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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 커피 향 흩날리는 골목에 가다

2015-12-03 2015년 12월호



어느 겨울날,

커피 향 흩날리는 골목에 가다

겨울은 어쩌면 가장 따뜻한 계절인지 모른다.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에. 뜨끈하게 달아오른 구들장의 온기 하나로도 감사할 수 있기에. 36.5도 사람의 체온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기에. 한 해의 끝에 다다른 어느 추운 겨울날, 오래된 골목에 숨어 있는 카페 문을
살며시 연다. 순간, 밀려드는 훈훈한 공기. 꽁꽁 언 두 손에 따스한 찻잔을 쥐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온기가 스며든다.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인천 아카이브 카페 빙고(氷庫)

한겨울에 찾은, 100년 전 얼음 창고


한겨울 칼바람을 헤치고 중구 개항장 후미진 뒷골목에 들어선다. 우리가 익히 알던 중구청 앞길 개항장 일대가 아니다. 인천 아카이브 카페 ‘빙고(氷庫)’는 그 중심에서 한참 비켜서 있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마주했을 때 예기치 못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갑다.
빙고는 지난여름 신포동 국민은행 가까운 곳에 문을 열었다. 이 골목 일대는 한때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외국인 선원들이 주로 찾는 술집이 모여 있었다. 골목 모퉁이의 작은 카페이지만 그 가치는 남다르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오래전에 얼음 창고로 쓰던 건물로,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가 깃들어 있지만 카페 분위기는 밝고 화사하다. 
“최근까지 창고로 방치되다시피 한 곳이었어요. 기둥 없이 벽돌과 나무로 지은 전형적인 근대식 창고이지요. 옛 형태를 지키면서 현대에 맞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탄생시켰어요.” 일본에서 건축사를 연구한 이의중(36) 씨는 3년 전 한국으로 와 작업할 도시를 찾던 중 인천과 연을 맺고 이 자리에 정착했다. 그에게 개항의 역사를 품은 인천은 보물 같은 도시다. “무분별한 개발로 도시의 생명과 역사가 단절돼서는 안 됩니다. 이곳을 시작으로 하나둘 인천 개항장 일대 오래된 건축물의 숨겨진 가치를 찾고 새 생명을 불어넣으려 합니다.”
카페가 불을 밝힌 후로 어둑어둑하던 동네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물고 밤이면 취객들이 휘청거리던 카페 앞 골목길에 주민배 탁구 대회가 열리고 프리마켓이 들어섰다. 담장 안 숨어 있던 이웃들이 함께 웃고 떠들며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일본 NHK 방송국에서 이 아름다운 움직임을 찾아 멀리 바다 건너에서 촬영을 왔다.
빙고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큰길가를 지나 좁은 골목에 이르러서야 작은 간판이 보인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시 찾을 이곳을 모르고 스쳐 지나기엔 너무 아쉽다. 이 안에는 지나온 역사와 오늘을 사는 이 순간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시간으로 흐르고 있기에.


기둥 없이 벽돌과 나무로 지은 전형적인 근대식 창고 건물 


문의 빙고 772-3338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주소 중구 개항로 7-1
가는 길 신포동 국민은행 가까이 전주콩나물국밥집 건물 골목 안에 바로 있다.





★추천 메뉴 
향이 깊고 풍부한 에스프레소가 3천800원,
유기농 당근으로 만든 수제 파운드 케이크가 한 조각에 2천800원.




인천항이 아닌 수도국산이 내려다보이는 ‘귀한’ 풍경


미추홀구락부

조각가가 빚은, 전망 좋은 카페 


제물포구락부. 1901년 인천에 살던 외국인들을 위해 만든 사교의 장으로, 지금은 개항의 역사를 품은 스토리텔링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자유공원 아래 제물포구락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추홀구락부’가 있다. 매력이 넘쳐 카페로만 단정하기엔 아쉬운 곳이다.
“제물포구락부가 근대 사람들을 위한 장소였다면, 이곳은 ‘현대’ 사람이 모여 함께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미추홀구락부라고 지었습니다.”
신흥동이 고향인 조각가 김길남 선생은 9년 전 구입한 자유공원 근처 자택을 최근 근사한 카페로 꾸몄다. 엄태웅과 이시영이 출연한 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에 나오는 분위기 있는 목공소가 바로 여기다. 그는 미추홀구락부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삶 속에서 인생을 터득하는 ‘즐거운 학교’가 되길 바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쓰려고 했다. 김 선생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부터 활동한 인천의 저명한 사진작가인 고 김명철 선생이다.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공간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사랑방이 되고 카페가 되고 때론 전시장이 되면서 더 향기로워졌다.
김 선생과 마주하던 시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카페 문을 두드렸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요?’ 대부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묻는다. ‘아 그냥 이야기하고 쉬는 데예요. 차 한잔하면서 놀다 가세요.’ 이 일대를 추억하는 나이 지긋한 분들부터 나들이 온 젊은 친구들까지 찾는 이도 다양하다. 이 안에선 누구나 잊고 있던 삶의 소소한 행복에 젖는다.
보물창고 같은 이 카페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 매력. 창밖으로 수도국산을 비롯해 청라, 계양, 부평 주안 일대가 와이드스크린으로 펼쳐진다. 대부분 인천항을 바라보는 자유공원 일대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풍경이다.



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의 배경이 된 ‘미추홀구락부’


문의 미추홀구락부 817-4521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10시
가는 길 성공회내동교회에서 송학로 19번길을 따라 홍예문 위로 오른다.




★추천 메뉴 
생두를 로스팅해 내린 하와이안 코나.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다. 9천원. 
조각가가 정성껏 빚은 수제 버거와 커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런치메뉴로 8천원. 







답동성당 쉼터

100년 역사의 종소리 울리는, 예배당 언덕


옹기종기 낮은 집들이 서로를 기댄 답동 골목을 지나 언덕 위에 오르면 고풍스러운 서양식 근대 건축물을 만난다. 1897년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가 지은 ‘답동성당(사적 제287호)’이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이자 인천에서 처음 세워진 성당으로 제물포에서 인천, 답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100여 년 세월을 비밀스레 안고 있다.
성당은 1937년 개축 공사를 거쳐 고딕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붉은 벽돌에 흰색 화강암으로 강조한 몸체에서 고풍이 흐른다. 성당 한가운데 돔형의 탑 위에 솟은 십자가는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 선명하게 빛난다. 1960년대까지 만해도 매일 정오와 오후 6시면 이 성당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루 두 번, 그 소리는 사람들의 귓가를 지나 마음에 위안으로 다다랐다.
성당 마당 한편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쉼터가 있다. 신도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과 이 일대를 여행하는 젊은이들도 즐겨 찾는다. 주인은 따로 없다. 답동성당의 신도 정정남(68) 씨를 비롯한 봉사자분들이 따듯한 마음을 담아 커피를 내린다. 가격도 착하다. 에스프레소가 한 잔에 1천 원. 궁중 차와 허브티의 가격도 2천 원을 넘지 않는다. 값비싼 원두는 아니지만 갓 볶아 정성스레 내린 커피는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 있다.
“편하게 오셔서 쉬었다 가세요. 차 한잔 시키고 온종일 머물다 가셔도 되요. 창밖을 바라보면 평소 스쳐 지나던 골목골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답니다.”
따스한 찻잔을 손에 쥐고 창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 한낮의 햇살을 즐긴다. 서양 종교의 ‘홀씨’가 떨어져 100년 역사로 꽃 핀 인천 중구 일대에는 아름답고 오래된 예배당이 많다. 저기, 답동성당과 함께 인천의 대표적인 선교지인 내리교회와 성공회내동교회가 보인다. 정겨운 옛 도심의 풍경이 한겨울 차디찬 공기를 데우고 마음을 따듯하게 물들인다.



문의 답동성당 762-7613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화요일은 쉰다)
주소 중구 답동 3번지
가는 길 1호선 동인천역에서 내려 답동사거리 방향



★추천 메뉴 
바리스타가 내린 단돈
1천원의 착한 에스프레소.
달콤함으로 추위를 달래는
고구마라떼와 녹차라떼는 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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