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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섬, 파묻힌 바다, 태어난 땅
‘사라진 섬, 파묻힌 바다, 태어난 땅’
올해 컴팩스마트시티 특별전은 고려시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한 간척으로부터 시작된 인천의 매립역사를 살펴보는 전시다.
현재도 인천 앞바다에서는 가장 경제적인 토지 확보 수단으로 대규모 매립 공사가 한창이다.
그 결과 복잡하던 해안선이 곧은 직선이 되며 인천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1910년대 지형도와 2014년 항공사진을 합성한 지도
사라진 섬
인천에는 수많은 섬이 있었다. 군사기지의 역할을 한 섬도 있고, 관광지로 명성을 떨친 섬도 있다. 강화도를 비롯해 영종도, 영흥도처럼 바다를 매립해 새로운 섬으로 태어난 섬도 많다.
간척이 시작되기 전 강화도 지역에는 강화도, 고가도, 황산도, 송가도, 석모도, 매음도, 교동도 등 수많은 섬이 있었다. 이 섬들은 해안선이 매우 복잡하고 넓은 갯벌에 둘러싸여 있었다. 강화 지역의 간척은 몽골군과 왜구의 침입 등으로 해변 방어가 필요했던 고려 말과 조선 중기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됐다. 고려시대 이후 장기간에 걸친 간척으로 강화 주변의 섬들은 크게 강화, 교동, 석모 등 세 개의 큰 섬에 포함되었다. 또한 청라도, 낙섬, 사도 등의 섬은 대규모 매립 과정에서 그 형태를 잃고, 이제 이름으로만 ‘섬’으로 기억되고 있다.
파묻힌 바다
인천 연안의 본격적인 매립은 20세기 초 일제에 의해 시작됐다. 인천의 해안선은 1910년대부터 부두, 항만 등 기반 시설 건설을 위한 대규모 매립 사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후 주안염전 조성, 우리나라 최초의 갑문식 선거인 인천항의 축조, 송도 유원지 건설, 광복 후 난민 구호를 위해 실시한 인천 서북부 지역의 농경지 조성 등을 위한 매립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동아매립지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하여 후에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로 지정된다. 이로 인해 인천의 섬들이 점차 육지와 이어져 사라지고 갯벌과 바다는 땅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인천 앞바다의 해안선은 둥그스름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매립 전 영종도 항공 사진(1990년대)
매립 후 영종도 항공 사진(2014년)
태어난 땅
인천은 갯벌이 넓게 발달한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 갯벌을 메워 새로운 땅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인천이 가진 최대의 자원이다. 개항 이후 매립으로 새롭게 태어난 땅은 인천 육지부 총 면적의 34%에 해당하며 현재도 매립은 진행형이다. 인천의 행정 구역은 8구 2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바다와 접하지 않은 부평구, 계양구를 제외한 나머지 6구와 강화군, 옹진군 모두 매립으로 생긴 땅을 갖고 있다. 특히, 서구, 연수구, 중구는 도시 용지 중에서 50% 이상이 매립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지정된 인천경제자유구역 탄생의 확실한 배경이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인천 매립의 역사는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인천시는 총 행정 면적의 21.7%에 달하는 약 227㎢의 새로운 땅을 얻었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78배에 해당한다. 이번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의 특별전 ‘사라진 섬, 파묻힌 바다, 태어난 땅’을 통해 인천 매립의 역사가 인천 도시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기간 8월 25일(화)~11월 29일(일)
전시 장소 컴팩스마트시티 2층 기획전시홀
※ 2016년 3월까지 전시 연장 예정
이것만은 꼭!
놓쳐서는 안 되는, 전시 유물
일제강점기, 인천시립박물관 소장
월미도 매립 현황도
일제강점기 월미도 매립과 관련해 제작한 현황도다. 월미도 전체를 화면 가득 배치하였는데 월미산 정상에는 러·일전쟁 직후 일본인들이 세운 애탕신사(愛宕神社)와 전망대 등이 나와 있다. 1923년경 월미도 유원지 건설과 관련해 조성된 조탕(潮湯), 풀장, 해수욕장 등도 살펴볼 수 있는데, 당시 이러한 대규모 유원지 시설을 갖추기 위해 23.141㎡의 해면매립이 이루어졌다.
화면 왼쪽 아랫부분에는 월미도와 소월미도, 제방 등이 그려진 ‘월미도일반도(月尾島一般圖)’를 따로 배치했다. 1928년에 일부 해변을 매립하여 완성한 규모 40m x 50m의 대형 해수풀장과 1931년, 1933년 사이 2차에 걸쳐 간척이 이루어졌던 월미도 제방과 인천역 사이의 해안지역<당시 ‘화방정(花房町)’이라 불림>도 표시되어 있어, 이 현황도의 제작 시기는 193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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