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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동 달동네 소년 인천시장 되다
송림동 달동네 소년
인천시장 되다
"큰 꿈을 품고 바다로 나갔던 연어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민선 6기 인천시정을 이끌 유정복 시장은 인천 원도심 중의 하나인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났다. 역대 시장들 가운데 인천 출신이 없었기에 유 시장은 인천 출신 첫 시장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유 시장의 어제와 오늘은 인천과 맞물려 돌아간다.
유정복 시장은 1957년 송림동 수도국산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다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a그가 태어났던 자리는 현재 도시개발로 사라지고 달동네박물관으로만 남아있다.
“송림동 달동네에서
힘들었지만 꿈을 키워왔던 시절이
가장 행복한 기억”
그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송림동 달동네에서 힘들었지만 꿈을 키워왔던 시절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는 송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인중, 제물포고등학교에서도 항상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만큼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었다. 유 시장은 꿈을 이루고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공직 진출로 진로를 수정한 후 대학 3년 때인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유 시장은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1984년 강원도청과 내무부에서 공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94년 36세에는 제33대 전국 최연소 김포군수로 1995년에는 37세 최연소로 인천 서구청장을 지냈다. 김포시장 재임시절에 인허가 업무를 통합 처리하는 ‘허가과’를 신설해 시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 시장은 김포시장 3선에 실패하자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포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초선의원이었던 17대 국회의원시절 국정감사 우수의원(2004), 입법 활동과 출석률 등 종합평가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3선 국회의원으로 농림수산식품부, 안전행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시절 발생한 구제역 때에는 장관실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24시간 진두지휘했고 사태수습 후에는 ‘구제역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인천시민들은 30년 행정 경험으로 말단 실무부터 예산 확보까지 시정 전 분야를 상세하게 알고 있는 그에게 ‘경제가 살아나는 인천, 교육 안전 일류도시, 삶이 풍요로운 인천’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유 시장은 자신의 고향이자 뿌리인 인천을 동북아 최고의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정치적인 목적을 앞세우지 않고 늘 시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시장이 돼, 300만 인천시민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 그동안 성원해 준 모든 시민들에게 감사하며 시정에 헌신하겠다.”는 말로 포부를 밝혔다. 민선 6기 인천시장 유정복, 그는 지금 ‘희망인천’을 만들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고 인천시민과 함께 뛸 준비를 마쳤다.
초등학교 시절(오른쪽)
고등학교 시절
(앉은 사람 중 오른쪽에서 2번째)
군장교 근무 시절(왼쪽 손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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