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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잡지, 버스 회수권도 유물이 된다
학생 잡지, 버스 회수권도 유물이 된다
배성수(인천광역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전시장 개보수 공사로 2년 남짓 박물관의문을 닫은 적이 있다. 공사 직전 인현동 청과물시장(속칭 깡시장)에서 40년 가까이 과일 장사를 하던 시민 한 분이 직접 사용하던 대저울과 접시저울 등을 기증했다. 유물을 기증받는 자리에서 ‘곧 박물관이 공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당장 전시하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기증자는 자신의 손때가 묻은 물건을 전시하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공사에 들어간 후부터 두어 달에 한 번은 연락이 왔다. “저울이 언제부터 전시가 되느냐?” “어디에 전시가 되느냐?” 등의 질문을 되풀이했다.
자신이 아끼던 물건을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그것이 전시장에서 공개되지 않고 수장고에만 있다면, 기증자의 상실감이란 작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서울의 모 박물관에서는 기증한 유물을 전시하지 않자 반환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기증자는 자신의 물건이 공공 박물관에서 더 많은 사람들 앞에 보여지기를 은연중에 기대한다. 박물관이 더욱 많은 시민들의 기증을 유도하려면 이와 같은 기증자의 기대를 충족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에서 기증받는 모든 유물을 전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증유물 중에는 상설전시의 내용과 맞지 않는 유물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개보수 공사를 추진하면서 몹시 신경을 썼던 부분 중 하나가 기증실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련된 장방형의 기증전시실에 진열장 세 개를 두었다. 그 가운데 중앙의 진열장에는 인천 출신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의 후손이 기증한 유품들을 항시 전시했다. 그 양쪽의 진열장에는 전년도에 기증받은 유물 중 기증자별로 무조건 1점 이상을 1년 동안 전시하고 있다. 나머지 한 면에는 개관 이후 70년간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해 주신 시민들의 이름을 일일이 새겨서 그들의 소중한 뜻을 기리고 있다. 자신이 아끼던 물건을 박물관에 기증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1년 동안 기증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 개보수 공사 직전에 대저울 등을 기증한 뒤, 박물관 직원들을 괴롭혔던(?) 인현동의 과일가게 사장님은 박물관을 재개관한 이후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기증전시실에 전시된 대저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기증자에게는 자신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것이고, 그것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증자에게 커다란 명예가 된다. 최근 박물관에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자료들의 기증이 점점 늘고 있다. 비록 지금은 하찮은 물건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로 남을 것이다. 버스 회수권, 학생 잡지 등도 박물관에서는 유물이 된다.
문명수 기증자의 성냥갑
(동아일보 인천 주안지국에서 사은품으로 증정)
빛바랜 성냥
지난날 어머니들의 보물 1호였던 성냥. 1970년대 동아일보 인천 주안지국에서 독자들에게 증정품으로 제공한 성냥이 시립박물관 기증전시실 한편에서 추억을 전하고 있다. 인천 주안지역의 전화번호국이 두 자릿수로 바뀐 것이 1978년이었는데, 문명수 선생님이 간직해온 이 성냥갑에 적혀있는 있는 국 전화번호는 한 자릿수였다. 이를 그 이전의 유물로 추정했다.
라이터의 보급에 밀려 성냥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예전 성냥의 모습은 박물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수인선 하복 유니폼
수인선 기관사의 유니폼
2016년 2월 27일 수인선 인천 구간이 다시 개통했다.
시립박물관에는 수인선이 폐선되던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으로 운행할 때 입었던 박수광 기관사의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다. 유니폼은 동복 1벌, 춘추복 1벌, 하복 상의 2종류가 기증되었으며, 소매와 여밈 부분에는 철도청 CI가 새겨진 단추가 2개씩 부착되어 있다. 박수광 선생님이 수인선을 운행하면서 쏟은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유니폼은 수인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제 곧 박수광 선생님은 다시 달리는 수인선에 올라 젊은 날을 추억할 수 있게 됐다.
기증 설명 김성이(인천광역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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