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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좌절이 아니라 도약대입니다
“바닥은 좌절이 아니라도약대입니다”
요양원 복도 게시판에 박근혜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한 사진이 붙어 있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지만 그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머리카락만 보일 뿐이다. 남들 눈엔 대통령만 보일지 모르지만 그에겐
귀한 사진이다. 지나온 자신의 시간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글 유동현 본지 편집장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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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할 거라면 주댕이 내밀지 말라.”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가경요양원’의 곽정숙(56) 원장은 그렇게 살아왔다. 바닥까지 갔어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바닥을 도약대 삼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4년 시련이 시작되었다. 계양구에서 전선 제조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남편이 3년 병치레 끝에 세상을 등졌다. 그 빈자리를 메우려 공장에 나갔지만 경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이(π), 3.14…, 전선 용어는 그에게 마치 외계어와 같았다. 거래처가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마침내 공장 문을 닫게 되었다. 남편이 일궜던 재산이 모두 날아갔다. 졸지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딸과 아들 세 식구만 덩그러니 남았다. 뭐든 닥치는 대로 일해야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먼저 지역 일자리정보센터에 등록했다. 며칠 후 임시로 일할 수 있다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애꿎게도 그곳은 남편과 자주 갔던 일식집이었다.
“사모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왜 혼자 오셨어요?” “주방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저 좀 써주세요.”
매일 저녁나절부터 5시간 동안 설거지를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하얀 접시가 수없이 쏟아져 내려왔다. 이후 평소에 입에도 대지 않던 보신탕집에 가서 행주치마를 둘러맸고, 마트에서는 이불을 팔았다. 초등학교 특수보조교사, 주민센터 사회복지 보조요원도 했다.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다 했다. 일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2009년 우여곡절 끝에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인천지회를 통해 ‘생계형 창업자금’ 2천500만원을 받아 계양구 병방동에 12평 규모로 재가복지센터를 차렸다. 밤낮없이 일한 결과 그는 3년 8개월 8일 만에 그 돈을 다 갚았다. ‘우수 성공 사례자’로 꼽혀 여성경제인의 날에 대통령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다.
2012년 11월 부평구 삼산동 건물 한 층 72평을 2억2천만 원에 전세 내 가경요양원(노인공동생활가정)을 창업했다. 얼마 전 그 층을 아예 매입할 만큼 사업은 자리 잡았다.
사모님에서 기초생활수급자, 그리고 원장님까지. 지금껏 그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심한 굴곡이었지만, 앞날은 요양원의 이름처럼 될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한다. ‘가경(嘉慶)’은 즐겁고 경사스러운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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