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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가을 포구, 낭만 그레이

2014-11-04 2014년 11월호


비 오는 가을 포구, 낭만 그레이

가을비가 내린다. 시간이 멈춘 듯, 빛바랜 포구. 빗물에 푹 젓은 흙빛 바다가 더욱더 진하고 깊은 빛을 발한다. 현실이 아닌 듯, 물기 가득한 공기 한가운데 스산한 기운을 잔뜩 안고 서 있는 공장지대는 북성포구 만의 정서를 극대화시킨다. 햇빛 쨍쨍한 날이라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하늘도 바다도 땅도 온통 잿빛, 비 오는 가을 한가운데 북성포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바다

지독했던 여름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가을이 스며들었다. 요 며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오늘따라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살갗에 닿는 공기의 촉감이 흠칫 놀랄 만큼 차다. 흘러가는 자연은 한순간 놓치면 이내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만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갯골 따라 밀려오는 바닷바람 따라 길을 나선다.
그곳에 바다가 있으리라, 인천사람이라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월미도 가는 방향 만석고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좁다란 골목길에 다다른다. 그 길을 따라 대한제분 인천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북성포구’를 알리는 낡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진입로가 황량해 실망스럽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풍경이 펼쳐진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북성포구 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그 강도를 더 한다. 더 거칠고 더 투박하고 날것 그대로 더 생명력 넘친다.
포구 가는 길, 거친 제 속살을 감춘 갯골 위로 흙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바다 건너편 거대한 공장지대는 쉴 새 없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하늘 높이 원목을 쌓아올린다. 이 땅에 몰아닥친 산업화와 현대화의 거센 물결과 그 앞에 내몰린 포구, 그 곁을 묵묵히 지켜 온 바다가 하나의 캔버스 위에 묘하게 어우러진다. 그 어느 바다가 이러한 풍경을 연출한단 말인가. 북성포구는 단순히 기억의 후미진 저편에 자리 잡은 옛 포구가 아니다.



물기 가득한 포구, 밀려드는 짠 내
비릿한 바다 냄새가 훅 끼친다. 포구에 다다른 것이다. 물기 가득 머금은 포구는 바다의 강한 생명력을 더욱더 도드라지게 한다. 비에 젓은 차가운 가을바다를 헤치고 배들이 하나둘 육지의 품으로 들어온다. 물때를 어떻게 알았는지, 쏟아지는 비를 뚫고 사람들도 모여든다. 닻을 내린 서너 척의 배가 순식간에 작은 어시장으로 변한다. 평소 같으면 싱싱한 날것들이 쏟아져 나왔겠지만, 궂은 날씨에 물고기도 바다 깊이 숨어버렸다. 새우, 꼴뚜기, 그리고 이름 모를 잡어 조금이 갑판 위에서 힘겹게 헐떡거리고 있다. 
“때를 잘못 왔어. 이런 날에는 배 서너 척도 들어올까 말까인데…. 주말에 와. 물때 잘 맞으면 만선도 볼 수 있어.” 이제 막 장사를 마친 김순내(58) 아주머니가 날씨 때문에 오늘은 별 재미를 못 보았다며, 물에 젖은 꼬깃꼬깃한 지폐 뭉치를 펴고 돈을 센다.
북성포구 일대는 6·25 전쟁 때 북에서 온 실향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잠시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세월은 흘러 흘러 60여 년이 지났다. 그네들의 땀방울로 일군 북성포구는 80년대까지 만해도 가까이 화수부두, 만석부두와 함께 만선의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과거의 영광은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포구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수상가옥 같은, 포구의 횟집


비 오는 창밖 너머, 포구

삶이 흐르는 바다, 그리고 위안
포구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횟집 대여섯 군데가 미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뼈대를 드러내고 바다 위에 부유하듯 떠 있는 가게들이 마치 수상가옥 같다. 횟집이라기보다 선술집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그 안에는 여전히 바다에 기대어 살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미소 횟집’의 김봉애(63) 할머니는 9살 때 6·25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왔다. 이후 줄곧 바다 곁을 떠난 적이 없으니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는 30여 년 전에 가게 문을 열어 지금껏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가게를 포함해 두 곳이 있었어. 전기도 수도도 안 들어오는 길바닥에서 버려진 타이어를 놓고 장사했으니 가게라고 할 수도 없었지.”, “9살이면 내려오느라 힘들었겠어. 똥마당에는 뭣하러 왔어.” 옆에서 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어르신이 한마디 거든다.
‘똥마당’. 한때 북성포구 일대를 부르던 말이다. 그 옛날 인근 미군부대에서 똥을 내다버려서 라고도 하고, 근처 피난민 동네의 화장실 역할을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설마 바다에 똥을 버렸겠냐며, 근처 ‘하꼬방’에 살던 피난민 아이들이 골목에 하도 똥을 싸놓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설을 바꾸어 버린다.
지금 횟집 앞에는 오가는 발걸음들이 오늘 잡은 싱싱한 날것을 고르느라 바쁘다. 한창때 만은 못해도, 포구의 짠 내를 잊지 못해 찾는 단골들은 여전하다. 바다에 마음을 꺼내 두고 회 한 점 술 한잔으로 시름을 달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여기 흐른다.


밤 한가운데 성처럼 떠오른 공장지대



포구는 살아 있다
날이 차츰 검기울더니, 해가 노을을 흘릴 새도 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공장지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아직 잠들 줄 모른다. 밤이 깊어 갈수록 바다와 하나로 스르르 어우러지는 빛깔. 고요함이 밀물처럼 밀어닥친다.
긴 세월 이 땅에 휘몰아친 산업화와 현대화의 거센 물결을 바다는 묵묵히 지켜보고 견뎌내었다. 그 바다 끄트머리에 있는 나이 든 포구는 쇠락했지만 생명력은 여전하다. 바다 속에서 은빛 희망을 낚고 한잔 술에 시름을 달래며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 안에 머문다. 포구는 아직,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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