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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이 지나도 머무를, 섬의 기억

2015-04-06 2015년 4월호


이 봄이 지나도 머무를, 섬의 기억

다사로운 햇살이 감미로운 사월의 어느 날, 문득 바다가 그리워 길을 나선다.
섬을 좇는 그리움은 길지만 거리는 가깝다. 뱃길로 단 십 분이면,
북도면에 사이좋게 떠 있는 섬 신도, 시도, 모도에 다다른다.
먼 옛날 물참엔 배를 타고 잦감엔 갯벌 위로 건너던 섬은 다리가 놓이면서 하나가 되었다.
세 섬은 하나로 이어도 아담하지만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파고든다.
어느 사월의 봄날, 섬에서 보낸 하루. 그 여행의 기억은,
이 봄이 지나고도 오랫동안 마음에 머무를 것이다.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일상에서 섬까지, 뱃길로 십 분

햇살도 바람도 공기도 더 없이 완벽한 사월의 봄날. 영종도 삼목선착장에는 북도면으로 가려는 차들이 드문드문 서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휴가철이나 휴일이었다면 조급한 마음으로 핸들을 붙잡고 길게 줄을 섰으리라. 기다림은 아주 잠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차가 미끄러지듯 바다 위로 오른다. 여객선이 하얀 물꽃을 일으키며 물결을 가로지른다. 갑판 위에 섰다. 새우과자에 맛 들린 갈매기들이 빙빙 돌며 환영 인사를 한다. 아침 바람이 조금 차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접촉이다.
육지에서 바다 건너 섬에 이르는 시간은 십 분 남짓.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는 모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 하나와 다름없다. 먼 옛날 물차면 나룻배를 타고, 물 빠지면 갯벌 위로 건너던 섬은 다리가 놓이면서 한 몸이 되었다. 세 섬은 하나로 이어도 아담하지만,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 해로는 짧다.
가장 먼저 만나는 섬, 신도에는 구봉산이 봉긋 솟아있다. 산은 너그러워서 섬 곳곳에 품을 열고 세상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숲은 그늘이 짙고 산세가 나지막해 걷는 맛이 여유롭다. 벚꽃이 탐스럽게 핀 봄이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쉬엄쉬엄 산길을 오르기를 삼사십 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발자국이 닿는다. 해발 176m 구봉산 정상. 눈앞 가득히 펼쳐진 바다 그리고 바다, 그 너머로 세계의 하늘로 비상하는 인천국제공항이 아스라이 보인다.



본연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바다
신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시도에 이른다. 해안을 따라 갯벌이 이어지고 사이사이 시골 마을의 평화와 서정이 흐른다. 이 섬은 드라마 촬영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수기 해수욕장에 있던 드라마 ‘풀하우스’ 세트장은 태풍에 무너지고, 언덕 위 ‘슬픈연가’ 세트장은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해 빛바래 가고 있다.
하지만 해변에는 그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을 풍경이 펼쳐진다. 고운 모래사장이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뻗은 바닷가는 솔숲이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아늑하다. 그 너머로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은 잔잔히 아름답다. 휴가철이면 인파로 몸살을 앓는 바다는, 이제야 본연의 아름다움을 하나둘 자아내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복슬복슬한 강아지 두 마리가 엉겨 장난을 친다. 살랑거리는 걸음을 따라가 보니, 바닷가 한편에 자리 잡은 펜션 ‘풀사이드(Poolside)’에 이른다. 작년 가을에 문을 연 이 펜션은, 도심 한복판의 건물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 모던하고 트렌디하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과 잘 어울린다. 카페 창 안으로 푸른 물이 스며들 듯이 바다가 넘실거린다. 그 너머에는 강화 마니산이 손짓을 한다. 지는 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화리 해변도 한달음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해변 언덕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밀스레 숨어 있던 염전이 나타난다. 인천에는 이곳 북도면과 백령면에서만 새하얀 소금 꽃이 핀다. 바닷물은 오랜 세월 해와 싸우고 바람을 다독인 후에야, 비로소 하얀 새 숨을 얻는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소금밭 염전. 잠시 숨을 고르고 발걸음을 느리게 움직여 본다. 때마침 창고에선, 수북이 쌓인 천일염을 자루에 담느라 염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랜 기다림과 정성으로 빚어낸 육각형의 결정체를 음미해 본다. 달콤 짭조름한 바다 향이 입안에 파문처럼 번진다.



섬,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면 모도에 다다른다. 삼 형제 중에서도 가장 작고 조용한 섬이지만 색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바로 섬 남쪽 바닷가에 다른 세상인 듯 내려앉은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매력의 중심이다. ‘초현실주의’를 지향하는 이일호 조각가는, 특유의 감성으로 해변을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빚어냈다. 휴머니즘과 에로티시즘을 넘나드는 조각 30여 점이 바다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업실을 개조한 공원 옆 카페, 차 한잔으로 도회의 거친 삶을 어루만진다.



집으로 가는 길, 시도에 왔으니 북도양조장을 그냥 지날칠 수 없다. 섬에서 유일한 양조장으로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쉽게도 양조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낡은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다. 2년 전 시도 여행 때는 배덕희(당시 83세) 할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40여 년 전 서울에서 이 섬으로 들어와, 양조장의 전통을 30년에서 70년으로 늘려 놓았다며 자랑스러워하셨다. ‘할머니는 건강히 잘 계시겠지.’ 깨끗하면서도 깊은 도촌 막걸리 맛이 입안에서 감도는 듯하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저물어 간다. 육지로 가는 마지막 배가 닻을 내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뱃길로 십 분. 섬은 언제라도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섬을 향한 그리움은 길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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