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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인천’ 있다

2015-07-06 2015년 7월호

땅속에 ‘인천’ 있다



글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원

인천에 땅굴이 있다. 적지 않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왜 땅속에 굴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대개는 일제말기 방공호로 파 놓았을 것으로 추측될 뿐 조성 시기와 규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지금까지 언급된 곳만 정리해 봐도 파라다이스호텔 밑, 자유공원, 긴담모퉁이, 화랑농장, 부영공원 등 열 군데가 넘는다. 그중 부영공원에서 확인된 땅굴이 제법 크다. 예전부터 많이 회자되던 곳이지만 내부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 건 최근 끝난 시굴조사를 통해서다. 두 출입구가 발견됐는데, 입구 밑까지 물이 차 있어 사람이 진입하기는 불가능하다.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마감된 구조가 생각보다 견고하고 정교하다. 단순히 방공호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의 조병창이 있던 장소였으니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본군의 흔적을 기대해볼 만한 공간이다.
자유공원에 있는 땅굴은 그나마 걸어서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입구는 평범해 보여도 끝이 어딘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만큼 깊다. 어느 시기에 이용했는지, 신상을 올려놓은 듯한 작은 제단도 통로 한 구석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응봉산 속살이 복잡한 토굴로 이리저리 연결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땅굴은 꽤 훌륭한 역사 자료다. 활용도 높은 교육용 자산이기도 하다. 전쟁 기지였던 인천을 이만큼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도 드물다. 부끄러웠던 과거의 증거물이라고 도외시할 필요는 없다. 가꾸기에 따라서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의 알트르 비행장과 지하 벙커, 격납고 등은 모슬포항과 송악산 사이에서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제주도민들의 처참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비경으로 손꼽힌다. 더구나 농민들이 일상으로 경작하는 밭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역사의 비극을 한층 생생하게 전해준다.
인천의 땅굴은 사람들 가까이에 있다. 늘 근처에 있었지만 관심을 받아본 적은 없다. 개항기에 세운 번듯한 서구식 건물은 이국적 경관으로 찬사를 받는다. 연륜이 오래된 주택이나 상점, 공장 등은 근현대 유적으로 주목받으며 필수 답사코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모두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역사적 자산이다. 그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축조된 땅굴 또한 그러한 유적들과 대등한 가치를 갖는다.
지금껏 인천에 남아 있는 땅굴에 대해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실체를 증명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확인하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땅을 파놓은 단순한 굴이 아니다. 인천 사람들의 한숨이 가득한 공간이다. 체계적이고 정밀한 조사가 시급하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길은 똑바로 뻗어 나가지 않는다.
 - 박태순 <국토와 민중>


발걸음을 따라 길이 생긴다.
길은 구불구불해야 제맛이다. 휘청대며 밟는 길은 인생을 닮았다.
그런 발걸음이 모여 한 시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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