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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세상을 열다
손끝으로 세상을 열다
글 심현빈 화도진도서관 시각장애인자료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서구 문물을 가장 빨리 접한 도시입니다. 그런 가운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또한 인천에서 태어난 송암 박두성 선생님께서 창안해 역사적인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관계자 외에는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으니, 아직 우리 사회가 점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도서관 시각장애인 자료실에서 일을 하면서 인천이 점자 탄생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임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천 향토 자료의 부재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 책의 수도 인천’과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인천향토사의 고전 ‘인천석금(仁川昔今)’을 점자도서와 CD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더러 이런 말을 합니다. ‘점자도서를 시각장애인 몇 명이나 보겠느냐고…’ 그러나 보고 안 보는 문제로 접근한다면 가치나 의미는 퇴색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당위성은 이용자가 몇 명인가로 따질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향토자료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로 따질 문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보 접근성에 대한 그분들의 권리에 대한 책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중도 실명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면 점자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절실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인천에는 제도권 내에서 이들을 위한 점자교육 방안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한글을 모르고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 한글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의 점자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교육 차원의 일인 것입니다. 중도 실명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교육이 올바로 이루어지려면 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간혹 시각장애인에게 점자교육을 실행하면서 자원봉사자의 활용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교육에 전문성과 특수성이 제외된 경우는 없습니다. 점자는 특수문자이며 그 교육에도 특수성과 전문성과 지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일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점자교육은 더욱더 지속성을 갖고 해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점자교육은 이동성의 문제로, 찾아가는 점자교육을 표방해야 할 것입니다.
문자는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첨단기기의 발달로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이 쉬워졌다고 하지만, 길이 남길 문화유산으로 점자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점자의 탄생지 인천에서 점자교육을 통한 점자부흥운동이 불같이 일어나서 대한민국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염원처럼 점자로 세상을 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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