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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석금, 점자로 다시 태어나다

2015-09-04 2015년 9월호


인천석금, 점자로 다시 태어나다

글 이용남 본지 편집위원  사진 유창호 자유사진가



책 발간 60주년을 맞아 인천 뿌리 알기 일환

개항부터 1950년대 초까지의 인천을 옛날 이야기하듯 구수하게 엮은 책 ‘인천석금(仁川昔今)’. 고일(高逸) 선생이 쓴 이 책은 인천의 향토사를 공부하거나 인천의 뿌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인천의 명저 중 명저다.  인천영화관, 옛 인천의 부자, 향토 술꾼들, 다방, 요정, 시장 이야기까지 지금도 인천에 관한 글을 쓸 때 필수적으로 인용해야 할 것이 많이 담겨있다.

이렇게 귀한 인천의 책 ‘인천석금’이 점자로 제작됐다. 일반 베스트셀러 도서도 아닌 원조 향토자료가 점자로 제작된 사례는 흔치 않아 정보접근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석금 점자책은 화도진도서관에서 제작했다. 올해 인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2015 책의 수도이고,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치로 책과 문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더욱이 올해는 이 책이 발간된 지 60년, 고일 선생 타계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화도진도서관이 인천석금을 점자로 제작하게 된 것은 도서관이 갖추고 있는 인프라가 큰 역할을 했다. 1만 권 가까이 소장된 인천 향토자료를 활용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도서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천석금은 점자의 특성상 상·하 2권으로 60질을 발행했고,  CD로도 만들었다. CD는 100장이 제작되어 인천혜광학교, 송암점자도서관 등 시각장애인 관련학교, 단체 및 박물관 등에 배포된다. 점자 인천석금의 기획 및 제작은 모두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인천의 3대 명저(名著) 모두 점자로 제작

화도진도서관은 향토자료를 점자책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인천석금 외에도 인천의 향토사학자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도 점자책으로 제작한다. 이 책은 현재 낭독 작업을 하고 있으며 낭독 편집이 끝나면 입력 작업을 진행한다. 개항과 양관역정은 인천 개항장을 중심으로 근대 서양의 건물, 즉 양관들의 역사적 의미, 규모, 건축과정, 내력, 일화 등을 기술하고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관심

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개항과 양관역정 이후에는 신태범 박사의 ‘인천 한세기’도 작업에 들어간다. ‘인천 한세기’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인천의 풍물과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세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어 인천의 근대문화와 생활사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이 외에도 인천시립박물관이 발간한 어린이를 위한 향토자료인 ‘구름나무와 친구들’도 점자책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녹음도서인 CD는 내용을 읽어주며 그림까지 세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아이들을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이 책은 옛날 옛적 인천의 시조설화를 재미있게 엮었다.
화도진도서관은 점자책 제작 사업이 비용이 많이 들지만 공공도서관이 해야 할 역할과 책무라고 여기고 있다. 사회적 약자나 정보접근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진작 시작했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인천의 뿌리를 아는 소중한 기회 되길

윤명호  화도진도서관 관장은 도서관의 향토자료를 점자책으로 제작하는 일을 올해 도서관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천의 향토자료를 정보접근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게 하루빨리 점자로 제작해 인천을 이해하고 인천의 뿌리를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인천석금은 인천의 근현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쓴 책이기에 시각장애인들도 관심을 갖고 읽고 들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관장은 인천석금 점자책과 녹음도서가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도 인천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천석금’의 저자 고일 선생

‘인천석금’의 저자 고일(高逸, 1903~1975)선생은 1903년 5월 6일 서울 마포구에서 출생했다. 인천으로 이주한 이래 신간회운동을 위해 만주 하얼빈으로 6년간 망명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인천의 청빈한 언론인, 일제에 항거한 사회운동가로 살았다.
인천석금은 1954년부터 1년 동안 ‘주간인천’이라는 신문에 게재된 그의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인천석금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소재들을 다뤄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개항 초부터 1950년대까지 인천에서 있었던 다방, 요정, 주막, 극장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선생은 해방 후 인천시립도서관장을 역임했고, 경기도 문화상 언론 부문 초대 수상자이기도 하다. 경기일보에 ‘인천사’를 연재하고, 1956년부터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위촉된 후 노년에는 향토 언론계의 원로로 활동했다. ‘인천상고사(仁川上古史)’와 ‘인물사(人物史)’를 구상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인천 동구 화수동(현 화도진 담장 아래) 자택에서 72세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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