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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입성 후애(後愛)
2002-10-08 2002년 10월호
서울에서 살다 아이들이 어린 관계로 주말이면 으레 강화방면으로 역사나들이를 자주 다녀오곤 했다. 그러던 중 즐비하게 늘어선 모델하우스를 방문하고는 그곳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매력에 흠뻑 빠져 며칠 후 우리는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런 계기로 인천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인천에 대한 여러 선입견으로 인해 망설임도 많았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셈. 우리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인천에서도 마지막으로 개발할 곳이라는 지역에 들어와 살림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은 곳이라 상당한 불편이 따랐다. 아이들의 학교는 집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이상이나 떨어져 매일 아침 학원 차를 이용하거나 아빠가 출근할 때 데려다 주곤 했다. 이전에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바로 집 담벼락만 돌면 나오곤 했는데 너무 멀어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도 다소 떨어져 있어 생활해 나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고 이겨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이 보인다는 믿음 아래 하루 하루를 적응해 나가다 보니 주위에 따스하고 인정 많으신 분들을 하나둘씩 알게되어 이젠 등 떠밀며 나가라고 해도 나가도 싶지 않은 나의 터전이 되었다.
인천에 들어온 후로 나에겐 참으로 많은 추억이 안겨졌다. 인천공항이 개항 된 이래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또 얼마 전 열렸던 월드컵 행사 때 인천시를 위해 참여해 뜻깊은 시간도 듬뿍 가졌다. 또한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해 시도하지 못했던 하고 싶은 나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내 놓고 있으니 얼마나 행운의 터전이 되었는가.
아이들의 학교 또한 2학기부터는 바로 집 앞으로 건축이 되어서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한다. 뒤돌아보면 이만큼 적응하기까지 갈등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내가 딛고 사는 이 땅이 우리의 고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숙 (서구 마전동)
처음에는 인천에 대한 여러 선입견으로 인해 망설임도 많았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셈. 우리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인천에서도 마지막으로 개발할 곳이라는 지역에 들어와 살림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은 곳이라 상당한 불편이 따랐다. 아이들의 학교는 집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이상이나 떨어져 매일 아침 학원 차를 이용하거나 아빠가 출근할 때 데려다 주곤 했다. 이전에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바로 집 담벼락만 돌면 나오곤 했는데 너무 멀어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도 다소 떨어져 있어 생활해 나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고 이겨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이 보인다는 믿음 아래 하루 하루를 적응해 나가다 보니 주위에 따스하고 인정 많으신 분들을 하나둘씩 알게되어 이젠 등 떠밀며 나가라고 해도 나가도 싶지 않은 나의 터전이 되었다.
인천에 들어온 후로 나에겐 참으로 많은 추억이 안겨졌다. 인천공항이 개항 된 이래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또 얼마 전 열렸던 월드컵 행사 때 인천시를 위해 참여해 뜻깊은 시간도 듬뿍 가졌다. 또한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해 시도하지 못했던 하고 싶은 나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내 놓고 있으니 얼마나 행운의 터전이 되었는가.
아이들의 학교 또한 2학기부터는 바로 집 앞으로 건축이 되어서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어 감사한다. 뒤돌아보면 이만큼 적응하기까지 갈등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내가 딛고 사는 이 땅이 우리의 고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숙 (서구 마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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