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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사라지고 설탕 공장 들어서다

2015-11-04 2015년 11월호


정미소 사라지고 설탕 공장 들어서다

살짝 발만 들어도 풍경은 달리 보인다. 까치발을 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나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평지에서 바라보던 거리와 동네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위성은 너무 멀고 헬리캠(helicam)이나 드론(drone)은 너무 비싸다. 그래서 올라갔다.
건물 옥상이나 교회 종탑에 올라 인천을 굽어보았다. 그 정도 높이임에도 인천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번 호에서는 용현동 엑슬루타워아파트 옥상에서 수인역 쪽을 바라보았다. 
글·사진 유동현 본지 편집장


① 정미소 창고  ② 수인역  ③ 수인곡물시장  ④ 연합군포로수용소  ⑤ CJ 인천공장  ⑥ 인하대병원  ⑦ 인천항


까치발을 든 지점 | 용현동 엑슬루타워아파트(남구 아암대로 29번길)
남구 용현동에는 ‘토지금고’라는 특이한 이름의 동네가 있다. 1975년 발족한 ‘토지금고(현 LH공사)’가 낙섬 인근의 염전과 갯벌을 매립하여 시범주택단지를 조성하면서 얻은 이름이다. 당시 현재의 송도와 청라 같은 신흥 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 지은 양옥집과 상가 건물이 들어섰고 후에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자리 잡았다. 2011년 풍림산업이 53층 높이의 ‘용현 엑슬루타워’를 세웠다. 당시에는 아파트 중에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를 뛰어넘어 역대 최고층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호 까치발 지점은 이 으리으리한 아파트의 아찔한 옥상이다. 촬영 내내 오금이 저렸지만 절로 탄성 나오게 하는 조망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사방팔방 인천의 모든 지역이 전부 다 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수인역 부근은 일제 수탈의 현장이다. 일제는 신흥동에 수인선 종착역을 만들었다.
그 철길을 따라 조선인의 울분과 탄식이 실려 왔다.
일제는 수인역 인근에 가등(加藤)정미소, 역무(力武)정미소 등 크고 작은 정미소를 세우고
일본으로 쌀을 반출하기 위해 협궤열차의 기찻길을 창고 안까지 연결했다.
현재의 삼익아파트 부근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 왔는데
정미소에서 나온 누런 왕겨가 영종도 앞바다까지 둥둥 떠다녔다.




① 정미소 창고 : 1930년대 일제는 경기도 이천, 여주 등 곡창지대의 쌀을 수인선 협궤열차로 운반해 정미한 후 일본으로 반출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정미소 창고들은 한동안 사동 삼거리부터 수인역까지 어깨를 겹치듯 줄지어 있었다. 고려정미소, 선경창고 등으로 불리다가 70년대 들어 하나둘씩 디스코텍과 카바레 등으로 ‘용도변경’되었다. 현재는 대형마트, 가전양판점, 물류창고로 사용되는 서너 동의 창고만이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② 수인역 : 1937년 협궤열차 수인선이 건설되었고, 철로는 정미소가 있는 수인역에 닿았다. 광복 후 수원, 군자, 소래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키운 닭이며 각종 곡식을 이고 지고하며 수인역에 내려놓았다. 기차가 서자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마을이 들어섰고 주위에 금세 장이 섰다. 반짝 장이 서는 동안 열차 맨 앞 기관차는 거대한 회전기를 이용해 다시 수원 방향으로 놓인다. 1979년 종착역이 송도로 변하면서 수인역은 급격히 쇠락했고, 1948년에 세워진 옛 역사(驛舍)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③ 수인곡물시장 : 옛 수인선과 역은 사라졌지만 열차 때문에 생긴 시장은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곡물상과 고추판매상 그리고 기름 짜는 집 등 40여 점포가 신광초교 담벼락에 기대어 ‘수인곡물시장’이란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지금의 한별아파트 자리에는 인천 최대의 농산물 깡시장이 있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김치공장이 세워졌다. 그곳에서 만든 김치는 월남(베트남)에 보내져 우리 군의 전투력 향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농협하나로마트가 개장하는 등 농산물과 관련된 시장이 계속 이어져 왔다.



④ 연합군포로수용소 : 일제는 서울, 부산, 인천, 흥남의 네 군데에 연합군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 1942년 말레이반도 전투에서 잡힌 영국군 포로들을 비롯해 미군 포로들이 이곳까지 끌려왔다. 인천의 포로수용소는 신광초교 자리에 있었다. 신광초교에서 직선거리로 400여m 떨어진 인천여상에는 일제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신사(神社)가 있었다. 그들은 신사를 보호하기 위해 포로수용소를 방패로 삼았다. 



⑤ CJ 인천공장 : CJ그룹의 모태는 제일제당이다. 1970년 수인역 부근 신흥동 2만4천여 평(8만㎡) 부지에 제일제당 공장이 준공됐다. 이 공장에서는 사탕수수 원료를 수입해 ‘백설표’ 설탕을 생산했다. 매일 설탕 찌는 단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했다. 사진은 준공식 날 공장을 둘러보는 이병철 회장(앞줄 안경 쓴 이)의 모습이다.

⑥ 인하대병원 : 인하대는 1984년 의대를 신설한 후 90년 750병상 규모의 의과대 부속병원 설립 인가를 받았다. 96년 인하대병원은 인천 최초의 대학병원으로 개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⑦ 인천항 : 인천항은 1974년 5월 10일 제 2도크가 완공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다. 66년 4월 소월미도와 월미도 사이를 매립하기 시작해 8년 만에 갑거(閘渠·수로)와 갑문(閘門)을 갖춘 국제항의 면모를 갖춘다. 이 공사에는 연인원 300만 명이 동원됐으며,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간 만큼의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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