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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과 호박 둘'을 데리고 사는 민들레국수집 아저씨
“수도자들이 멋있어 보였다고 할까요.”
곡절을 알고 싶어 하는 이쪽의 속마음을 꿰뚫은 듯 민들레국수집 베드로 아저씨는 웃음의 소리처럼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검은 수도복에 싸인 수도자들이 그렇게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는 사춘기가 지나면서 인생이 무엇인가, 이렇게 산다는 것, 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던 게 이유가 되겠지요. 그래서 1976년 만수동 복자수도회 문을 두드린 것인데, 어머니 쪽으로 오랜 구교 집안이었던 까닭에 편안히 수도자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그게 스물한 살 때입니다. 그 후 1985년에 종신 서원(終身誓願)을 했고, 그러다가 1999년 11월 탈회했습니다.”
안경 속에서 가늘게 웃고 있는 눈, 말이 끝나면 단정하게 오므려 무는 입맵시, 너그럽게 생긴 뺨과 턱, 그리고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앞머리, 전체적으로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착하고 편안한 용모이면서, 또 한편 이지적이고 약간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수도자나 신부님 같은 인상인데 지금은 그냥 ‘형제들’과 ‘호박 둘’을 데리고 사는 오십, 지천명의 국수집 아저씨. 민들레 서영남(徐英男) 씨.
서영남 씨가 평수사가 되었던 것이나 다시 세상에 나와 ‘호박 아내’를 얻고, ‘그 호박 아내의 호박 딸’을 얻고, 민들레국수집을 차린 것이나 다 천주님의 부르심이었다. 베드로야, 너는 들판이나 밭고랑, 혹은 담장 밑에 민들레로 피어라.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에 피는 민들레 한 포기. 그 말씀대로 잘 생긴 남자 민들레는 그렇게 동구 화수동 266-61번지에 알전구 같은 노란 불을 켜 놓고 이웃의 얼굴을 살핀다.
“이 사람들은 형제이면서 손님들이고, 제 직책은 이 국수집 아저씨이고요. 민들레 아저씨! 어떻습니까, 좋지요?”
그렇게 해서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 이 국수집은 노숙자, 독거 노인, 걸식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이다. 처음 시작할 때, 적은 자본으로 끼니 한 때, 국수라도 먹여야겠다고 해서 굳이 국수집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속내는 밥집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을 못 쓰는 이들을 위해 메뉴가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컷 밥으로 배를 채운 뒤, 어느 날 별식으로, 밥 말고 이제 국수 좀 먹어 봅시다, 할 때까지 간판을 고쳐 달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은 겨울이어서 민들레집도 추운 것일까. 몸은 차고 손은 시리다. 연탄 난로가 놓였어도 유난히 추운 오늘, 홑겹 유리문의 국수집은 냉골이나 다름없다. 난로 옆에 이 민들레국수집 첫 손님이었다는 키가 아주 작은 박 씨가 서 있고, 그 옆에 말을 나누는 것만도 행복해서 연신 웃음을 웃는 한 사람 젊은 막일꾼 손님, 그리고 또 그 옆에는 아직 미간에 그늘 같은 것이 남아 있는 한 남자 손님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추위를 눈치 챈 아저씨가, 누가 마시다 남긴 것인지 이미 훨씬 전에 김이 빠져나간 반병짜리 소주를 스테인리스 잔에 따라 내 놓는다. 세 평 남짓한 실내는 그래야 훈기를 얻을 것이다. 오늘 목요일과 내일 금요일은 휴무일이이서 이 작고 초라한 천국의 국수집도 이렇게 고요하고 쓸쓸한 것이다. 시내 다른 급식소들이 대부분 주말과 일요일을 휴무로 하기 때문에 민들레국수집은 다른 곳 휴무를 피해 목요일, 금요일을 쉬는 날로 정했다.
“축복입니다. 저는 손님들한테서 냄새를 못 맡아요. 아무것도 맡을 수가 없어요.”
더러운 남루에 땟국이 흐르던, 눈곱을 달았던, 목욕 한 번을 안 해 봉두난발 헝클어진 머리이건 그의 손님은 귀했다. 귀하니까 코는 닫히고 마음은 열리는 것. 몇 번씩 탈출(?)을 기도해 그때마다 다시 몸도 마음도 탕자처럼 더러운 넝마가 되어 돌아온 형제 대성 씨를 벗기고 목욕시키고 새 속옷을 갈아입히는 아저씨의 너그러운 코와 마음.
정오가 가까워, 낯선 손님 하나가 이 천국의 유리문을 열려고 애를 쓴다. 형제 한 사람이 얼른 다가가 안에서 그를 도와 문을 열어 준다. 안색이 별로 안 좋은 사십 중반쯤 되는 사내 하나가 아저씨의 가늘게 웃는 눈과 마주친다. 사진을 찍는 사람, 그리고 펜을 든 낯선 이쪽 사람, 또 난롯가에 웅기중기 서 있는 형제들을 보고는 그는 이내 오늘이 쉬는 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잘못 알고 찾아온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사내. 돌아서는 그를 아저씨가 참으로 듣기 좋은 목소리로 불러 세운다.
“이봐요. 들어와 밥 먹어요. 원래 오늘은 쉬는 날이지만 밥이 조금 있으니까 상관없어요. 어서 들어와요.”
“아닙니다. 누굴 좀 찾으러 왔는데….”
황급히 달아나는, 그 어설프고 서러운 뒷모습 때문에 마음이, 마음이 목이 메어 조금 운다. 골목 밖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손님의 이름을 몰라 불러 세우지 못한다.
“이 형제들은 꼭 이름을 불러 줍니다. 이름은 자신을 느끼게 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온전한 각성이지요. 주님이 내신 이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 얼마나 귀중합니까?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누구 하나 이름 불러 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VIP 고객 명단을 작성한 것이지요.”
몇 년씩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는 사람들. 이름 불릴 일이 없으니 죽은 존재인 이 사람들을 살려 내기 위해 우정 VIP 고객이라는 그럴 듯한 허풍(?)으로 그들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 존재의 확인은 삶의 의욕을 줄 것이고 그것은 곧 사랑의 부활일 것이다. 술주정뱅이 경석 씨의 부활도 ‘나 같은 여자를 왜 감싸 주느냐’고 오히려 대들던 영애 씨, 춘자 씨의 부활도 오래지 않을 것이다. 진정 ‘내’가 ‘너’를 꽃이라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또 진정한 섬김이라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어느 깊은 내부에서 메아리쳐 온다. 병들어 천덕꾸러기가 된 노인, 무기력하고 외톨이가 된 남자 형제들, 오히려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밥을 더 먹으라고, 고기를 더 먹으라고 협박(?)하는 서영남 아저씨의 눅눅한 목소리. 그의 눈이 왜 그렇게 늘 웃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별의 웃음. 그것은 낮에 뜨는 작은 별의 웃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 바람에 스치어 사람의 향기가 나는 어느 시인의 별. 노란 민들레의 별.
이제 가야 한다. 문 밖으로 나온다. 영양이 모자란 듯 간판 글자의 노란 빛깔이 많이 바랬다. 떠나기 전에 안을 한번 다시 둘러본다. 반짝이면서 기쁨에 충만한 그릇들과 냉장고, 커다란 전기밥통, 수저, 싱크대, 양념통들, 칠판, 거울, 여섯 명이 앉는 장방형의 식탁 하나, 1년 내내 고작 몇 만 원이 담기는 붉은 돼지 저금통. 그리고 안쪽 벽 한가운데에는 빛바랜 성지(聖枝) 가지에 싸여 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고상(苦像)이 걸려 있다. 또 한 켠 벽에는 김선장이라는 분이 써서 보내왔다는 이런 글도 붙어 있다. 그것은 그들 형제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우리들, 세 끼를 빠짐없이 먹고, 삼겹살을 먹고, 생선회를 먹고, 때 없이 보신탕을 먹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글.
“소유로부터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몇 발짝 가다가 한 번 더 돌아보는 골목 안에는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다. 그 낌새를 벌써 민들레는 채고 있는 것이다. 흐린 유리창 안에서 내다보고 있는 대성 씨. 그도 민들레처럼 봄을 기다릴 것이다. 이렇게 아저씨를 돕는 기쁜 강 베로니카 호박과, 설거지를 맡은 호박 딸 모니카와, 서영남 베드로 아저씨와, 행복한 형제들에게 틀림없이 따듯하고 환한 주님의 봄이 올 것이다.
글 _ 김윤식(시인·eoeul@hanmail.net) /
사진 _ 김보섭 (자유사진가·ericah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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