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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시간 속으로 걷다
천년 시간 속으로 걷다
강화에는 무수한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비운의 왕이 머물던 고택에서 출발해, 고대 성곽에 오르고, 슬픔의 빛깔로 도배된 옛 궁궐터를 거닐다, 700여 년 세월을 비밀스레 품은 나무 아래서 깊은 숨을 내쉰다. 누구라도 걷고 싶게 만드는 계절에, 역사의 시간이 곳곳에 고인 그 길로. 걷고 또 걸었다.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강화 땅을 걷는 것은 한민족의 오천 년 역사를 넘나드는 여정이다. 강화 깊숙이 들어갈수록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기나긴 역사가 흠씬 배어 있다. 강화군청은 인천 관광주간을 맞아 ‘강화 나들길’ 15코스인 고려궁지와 강화산성 일대를 ‘놀이 책’을 따라 둘러보는 역사기행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두터운 책 속의 역사가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는 순간, 마음은 기나긴 역사의 발자취 속으로 성큼 다가선다. 햇살 좋은 날 두 손에 지도와 놀이 책을 들고, 강화 너른 땅 천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PM 12:00 용흥궁
지도 들고, 왕이 살던 고택으로
고른 한낮 역사기행의 첫발은 한옥 관광안내소에서 내딛는다. 고아한 정취가 흐르는 옛 건물에 들어서면 오늘 여정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지도와 놀이 책이 쥐어진다. 가장 먼저 다다른 곳은 용흥궁(龍興宮). 조선 25대 왕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열아홉 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강화 무지렁이로 살다,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32년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에게 강화는 유배의 땅이자 그리움의 대상이었으리라. 용흥궁은 아담하지만 왕권에 걸맞은 기품과 위엄이 깃들어 있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강화도령이 왕이 된 후인 1853년 강화유수가 현재의 세 칸짜리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다.
여행 메모 강화 한옥관광안내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운영 시간 이후에는 관광안내전화 1330을 이용한다. 영어, 일어, 중국어로도 안내한다. 문의 한옥 관광안내소 933-3771
놀이 책 미션 용흥궁을 둘러본 후, 용흥궁 관리소 앞에서 첫 번째 스탬프 찍기.

PM 12:30 드라마 촬영지
추억이 일상으로 흐르는 동네
이제 구불구불 읍내 골목기행이 시작된다. 강화읍 관청리. 방실 슈퍼, 동미 이발관, 동문 양장점…. 이름도 정겨운 가게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을 걷노라면 자꾸 달력을 들여다보며 날짜를 확인하게 된다.
이 동네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분 건, 드라마 ‘전설의 마녀’를 촬영하면서부터다. 가장 출세한 건 ‘서촌 세탁소’다. 이상철(55) 씨가 20여 년간 꾸려온 ‘럭키 세탁소’는 리모델링을 거쳐 번듯하게 다시 태어났다. 이참에 상호도 드라마 속 이름으로 바꿔 달았다. 길 건너편에는 드라마 세트장 ‘마법의 빵집’이 생겨났다. 한적하던 동네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이고, 멀리서 외국인들이 찾아와 골목 구석구석을 걷기도 한다. 일상을 파고드는 관심이 귀찮을 법도 한데, 주민들은 “강화가 더 알려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며 품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여행 메모 용흥궁과 철종이 강화도 처자 봉이와 풋풋한 사랑을 나누었던 ‘강화도령 첫사랑길’에서도 드라마를 촬영했다.
놀이 책 미션 드라마 속 촬영장소 앞에서 인증 샷 찍어, 놀이 책에 추억으로 남기기.

PM 01:00 동문
백성의 눈물로 쌓아 나라 지킨, 강화산성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로 온 고려왕 고종은, 1232년 강화산성(사적 제132호)을 쌓았다. 성은 당초에 내성, 중성, 외성으로 견고했으나 현재는 내성만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강화산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4개가 있는데, 그 길을 둘러만 보아도 한민족 역사의 한줄기는 꿰뚫어 볼 수 있다.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강화산성은, 1259년 몽골과 화친(和親)을 맺는 조건으로 허물어졌다. 그 고통은 성벽을 쌓는 것보다 컸다. 역사서 ‘고려사’에는 당시 성을 허물던 백성들이 이럴 줄 알았으면 성을 쌓지 말았어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산성이 옛 모습을 찾은 것은 조선시대로, 허물어지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중에서 동문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고 무너진 것을 2004년에 이르러 복원한 것이다.
놀이 책 미션 강화산성 동문 앞에서 두 번째 스탬프 찍기. 그리고 동문 천장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찾아보기. 정답은 용.

PM 01:30 성공회 강화성당
팔작지붕 위, 햇살 비춘 십자가
동문에서 다시 용흥궁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이 땅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건물이 나타난다. 이층 기와집에 십자가를 세운 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이다. 빛바랜 태극무늬가 그려진 빗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옥으로 지어진 본채 건물이 나타난다. 단청으로 처리된 서까래, 팔작지붕에 올라앉은 용머리, 기둥마다 걸린 내리 쓴 주련(柱聯), 들보 끝의 연꽃무늬…. 사찰의 대웅전인가, 착각이 드는 순간 지붕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에 시선이 머문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양 기독교 문명과 한국 전통문화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코프 주교와 사제들은 이 땅의 전통을 끌어안고, 1900년 첫 대한성공회 성당을 세웠다. 1910년대까지 강화지역 선교의 중심이었던 성당 언덕에선, 오늘도 여전히 기도소리가 울려 펴진다. 성당 너머 단출하게 둘러진 돌담을 따라 다시 길을 나선다.
여행 메모 성공회 강화성당에선 교인들이 여전히 미사를 드리니 조용히 둘러보아야 한다. 성당 한편에는 사찰에 매달아 놓을 법한 동종이 있다. 행사가 있을 때나 미사 시간에 타종을 한다. 문의 성공회 강화성당 934-6171

여행 속 여행‘이야기자전거’타고 역사 속으로
따사로운 햇살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강화 고려궁 마을을 누벼보자. 해설사의 이야기를 따라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동문, 고려궁지 일대를 둘러보면 역사여행의 의미가 깊어진다. ‘강화 이야기자전거’는 용흥궁 공원 주차장 앞에서 타며, 가격은 성인 2인 기준 코스 1이 1만원, 코스 2가 2만원이다. 운영 시간은 동절기(10월~3월)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절기(4월~9월)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고려궁 마을 일대를 둘러보는 데 약 15분 정도 걸린다.
코스 1 용흥궁 → 성공회 강화성당 → 드라마 ‘전설의 마녀’ 촬영지 → 동문 → 고려궁지 | 코스 2 고려궁지 → 벚꽃 나들길 → 북문 → 북장대(하차 후 걸어서 이동)
문의 강화 이야기투어 934-2628, www.storytour.co.kr

PM 02:00 고려궁지
슬픔의 빛깔로 도배된 옛 궁터
발걸음은 이제 고려궁지로 향한다. 승평문(昇平門)이라고 쓴 문으로 들어서면, 시간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고종은 1232년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도읍을 옮긴다. 부랴부랴 궁궐을 짓고 왕이 머무르던 곳이 고려궁지다. 이 안에서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았을 고려왕조의 비운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궁터 안으로 들어서서는 사실 낙심했다. 39년간 몽골에 줄기차게 맞섰던 기상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성은 고려가 1270년 몽골과 강화(講和)를 맺고 개성으로 돌아간 후 대부분 무너지거나 불타 없어져 버렸다. 마른 푸서리 위 ‘사적 제 133호 고려궁지’라고 새겨진 비석만이 이곳이 그 옛날 고려의 궁궐터라는 사실을 애처롭게 읊고 있었다. 궁이 있던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관아인 동헌과 이방청, 그리고 왕실의 도서관 ‘외규장각’이 들어서 있다. 이마저도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으로, 역사의 상처를 안으로 깊이 부여안고 있다.
여행 메모 고려궁지의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매표소에서 강화 고려궁지, 갑곶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을 저렴하게 둘러보는 ‘일괄 관광권’을 판매한다. 문의 고려궁지 930-7078

PM 02:30 700년 된 은행나무, 북문
꽃비 맞으며 북문에 오르다
궁궐 담장 밖 마을 입구에는 700살 먹은 은행나무가 수호신처럼 서 있다. 이 아름드리 나무는 고려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굴곡진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으리라.
북문으로 가는 길은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 하얀 꽃물결을 이룬다. 바람이 일 때마다 후드득 떨어지는 꽃비를 맞으며 천년의 시간을 오른다. 그 길 끝에는 진송루(鎭松樓)라고 쓴 현판이 걸린 북문이 나온다. 처음 산성을 쌓을 때는 누(樓) 없이 암문으로 만들었다, 1783년 정조 때 문루를 지어 올렸다. 때마침 복원 공사 중이어서 곳곳에 놓인 지지대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이만 아니면 그림엽서에 고스란히 담아도 좋을 예쁜 풍경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산성을 따라 북산 정상에 있는 북장대에 올라보자. 강화도의 너른 벌판을 지나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북녘 땅까지 시야가 닿는다. 저기, 두 동강이 난 땅을 가로지르는 바다가, 욕심도 이념도 부질없다는 듯 햇살 아래 넘실거린다.

PM 03:00 서문, 연무당 옛터, 남문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
북문에서 서문으로 이르는 길에는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나뭇잎이 한들거리는 소리뿐인 숲길을 지나, 성곽 길을 따라 서문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가늠하기 힘든 뼈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서문 건너편에는 강화유수부의 군사들이 훈련하던 연무당이 있었는데, 1876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단초가 된 강화도조약이 여기서 체결됐다. 잡풀이 무성한 텅 빈 터에 ‘연무당 옛터’라고 새겨진 글씨가 역사의 상처를 아프게 증명한다. 다시 나들길을 따라 골목을 지나는 길, 고풍이 흐르는 고택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강화도 천석꾼 황국현의 가옥으로, 1947년 강화를 찾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이 집에 머물렀다.
이윽고 여정의 끝자락인 남문에 다다른다. 남문은 반드시 지켜야 할 문이었다. 몽골의 거센 침략으로부터도 끝까지 지켜냈던 이 문은, 결국 1636년 병자호란 때 함락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1876년에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본이 입성하면서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기나긴 역사의 시간을 건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밀려드는 조팝나무 꽃향기가 쓰라린 역사의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진다.
여행 메모 강화 황부자집 고택 창고가 있던 자리엔 ‘남문로 7’이라는 작은 찻집이 들어섰다. 대추, 솔잎, 유자 등 몸에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전통차가 5, 6천 원 선이다. 문의 남문로 7 933-9300.
놀이 책 미션 고택 마당에 있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놀이 책에 인증 샷을 붙여 본다. 남문 앞에서 스탬프를 찍고 역사여행을 마무리한다

고려궁 성곽길 탐방 역사, 놀이로 즐기다
‘놀이 책 따라’ 역사탐방 한옥 관광안내소에서 입체 지도와 놀이 책을 받는다. → 3D 안경을 끼고 지도를 보면 성곽길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 놀이 책과 지도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역사기행에 나선다. → 퀴즈를 풀고, 인증 스탬프를 찍고, 인증 사진을 찍으며 각 여행지마다 주어진 미션을 수행한다. → 마지막에 다시 관광안내소로 오면, 오늘 여행을 추억으로 남길 기념품을 주고 사진도 인화해 준다. 총거리는 11㎞로, 천천히 둘러보면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코스 한옥 관광안내소 → 용흥궁 → 드라마 촬영지(마법의 빵집, 서촌 세탁소) → 동문 → 성공회강화성당 → 고려궁지(외규장각) → 700년 된 은행나무 → 북문(※ 선택 경유 : 강화향교 및 은수물) → 서문 → 연무당 옛터 → 백범 김구 선생 방문 고택 → 남문(※ 선택 경유 : 강화풍물시장) → 강화버스터미널
문의 강화군 문화관광과 930-3561~3, 한옥 관광안내소(강화읍 남산길 14-1) 933-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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