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흐르듯…스미듯… 때론 뿜어내듯
‘소리는 호남, 춤은 영남’이란 말이 있다.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지역적 소외에서 인천시립무용단은 전통 춤의 곰삭은 맛에 현대적인 감각과 극적 이미지를 되살린 창작의 맛을 가미시켜 그들만의 춤제를 창출했다. 인천시립무용단은 연습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춤사위가 몸 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자연스러운 선으로 흘러나올 때까지 하나의 동작을 ‘수백 번씩’ 반복 연습한다.
#연습실에서
무용단을 찾은 날 오후 바깥 공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연습실의 문을 여는 순간 습기 가득한 열기가 뿜어져 나와 찬 공기를 밀어냈다.
며칠 후에 공연할 우수단원 창작무대 ‘가을 춤 여행’의 연습이 한창이다. 이미 한바탕 격렬하게 춤을 춘 단원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을 벌컥 들이킨다.
강렬한 춤사위, 몽환적인 전자 음악, 흐트러진 신문지 조각들, 전위적인 의상 등 연습실의 풍경은 무대에 올려질 공연이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한다.
“내면의 추(醜)가 확 떨어져 나가듯 끈을 힘차게 던져야지.”
연습 중간 중간에 시립무용단 한명옥 예술감독의 지적이 쉴새없이 쏟아진다. 손가락 떨림 하나부터 세밀한 발 동작까지 허툴게 다루지 말고 선명한 춤선을 그려낼 것을 주문한다. 그래도 무용수의 동작이 성에 차지 않는지 플로어에 나가 ‘시범’을 보인다. 그의 얼굴에도 구슬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한번 시작된 연습은 작은 시계바늘이 세 번 돌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작품은 무용수들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처럼 아직은 덜 익은 ‘생 춤’이다. 오늘도 연습실의 불은 자정 가까이에 꺼졌다.
#소공연장에서
10월 10일 오후 7시 30분. ‘가을 춤 여행’의 막이 열렸다. 오늘 공연할 작품은 검은 새(안무 김유미), 독(양성미), 오호통재라…(장지영), 추(홍지영) 등 네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인천시립무용단의 색깔은 아니다. 단원들의 생각과 몸짓을 담은 실험적인 무대로 창작 열기를 북돋워주는 일종의 ‘습작’들로 구성되었다.
먼저 검은 새가 무대를 날았다. 구천을 떠도는 슬픈 영혼과 가슴 저미는 한이 춤 속에 용해된다. 저들이 며칠 전 연습실에 보았던 무용수들인가. 조명과 음악, 장치와 소품은 춤의 일부이고 춤꾼은 역시 무대에서 빛난다더니 비로소 그 말이 실감난다.
독(毒)이 다음 무대를 이어 갔다. 흐르듯… 스미듯… 때론 뿜어내듯… 무대에서 그들은 자신의 춤 언어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춤이 해독제라고.
조침문을 작품의 원형으로 삼은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바늘이여’는 고전적인 춤사위에 올림푸스 신전 여인들의 몸짓이 가미된 듯한 작품이다. 아프리카 토속리듬에 맞춰 백스텝으로 바느질을 하는 동작이 기발하다.
추(醜)는 마치 현대판 살풀이 춤 같다. 내 딛는 보폭마다 백태(百態)의 곡선이 연출된다. 한을 품어도 흥을 버리지 않고 흥겨움 속에도 한이 스며 있다. 어느새 무대는 ‘추할 추(醜)’에서 ‘가을 추(秋)’로 전이되고 있었다.
#무용단의 가을 무용담
인천시립무용단은 전통에서 현대 무용까지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체이다. 전임 감독들의 색깔이 무용단에 그대로 녹아든 덕분이다. 이청자 전 감독은 단원들에게 창작열을 심어줬고 김영숙 전 감독은 궁중 전통 무용인 정재의 춤사위를 단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줬다. 2001년 4월에 취임한 한명옥 감독이 한국 창작 춤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창무회를 거친 후 이매방류 춤을 전수 받은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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