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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외치는 에로티즘의 주술 조각가 이일호 씨
2005-07-01 2005년 7월호

원초적 본능! 리비도의 마당! 이건 좀 전에 시도(矢島) 물가에서 마음을 젖게 하던 ‘풀 하우스’의 달콤한 상념이 아니다. ‘비’라는 친구, 그리고 작고 귀여운 여자 송혜교, 우아함, 로맨틱, 어쩌구는 전혀 아니다. 올 때 귀띔이 있었지만 조각가는 우리와 영 다른 상상력을 가졌다. 여기는, 이 금요일 오후의 낯설고 무더운, ‘모도(茅島)와 이일호(李一浩)’라고 새겨진 이 배미꾸미 조각 공원은, 얼른 보면 변태적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 같은 느낌이다.
구멍 뚫린 양철 남녀가 함께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는 카페 들창은 저물어 가고, 못 견디는 물결은 옛날처럼 모래톱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저들은 왜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있나. 정말 악몽인가, 자유인가, 바다를 향해 외치는 인간 내면의 비명 소리인가. 흐린 금요일 늦은 오후, 눅눅하게 몸을 감는 습기와 무섭고 흉측한 조형들이 늘어선 이 초현실의 무대.
여기저기 타조인지 공룡인지 모를 그런 억센 발톱을 한 징그러운 여인이 치부를 드러낸 채 괴롭게 물구나무서듯 몸을 꺾고 있고, 짐승도 사람도 입에서부터 항문으로 똑같이 통으로 꿰뚫린 채 하나의 서클을 이루고 있는, 보기만 해도 끔찍하게 ‘뒤’가 켕기는 윤회(輪廻)도 있고, 해골과 뺨을 비비는 편안한 남자의 얼굴과 벗은 여인의 엉덩이에 올라앉은 한밤의 올빼미도 있다. 이것들이 이일호 씨가 ‘에로티즘은 쾌락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 억압에서 인간 해방’을 꿈꾸는 상상이고 자유이고 영토이다.
그렇다면 왜 모도에? 왜 이 모래사장에? 그러나 같이 간 일행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용혹무괴(容惑無怪)를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또 다른 대학의 교수도 가끔 바다와 함께 이 조각 공원 안의 ‘죽음’과 인간 해방의 ‘에로’를 주술에 걸린 듯 매우 가상하게 감상한다. 하지만 이쪽의 짧은 머리는 고작해야 ‘바닷가 모래밭은 인간으로 하여금 옷을 벗게 하니까…’ 정도에서 멈춘다. 그런데, 이 초현실 조각가 이일호 씨는 왜 여태 안 오는가.
무언가 이 공원 주변에 말썽이 생겼는지, 그래서 챙이 있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털 부숭이 남자가 부산스럽게 뒤 산언덕을 오르내리다가, 한참 만에 마지못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가 바로 카페 여인이 말하던 이 조각 공원의 주인, 원시 군주 이일호 교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막 소주 병의 뚜껑을 열려는데 그가 앞에 와 앉는다.
“난, 뭐, 여기가 점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싫고, 또 오면 이렇게 말썽이 생기고….”
뚝뚝 끊어지는 눌변. 그래서 늦었다는 의미이지만 초대면 인사도 다정하게 나눌 줄 모른다. 성격이 매우 내성적인 듯하다. 행동, 말투 어느 것 하나도 다 뚝뚝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목구비는 아주 두렷하고 수려하다. 남자로서는 매우 깊고 진하게 잡힌 쌍꺼풀과 큰 눈, 안광, 콧날, 그리고 수염투성이만 아니라면 훤칠하게 드러날 프로필. 지금 이순(耳順)의 나이인데도 그 젊은 날 헌헌(軒軒)했을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소주를 한 잔 권한다.
비로소 그가 이쪽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고향을 말한다. 충남 보령! 아, 얼마 전에 이쪽이 보령 근방을 다녀왔다는 말을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무창포. 모 문학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물이 썬 그믐밤, 칠흑의 개펄에 길게 촛불을 밝히고 담소하던 기억을 떠올려 그에게 전해 준다.
그래서 이제 조금 허물이 없어진 것일까. 학과는 전혀 다르지만 이쪽과 비슷한 시절에 학교를 다녔으며, 삼십 중반 무렵이 되어서부터 미전에 입선을 했다거나, 그러다가 마침내 1983년 중앙일보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타 일약 유명해졌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꺼내 놓는다. 요즘 하는 일은? 이렇게 묻자 지금은 거의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면서 서울의 한 여자대학에 강의를 나간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무렵 함께 홍익대학에 다니던, 인천 출신, 조각하는 사람들도 몇 기억나는데…”
시내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여류 조각가, 지금은 도자기에 빠져 버린 고교 동창 최 모 군, 자유공원 밑의 허 백 씨, 그리고 후배 김 모 군 등을 그가 입에 올린다. 이것도 그를 조금 편안하게 했는지 모른다. 수줍은 듯한, 그러면서도 밝은 웃음의 파문이 눌러 쓴 모자 밑으로 퍼진다.
묻지를 않으면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침묵에 빠져드는 조각가. 늘 혼자서 석고를 주무르고, 대리석을 쪼고, 쇠를 자르고 깎고 하는 습관 때문에 대화하는 방법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옆얼굴을 훔쳐본다. 그의 시선은 바다에 가 있다. 고즈넉하게 앉은 모습이 퍽 순박해 보이기도 한다.
이 사람은 정말 괴짜일 수도 있고, 괴퍅일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등은 땅 위에 닿았고 하늘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이 포개져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진짜 사랑의 철학자일지 모른다. ‘사랑할 때 우리는 중력을 잃는다’라고 시적인 설명을 단 청동 조각 「돛달아라 돛달아라 돛달아라」처럼 정말 사랑 없이는 ‘이카루스’의 날개에 불과할지도….
그것을 ‘양성(兩性)의 변형된 누드 조각, 둘이 하나가 된 남녀의 성애(性愛) 형상, 풍경과 인체의 복합 구조나 추상 형태로 표현’해 내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이면서, 인간 자유 의지의 외침이면서, 해골이 상징하는 무슨 죽음의 주술 같은 두려움, 초현실의 환상과 징그러운 파충류의 무서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 내면 어디쯤에 이렇게 사회적 도덕 규범을 뛰어 넘는 변태의 에너지가 솟고 있는 것일까.‘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외치는 원초적 본능의 목소리가 끓고 있는 것일까.
“참, 제가 막 배로 나가야 해요. 지방엘 가야 하는데….”
우리를 두고 조각가는 다시 뭍으로 간다는 것. 마지막 배가 포구를 떠나는 시간은 저녁 7시 10분. 그렇다면 지금쯤은 일어나 배 터로 나가야 할 것이다. 좋아요. 웃음으로 그를 보낸다.
그가 가고 나면 우리는 모래 밭 옆에 지은 방에 남아 참담하게 끌어안고 있는 두 남녀, 고통인지 열정인지 모를 그들의 자세와 육신의 굴곡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오늘 밤 그의 모도에 내릴 빗소리를 들을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그러고 나서 사랑의 가는 빗소리 같은 주술에 걸려 깨지 않는 잠이 들 것이다. 잠 속에서 그의 ‘세상’에서처럼 성애를 나누다가 머리가 새가 되거나, 공룡의 발톱이 돋아나거나, 입에 나팔을 물거나, 가슴이 뚫리거나, 화성인의 모습이 되거나, 한없이, 한없이 공중으로 떠오르거나….
“우연히 여길 잡게 되었는데…, 네, 맘에 들고…, 오붓하게 내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차에 오르면서 그가 모도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장봉도에서 민박집을 하는 동네 사람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놀러 왔다가 모도가 눈에 들었고 어찌 어찌 해서 이 바닷가 모래 언덕을 손에 넣었고 거기에 자신의 영토, ‘사랑과 죽음’의 왕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가 옹진군 북도면 모도리 269-2번지에 조각 공원을 꾸며, 이를테면 ‘개장’을 한 것이 2004년 1월 15일. 그는 ‘모도와 이일호’라고 새긴 커다란 돌에 나름대로 이렇게 ‘선언문’을 써 놓았다.
「바다는 모도를 섬으로 고립시킬 생각이 없고, 모도 또한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 와 서 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풍부한 상상력이 모도를 매우 정직하고 특이한 나라로 만들었다. 인간 본성에 대해 드러내놓고 성찰하게 하는 자유의 나라, 환상의 세계! 그래서 모도는 조금씩 지붕의 ‘띠’를 걷어 내고 있는지 모른다.
글 _ 김 류(시인·eoeul@hanmail.net / 본명 김윤식) / 사진 _ 김보섭 (자유사진가·ericah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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