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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느끼기 완벽한 날, 인천대공원
2016-05-03 2016년 5월호
봄을 느끼기 완벽한 날, 인천대공원
세상 어디에도 인천 같은 도시는 없습니다. 세계의 하늘 아래 긴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땅, 가깝고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168개의 섬. 하지만 무엇보다 인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당신입니다.
인천이라는 이름으로 너와 나 구분 없이 하나 되는 ‘우리는 인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그려 봅니다. 그 다섯 번째로 초록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쉼터 인천대공원 안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배준환(57) 동부공원사업소 소장. 인천대공원이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사람 아닌 자연이 주인인 땅
이른 아침, 인천대공원 습지원. 햇살에 젖은 풀과 나무가 더 푸르고 싱그럽게 빛난다. 이 아름다운 계절, 세상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지 않는 이 땅을 밟은 건 행운이다. 들리는 건 나뭇잎이 한들거리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뿐. 자연 안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곳은 원래 논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 15년이 지났다. 꽃이 피고 풀이 자라고 나무가 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록은 더욱더 푸르러만 갔다. “새들이 벌써 눈치 챘을 거예요. ‘우리만의 세상에 침입자가 나타났구나’ 하고요. 보세요. 놀라서 저 멀리 날아가 버리잖아요.”
배준환(57) 동부공원사업소 소장은 시 공원녹지과 직원으로 있던 스물넷 청년 시절부터 시설과장을 하던 90년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천대공원과 인연을 이어왔다. 본래 푸르던 대공원이 도심의 쉼터로 거듭나기까지,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사랑도 커져갔다.
“대한민국에 이런 공원이 없어요. 인근 도시에 있는 공원은 대부분 규모가 작고, 서울대공원은 높은 산지로만 이뤄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산도 있고 평지도 있고 특히 흙살 좋고 물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지요. 그래서 800년 넘은 은행나무도 지금껏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 수 있었던 겁니다. 당연히 사람들도 더불어 살기 좋지 않겠어요.”
인천대공원은 자연 그대로를 품고 있다. 관모산과 상아산이 병풍 드리우듯 감싸 안은 땅을 그냥 담장을 둘러 공원으로 만들었다. 전체 면적 298만4천㎡ 가운데 무려 80%가 숲이다. 사람 아닌 동식물이 여전히 이 땅의 주인이다. 이것이 인천대공원의 매력이다.

정수경(50) 녹지연구사. 20여 년간 숲을 지키면서, 자신도 어느새 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유아 숲 맑은 눈동자들 사이, 최현진(33) 녹지연구사와 장성희(47) 유아숲지도사.
수목원에서 만난, 나무 같은 사람들
인천수목원에 이르렀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연둣빛을 머금은 세상. 다사로운 햇살 따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숲길을 거닌다. 몸과 마음이 한결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25만5천859㎡에 이르는 대지에 3개 지구 43개 전시원으로 꾸며진 수목원에는 식물 1천75종 22만4천847본이 싱싱 자라고 있다.
정수경(50) 녹지연구사는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숲을 지켜왔다. 그는 인천에서 단 두 명뿐인 녹지연구사 가운데 한 명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거제도를 거쳐 결국 바다가 있는 도시의 숲에 정착했다.
“살면서 나무가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작은 묘목을 아름드리 거목으로 키우기 위해선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해요. 젊을 때는 그 과정을 참고 견디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편안해요. 나무를 닮아가고 있어요.” 버려진 땅에 녹음이 짙게 드리워지기까지, 그는 매일을 하루같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땀 흘려왔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8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수목원을 이만큼 가꿔낼 수 있었으리라. 나무 같은 사람, 환하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르르 웃음소리. 공원으로 봄맞이 소풍을 온 아이들이 노란 병아리 떼 같다. 그 총총거리는 발걸음 따라 유아 숲으로 간다.
“숲에 오니까 어때요?” “좋아요. 그냥 좋아요.” 햇살처럼 말간 얼굴에 반짝이는 눈동자, 그 안에 이 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천수목원에 있는 또 한 명의 녹지연구사 최현진(33) 씨가 이 숲을 담당하고 있다. 시범운영을 시작한 2011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아이들이 숲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요. 독일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이미 유아 숲이 보편화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잘 모르는 분이 많아요. 흙길을 걸으면 똑똑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숲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맘껏 뛰놀며 한 뼘 더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인천대공원의 비밀 공간, 울창한 편백나무 숲 속에서 배창호(58) 팀장.

누구나 걷고 싶어 하는, 메타세쿼이아 길.
세상에 알리고 싶은, 시크릿 가든
인천대공원과 이어지는 관모산으로 가는 입구. 수목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싱그러운 메타세쿼이아 길이 펼쳐진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다시 한 번 눈에 생기를 돌게 한다. 그 길을 지나 큰 나무들이 산다는 거수(巨樹)골을 가로질러 공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산 중턱에 다다르니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편백나무 숲이다. 보통 사람은 일반 나무와 편백나무의 차이점을 구별하기 힘들다지만, 공기부터가 다르다. 숲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온다. 자연이 건네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인천대공원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그 속살까지 들여다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벚꽃길과 동물원이 다가 아닙니다. 공원 구석구석에 숨은 매력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공원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공원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며 자연을 온전히 느끼길 바랍니다.” 공원 환경을 관리하는 배창호(58) 팀장은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이야말로 인천대공원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한다.
편백나무숲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등산객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다. “뭐 하세요?, 그게 뭔가요?” “씨앗이에요. 편백나무 씨앗.” “그건 어디에 쓰시게요.” “씻어서 장식장에 올려놓고 한 번씩 냄새 맡으면 얼마나 향기로운데요. 한번 맡아 보세요.” 그윽한 나무 향기가 코끝에 닿아 맴돈다. 어깨 위로 초록 그늘이 드리워진다. 봄을 느끼기에 완벽한 날이다.

어머니, 딸, 손주가 함께 봄을 만끽하고 있다. 김은희(58) 송민정(30), 송가을(3).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공원 호수에 던진 동전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진다.
5월 햇살처럼, 즐거움 담뿍한 얼굴들
인천대공원은 언제 찾아도 편안하다. 연간 이용객 300만명. 인천은 물론이고 이웃한 부천, 시흥과 멀리 서울에서도 찾아온다. 그만큼 사계절 내내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수목원과 식물원, 어린이 동물원, 사계절 썰매장 등의 시설이 있고 학습 공간인 환경미래관도 있다.
공원 한가운데는 호수가 넓게 드리워져 있다. 청둥오리와 거위가 수시로 수면 위로 내려와 한참을 놀다 간다. 호숫가에는 나무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위를 한가로이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수평선을 그저 바라보거나. 사람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평구 부개동에 사는 김은희(58) 씨는 남편과 함께 공원 내 테니스장에 7년을 다녔었다. 추억이 깃든 공간은 지금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곳으로 발걸음을 한다. “인천시민으로서 인천대공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여기가 아니면 도시가 얼마나 삭막했겠어요.” 딸, 손주와 함께 공원을 거닐며 봄을 만끽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사람들이 갑자기 호숫가 중심으로 모여든다. 공원 직원들이 호수 바닥에 수북이 쌓인 동전을 하나둘 그러모아 건져내고 있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호수에 던진 동전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진다. 퐁당, 마음에 품고 있던 소원을 담아 호수에 던져 본다.

김도현(41) 수의사. 동물원의 생명들을 눈으로만 보고 사랑해 달라 당부한다.
“우아~ 저 독수리 좀 보세요. 정말 멋있어요.” 공원 후문 쪽에는 인천에서 하나뿐인 동물원이 있다. 어린이 동물원이라지만 규모가 제법 크다. 이 안에서 사막 여우를 비롯한 멸종 위기종 9종을 포함해 37종, 262두의 동물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김도현(41) 수의사가 이들을 돌보고 있다. 자신의 보살핌으로 상처 입은 동물들이 건강을 되찾을 때면 보람을 느끼지만 힘들 때도 많다. “야생동물은 병이 나면 그 증상이 80% 이상은 진행돼야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돌봐야 해요. 의사로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는 늘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함께 동물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가 관람객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동물원 우리에 먹이를 던지지 말아주세요. 벚꽃 시즌이나 주말이 지나면 아이들이 영락없이 설사를 해요. 눈으로만 보고 사랑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인간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봄이 무르익은 언덕 위에서 뛰놀고 있을 생명들이다. 그 애틋한 마음이 헤아려진다.

대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나와 다시 회색 길 위에 섰다. 하지만 하얗게 부서지던 햇살, 기분 좋게 뺨을 스치던 바람, 눈앞에 쏟아지던 푸르름, 하늘에서 내리던 꽃비, 그 비를 맞을 때의 설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계절이 지나면 그리워도 다시 느낄 수 없다. 그러니 떠나자. 인천대공원으로. 슬며시 다가온 이 봄이 스리슬쩍 사라져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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