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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스크린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가을이 무르익었다. 적당한 햇살 적당한 바람, 모든 것이 모자람과 지나침이 없이 알맞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잠들어 있던 감수성도 살며시 눈을 뜬다. 굳이 길을 떠나야만 흘러가는 계절을 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을처럼 깊고 풍부한 영화 한 편으로, 이 계절을 한껏 끌어안는 사람들을 만났다.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정정호 자유사진가
옛 것이 주는 편안함 ‘배다리 안내소 꼬꼬마 극장’
세월의 곱절이 자욱이 쌓인 헌책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인천양조장, 오래된 의상실과 문구점… 배다리는 우리가 간직해야 할 풍경을 붙잡고 있는 고마운 동네다. 그 마을 입구에 ‘배다리 안내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군데군데 파란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외벽에 ‘조흥’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두 글자,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환경운동가 권은숙(45)씨는 한옥과 일본식이 혼합된 1940년대 건물을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로 개조해 세상 앞에 내놓았다. 그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썩어가던 쓰레기더미 조차 그의 볼 줄 아는 눈과 따듯한 손길로 묵은 먼지를 털고 새 생명을 얻었다. 오래된 사진, 묵직한 전화번호부, 낡은 나무 책상… 손때 묻은 물건 안에 담긴 누군가의 사연이 아련히 밀려오는 듯하다.
달이네는 1층 안내소를 비롯해 게스트 하우스, 생활 전시관, 뜨개 공방, 책 쉼터, 동네 영화관 등 그 작은 공간에서 참 다양한 역할을 한다. 1층 안내소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후 두 시에 ‘꼬꼬마 극장’이 열린다. 배다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매주 대여섯 명이 모여 영화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비 오는 시월의 셋째 주 상영작은 ‘마이 시스터 키퍼(My Sister’s Keeper)’. 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다.
‘느릿느릿, 천천히 둘러보세요. 맘껏 즐기세요.’ 오래된 것들이 풍기는 편안함이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지나 다다른 빛바랜 동네 입구의 작은 쉼터. 그 안에서는 그저 책 한 권 읽고 영화 한 편을 보아도 충분히 행복하다.
언제 매주 월요일 오후 2시~4시(꼬꼬마 극장 상영일)
어디서 배다리 입구에 있는 달이네 1층, 배다리 안내소
무엇을 영화 감상, 생활사 전시관 관람, 뜨개질 수업, 중고물품 및 재활용품, 유기농 먹거리의 윤리적 소비, 잠시 쉬어가기,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어떻게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문의 청산별곡 010-9007-3427, 달이네 카페(cafe.naver.com/fullmoonh)
관객을 넘어 감독으로 ‘하품학교’
피곤하고 지칠 때, 기지개를 켜고 하품 한번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좋은 영화를 보며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도 그러하다. 2004년 남구 학산문화원에서 시작한 시민 영화감상 동아리 ‘하품학교’는 하품을 하듯 나른한 일상을 깨운다.
하품학교에서는 영화를 본 후 영화 전문가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회원들 스스로 영화 해설과 상영 프로그램 운영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상영작의 테마는 아이들과 여성의 인권, 가족간에 사랑 등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내용이다. 올해의 테마는 ‘Only One(우리와 우리 마을,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폐증이 있는 여인의 실화를 다룬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타인의 삶’,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의 작품을 선보여 호응을 이끌었다.
하품학교는 특히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함께한 시간을 필름 속에 녹여 영화제로 활짝 꽃피운다. 회원들이 함께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세상에 선보이는 ‘하품영화제’는, 어느덧 11회를 맞으며 작지만 의미 있는 마을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하품학교 사람들에게 영화란 단순히 ‘보는’ 예술이 아닌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삶 그 자체다. 삶을 영화처럼 영화를 삶처럼, 그들은 지금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인생의 필름을 돌리고 있다.
언제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어디서 영화공간 주안 내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상영관(4관)과 컬쳐팩토리관
무엇을 영화 감상, 비평, 제작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대한 모든 것
어떻게 남구 학산문화원에서 신청하며 가입비는 무료. 일반회원은 영화 관람 및 토론에 참여, 하품지기 동아리 회원은 상영작 선정, 영상제작 교육 및 영화 제작 과정 등에 참여 가능
문의 남구 학산문화원 866-3993~4(hapum.haksansodam.com)
영화 같은 일상이 여기에 ‘힐링무비톡’
“영화는 하나의 여행입니다. 스크린으로 들어가 삶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살아갈 힘을 얻으니, 영화야말로 최고의 힐링이 아닐까요?”
우리는 영화를 보며 잊고 있던 나를 찾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며 때론 살아 갈 에너지를 얻는다. 영화감상 동아리 ‘힐링무비톡(Talk)’의 운영을 맞고 있는 신동명씨는 30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이 모임은 작년 ‘부평 문화사랑방’에서 주최한 영화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폭 넓은 연령 대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회원들은 영화를 중심으로 세대와 상황을 뛰어 넘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각기 다른 시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만큼 상영작도 장르와 시공간을 넘나든다. 올해의 테마는 ‘세계 영화 여행’으로 바다 건너까지 시야를 넓혔다.
모임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우리는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부담 없는 ‘수다 모임’이예요.” 회원들은 함께 영화를 본 후, 거창하게 작품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고 느낀 바에 대해 편안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영화가 싹 틔운 이야기는 어느 새 어린 시절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후에는 함께 영상 속에 나오는 음식을 먹어 보고, 촬영한 장소를 찾아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 잊고 있던 추억을 찾아 새로운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다.
언제 매달 첫째 주 월요일 오후 7시 20분,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어디서 부평 문화사랑방
무엇을 영화 감상과 자유로운 수다
어떻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임에 참여 가능, 회비를 내고 정회원으로 가입하면
더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 힐링무비톡(healtalk.blog.me), 신동영 010-6354-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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