 한어교실에 모인다. 그곳에서 함께 숙제도 하고, 진도를 체크하기도 한다.
낮에는 화교학교 아이들을 위한 ‘보습학원’이지만 저녁이면 중국어 학원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차이나타운에서 살아있는 중국어를 배워보려는 이들이 기대감을 안고 찾아왔다가 만나는 중국어교실이다.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뉘어 중국어 강좌가 진행되는데 대학 앞 등의 어학원이 시험이나 문법 위주로 강의가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회화 중심의 수업이 이뤄져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763-0888)
인천살이 삼년이면 ‘니하오’가 저절로
경인전철 인천역에서 패루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북성동 사무소. 기능은 일반 동사무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국어 좀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북성동사무소는 특별한 곳이다.
북성동 주민자치센터는 ‘차이나타운’의 명성에 걸맞게 중국어프로그램을 특화해 운영하고 있다. 개설돼 있는 중국어반만 모두 6개. 성인을 대상으로 주간에 초·중·상급반이, 야간에도 초·중급반이 성인들을 위해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월요일과 금요일 낮에는 아동 중국어 초급반이 주민자치센터에서 열린다.
남구 도화동에서 이곳까지 중국어를 배우러 온다는 주부 김양희(38)씨는 북성동주민자치센터를 ‘중국어강좌의 꽃’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지만 결혼과 함께 잊고 살다가 여유를 찾고 다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김씨는 일반 어학원을 마다고 굳이 이곳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열성 학생이다. 고급반은 거의 프리토킹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사설 어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는 수준의 회화를 이곳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때문인지 중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려는 사람이라면 학원이나 문화센터 등을 다 거친 후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바로 북성동주민자치센터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760-7960)
한편 차이나타운에서 한·중국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한중문화관은 중국의 문화와 언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중국으로 가는 길’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중국어 어학강좌와 중국 문화강좌를 열고 있다.
중국어 어학강좌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강좌의 특징은 살아있는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 초급과정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언어를 어느 정도 익힌 후에는 차이나타운 내에 있는 음식점과 상점 등을 돌면서 실제로 중국어를 사용해 ‘생생’중국어를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다.
인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단 선착순 마감이므로 서둘러야 한다. 11월과 12월에 진행될 2기 중국어 어학강좌는 10월 17일부터 21일까지 20명 선착순으로 접수할 예정이다. (760-7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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