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기상대동네에서 동화마을로
기상대동네에서 동화마을로
살짝 발만 들어도 풍경은 달리 보인다. 까치발을 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나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평지에서 바라보던 거리와 동네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위성은 너무 멀고 헬리캠(helicam)이나 드론(drone)은 너무 비싸다. 그래서 올라갔다. 건물 옥상이나 교회 종탑에 올라 인천을 굽어보았다. 그 정도 높이임에도 인천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번 호에서는 인천역 주변에 있는 남경포브아파트 옥상에서 송월동 쪽을 바라보았다.
글·사진 유동현 본지 편집장
① 인천측우소 ② 지진 인천관측소 ③ 자유유치원(파울 바우만 주택) ④ 비누의 시작, 애경 ⑤ 돼지장터(송월시장) ⑥ 동화마을 ⑦ 기와집 골목
까치발을 든 지점 | 송월동 남경포브아파트 (중구 제물량로 317)
경인선 종착역 인천역 가까이에 있는 남경포브는 2006년 9월 건축된 두 동짜리 아파트다. 1905년 6월 각국 외국인 39명이 출자한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이 아파트 자리에 설립되었다. 독일에서 가져온 100㎾ 규모의 직류 화력발전기 두 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개업 한 달 만에 천여 개의 전등이 설치되는 등 호황을 누리다 1912년 일한와사전기에 매각되었고 1922년 7월 인천의 발전소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아파트 내에는 ‘인천 전기 발전지’라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이번호 까치발 지점은 이 아파트의 20층 옥상이다. 한쪽으로 만석동 공장지대와 포구가 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으로는 응봉산의 자태와 그 밑의 송월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에도 송월동(松月洞)이란 동네가 있다.
두 동네 이름은 한자도 같다.
‘소나무에 걸친 달’의 상태가 기상 관측의 중요한 요소였는지
공교롭게 두 지역 모두 일찍부터 기상관측소가 들어앉았다.
만국공원을 품고 있는 응봉산 뒤편에서 격동의 바다를 바라보던
이 동네에는 산 남쪽의 번잡함을 피해 여유롭게 살려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게 거주했다. 그들 짐 보따리에 들어온
기상관측, 전기, 비누 등 신문물이 이곳에서 발아하기도 했다.
세월을 못 이겨 뒷방으로 밀려난 노인네 같았던 집과 골목은 얼마 전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분장을 하며 ‘동화마을’이란 이름을 얻었다.
① 인천측우소 : 1905년 1월 1일 응봉산 정상에 관측 장비를 갖춘 인천측우소가 우리나라 최초로 건립되었다. 국내 13개 도시의 측우소는 물론 만주지방 관측소까지 총괄했으며 일본 기상대, 런던 그리니치천문대와 기상 정보를 주고받을 만큼 보유 기술도 뛰어났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인천기상대의 상징이었던 원통형 하얀 건물은 지난 2013년 신청사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② 지진 인천관측소 : 기상대 정문 옆에는 ‘세계지진관측망 인천관측소’가 있다. 이곳은 한국 최초 지진관측 시발점이다. 1905년 3월 24일 인천관측소 안의 작은 방공호에 기계식 지진계가 설치되었다. 세월이 흘러 1995년에 낡은 장비는 모두 최첨단 디지털 장비로 교체되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이 지진계의 바늘은 백령도 앞바다의 수중음파가 전달되면서 잠시 몸서리를 쳤다.
③ 자유유치원(파울 바우만 주택) : 기상대 정문 앞으로 내려가면 자유유치원이 나온다. 원래 이 자리에는 독일 상인 파울 바우만의 주택이 있었다. 러일전쟁 직후인 1906년경 우아한 서양식 2층 석조 건축물이 전망 좋은 곳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을 두 번이나 지낸 사이토 마고토의 별장으로, 광복 후에는 미군이 사용했다. 인천상륙작전 때 건물의 일부가 파괴되었고 1955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송월초등학교가 그곳에 세워졌다가 후에 건너편으로 이전하였고 그 자리에 북성초교가 다시 개교했다. 북성초교는 송월초교와 통합돼 폐교된 후 그 자리에 인천교육과학연구원이 들어섰다가 현재의 유치원에 자리를 내줬다.
④ 비누의 시작, 애경 : 1912년 송월동에 ‘애경사(愛敬社)’가 설립되었다. 1954년 제주도 사람 채몽인 씨가 이 공장을 인수해 ‘애경유지공업(주)’을 창립해 종업원 50명과 함께 비누사업을 시작했다. ‘미향’ 비누만 한 달에 100만 개를 팔아 당시 경인국도를 달리는 차량 대부분이 애경유지 트럭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것이 오늘날 애경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고 채몽인 씨는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남편이다.
⑤ 돼지장터(송월시장) : 만석동 쪽 기찻길 옆에 송월시장이 있다. 1937년 2월 송월공설시장으로 개설되었는데 가축시장의 기능을 하고 있어 흔히 ‘돼지장터’라고 불렀다. 말을 키우던 곳이라 하여 흔히 ‘말깐(말간)’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방 후 만석동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이 이용해 한때 꽤 번창했으나 철도 건널목이 없어지고 담으로 막히면서 만석동과 단절이 돼 상권이 급속히 위축되었다. 현재 ‘동화마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장을 부분적으로 철거 중이다.
⑥ 동화마을 : 송월교회 밑으로 모양이 비슷한 일본식 주택이 많이 남아있다. 동일방직과 이천전기 사택으로 사용되었던 집들이다. 얼마 전 이 동네 골목이 대대적으로 ‘분장’을 했다. 가스 밸브함을 이용해 만든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을 비롯해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등 이름만으로도 친숙한 동화 속 장면들이 컬러풀하게 벽면을 수놓았다. 동네 이름도 ‘송월동 동화마을’로 바뀌었다. 일부 시민 단체에서 국적 없는 문화 조성이라 비판이 이는 가운데서도 주말마다 어린이를 둔 가족들이 방문해 동네는 활기가 넘친다.
⑦ 기와집 골목 : 송월동에는 일본식 가옥들뿐만 아니라 오래된 한옥이 많이 남아있다. 송월초등학교 밑으로 가면 인천에서 이제는 보기 드문 기와집 골목이 나온다. 1950년대 중반에 조성된 도시형 한옥촌이다. 건립된 지 반세기가 넘다보니 곳곳이 낡았지만 골목에는 기와집의 우아한 자태와 기풍이 여전히 흐른다.
- 첨부파일
-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