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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주제는 ‘입학과 입사’

2005-03-01 2005년 3월호

눈물이 핑!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들 중에 유난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단어가 있다. ‘처음’이라는 말! 왠지 모를 설렘과 희망이 샘솟는 듯하다. 늘 그 단어를 대할 때의 마음을 유지한다면 정말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이었다. 내가 입학할 때보다 아들의 입학식에 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기저귀를 차고 연년생 동생을 괴롭히기 일쑤였던 큰애가 의젓하게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서 있는 걸 보니 아빠답지 않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표정을 다잡은 뒤 아내를 보니 아내도 나 못지않게 감동 받았는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 큰 아이가 고3의 문턱에 다다랐다. 어느새 그날의 감동은 아주 먼 기억속의 아지랑이가 되어있고 후배 녀석 아이 입학식을 ‘뭐 그까짓 것’이라며 이죽거리고 있다. 후배에게는 너무나 큰 감격적인 사건을 말이다. 아마 후배 녀석도 머지않아 마음 한구석에 보관해놓을 일을….

 


함점수 (남구 용현동)
 

 

예비중학생
몸무게 3.3kg
어린애답지 않게
조용히 흐느껴 우는 아이.
네 모습에 엄마는
무한한 모성애를 느꼈다.

슬금슬금 커가는
아이에게 많은 욕심을
불어넣는 엄마.
네 모습에 엄마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입학식날 3월 3일.
이제는 너와 나 사이
서로 잘 되기만 바랄뿐.
멋진 중학생이 되어
보람찬 인생을 설계하기 바란다.

김경숙 (서구 마전동)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졸업식
어제 교동초등학교의 92회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졸업식은 학교 식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22명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모여든 5학년 후배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강단에 빼곡히 들어와 앉아 있는 내빈 여러분들(정확하게 19명). 아무리 눈을 크게 떠 보아도 80명 이상을 셀 수 없는 조촐한 졸업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1등이 되어서 당당하게 졸업을 마쳤습니다. 22명이 장학금을 받았고 34명이 각종 시상을 휩쓸(?)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시상식, 그렇기 때문에 1등 먹었다고 우쭐대거나 꼴찌 했다고 빈손으로 걸어나가는 불상사가 전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뒤에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이번에 22명 졸업하는데요. 금년 입학생은 9명밖에 안됩니다.”
이래저래 배보다 배꼽이 큰 졸업식이었습니다.
구본선 (강화군 교동면)

 



솜사탕처럼 달콤한 입학식
아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나에게 동생이 생겼다. 1999년 2월 28일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그 순간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께서 케이크 멜로디를 주시며 동생이 태어나면 생일축하 노래를 틀어주라고 하셨다. 내가 태어날 때에도 똑같이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생일이 빨라서 7살에 입학을 하지만 무엇이든지 열심히 노력하고 꿈이 과학자인 동생 재윤이가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고 형제의 우정으로 빛나고 있다. 재윤아, 작년 겨울 할아버지 생신 때 수화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열심히 노래하고 손짓하던 너의 모습을 형은 사랑한다. 초등학교 등굣길을 같이 걸으며 너의 손을 꼭 잡고 형으로서 약속할게. 너를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지금처럼 우리 형제 다정하게 지내자고. 씩씩하고 멋진 재윤아, 초등학교 입학 진심으로 축하해.
※이 글은 사랑하는 내 동생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 글입니다.
이재성 (만수북초등학교 4학년)

모녀, 선후배가 되다
몇 해전 겨울, 남편 직장이 우리 집의 반대 방향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됐다. 다 괜찮았지만 아이들 학교가 문제였다. 이사온 집 앞에 중학교가 있어 다행이 배정받을 수 있었다. 올해 2월12일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야하는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추첨을 통해 배정받는 날이었다.
집근처에는 딸아이가 꼭 다니고 싶어하는 고등학교, 내가 오래전에 졸업한 학교가 있었다. 딸아이가 입학하게 되면 모녀가 선후배지간이 되는 것이었다. 집앞의 좋은 학교를 놔두고 먼 곳의 학교를 다니게 되면 어쩌나 무척 초조해 하면서도 딸아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었다.
나는 집 앞에 있는 학교로 배정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추첨날 마침내 딸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 저 1지망 고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딸아이의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배정은 제일 걱정했던 일, 최근 일어난 일 중 우리 가족에겐 최고로 기쁜 일이다.
강현숙 (연수구 연수3동)

늦깎이의 입학식
내 나이가 어느새 오십대의 후반에 접어들었다. 마음속엔 언제나 찌꺼기가 가라앉은 듯한 후회가 있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 학교를 포기 했던 시절이었다. 이십대엔 결혼을 일찍 해 남매를 키우느라 느끼지 못하다가 삼십대부터 사회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뼈저리게 후회했는지 모른다. 오십대에 들어 우연히 TV에서 성인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을 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어 힘들게 말을 했다. 우리가족은 생각 외로 반겨주었다.
몇 십년 만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3월 3일 입학식 날. 청소년들과 같이 운동장에서 선후배간 인사를 했다. 나는 남인천 중학교 1학년1반.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엔 서먹함이 있었지만 한달이 지난 후부터는 학생들이기 전에 아줌마들의 표현 그대로였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흐르며 나는 학생회 부회장이 되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나는 학생회 부회장으로 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은 학창시절 맘껏 일하고 즐겁게 학생회도 화합할 것이다.
이제 사월이면 체육대회가 열리고 오월이면 수학여행을 간다.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 먹고 나면 오늘도 나는 책가방을 들고 남인천고등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박순예 (연수구 연수1동)

입학식을 기다리며
큰 딸에 비해 키도 작고 체구가 작은 둘째딸은 어느 날부터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달력에 엑스자를 그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3월 2일 입학식을 기다리는 눈치다.
친구들은 취학통지서가 나왔는데도 우리 아이는 통장님께서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늦게 전달된 어느 날이었다. 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다녀왔다는 인사대신 “엄마 취학통지서 나왔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남편이 아이를 놀리려고 한마디 거들었다. “밥 잘 먹지 않고 키 작은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없어” 그 순간 그 큰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다. 아이도 나름대로 많은 걱정을 한 것 같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난 아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키가 작아도, 똑똑해서 학교에 갈 수 있단다.” 이 말에 아이는 금방 표정이 밝아졌다.
예비 소집일 날 학교에 가는데 큰 아이 때와는 사뭇 다르다. 설렘도 큰 아이 때보다는 덜하고 내 눈이 가는 곳도 엄마 손잡고 따라온 아이들이었다. 우리 아이보다 키들도 크고 몸집도 컸다.
옛말에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도 또래들 보단 작지만 언니보다 학교생활을 더 멋지게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둘째딸 아영이 아자, 아자, 아자!!!
황금숙 (서구 가정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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