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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평 지하세계에 예술의 꽃 피다
열 평 지하세계에 예술의 꽃 피다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여기는 7, 80년대 동인천의 작은 고전음악 감상실. 느리게 돌아가는 LP판을 따라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깊고 낮게 공간을 휘돌다가 귀를 타고 마음 더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선율. ‘콘체르트’는 짐다방, 풀무다방과 함께 당시 젊은이들이 고전음악을 들으며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그들만의 아지트’였다.
고춘(58) 선생은 당시 콘체르트 고전음악 감상실에서 DJ를 했다. 그의 조부는 인천 향토사의 고전 ‘인천석금’의 저자인 고일 선생이다. 청빈한 언론인이자 일제에 맞선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시간만큼 자손들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 어려운 형편에 음악 이론을 배운 거라곤 초·중학교 시절의 수업이 전부였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감’이 있었다. 한번 멜로디를 들으면 머릿속으로 다 외어버렸다. 악기를 살 돈이 없어 종이에 건반을 그리고 손가락 연습을 해야 했지만, 악보 없이도 연주를 온전히 흉내 내곤 했다.
마음속 끓는 열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청년 시절에는 국립중앙극장의 예술 공연 티켓 1년치를 한꺼번에 끊은 적도 있다. 당시 서울 장충동에 있는 국립중앙극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대극장이었다. 좋은 음악이 듣고 싶었다. 틈만 나면 인천에서 서울까지 달려갔다. 오케스트라, 합창, 발레…. 장르와 상관없이 공연이란 공연은 빠뜨리지 않고 섭렵했다.
1983년 콘체르트 고전음악 감상실은 문을 닫지만, 이내 콘체르트 고전음악 감상클럽으로 다시 역사를 이어갔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정기 음악 감상회와 연주회를 열고 인천의 문화예술 소식이 담긴 회보를 만들어 돌렸다. 그때, 지금의 아내 구인숙 씨를 만났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은, 아내를 만난 것과 세 자녀를 음악가로 키워낸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 구인숙 씨와 함께 지난 2006년부터 문화예술 공간 ‘콘체르트아트하우스’와 연주단체 ‘플레인 앙상블’을 운영하고 있다. 서구 가좌동에 있는 작은 건물 지하 세계에 있는 콘체르트아트하우스에서는 음악 감상회와 연주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그 작지만 큰 무대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인천의 문화예술계를 발전시키려면 인천에서 자라고 공부한 젊은 음악가들을 키워야 합니다. 그들이 이 무대를 발판 삼아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있는 힘껏 뒷받침하고 싶어요.”
그의 세 딸은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 첫째는 바이올린, 둘째는 첼로, 셋째는 비올라. 그는 “음악가 세 명을 만들어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매일 밤 머리맡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 21번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잠들던 아이들은, 어느덧 성장해 어엿한 예술가가 되었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세 딸도 아내와 함께 창단한 플레인 앙상블의 일원이다. 플레인(PLA-IN)은 ‘순수함’ 이라는 의미와 함께 ‘인천에 기반을 둔 연주단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인천에도 예술성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팀이 있어야 합니다. 수준 높은 음악으로 예술과 대중의 폭을 좁혀가야 해요. 앞으로도 플레인 앙상블을 계속 발전시켜 인천 최고의 팀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젊은 문화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 인천 문화예술계의 꽃이 만발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 그가 매일을 홀린 듯 대극장을 찾았듯, 수많은 발걸음이 음악에 이끌려 인천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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