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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가슴에 고이 접어 두다
그 섬, 가슴에 고이 접어 두다
해변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숲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세상은 온통 초록빛, 그 사이로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새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점점 켜지는 파도소리…. 가슴 깊이 고이 접어 둔 그 섬이 벌써 그립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자유사진가
“소야도, 이름도 참 예쁘네.” 뱃머리가 섬에 닿는 순간 누군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소야도(蘇爺島). 그 뜻이야 어떻든 자꾸 되뇌고 싶은 소박하고 예쁜 이름이다. 섬으로 발을 디디면 눈앞의 풍경에 또 한 번 마음에 파동이 인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바다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이어진 모습은 평화롭고 서정적이다. 물빛은 서쪽 바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맑고 깊다. 그렇게 일상을 건너 이름도 모습도 곱고 예쁜 소야도의 품에 안겼다.
도우 선착장에서 섬을 함께 여행할 배용호(65) 이장님을 만났다. 마을 주민 함석영(68), 김민국(65) 할아버지도 함께했다.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트럭에 올랐다. 때는 오전 10시 물길이 열리는 것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소야도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의 섬이다. 가섬에서 간데섬, 물푸레섬까지 징검다리 같은 세 섬을 하나로 이으며,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 다른 섬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광경이다.
소야리 토박이 삼총사
배용호 이장, 정영식 어촌계장, 신창웅 전 어촌계장
바다 한가운데 멈춰 서다
기적의 길이 열렸다.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발아래 바다 생명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갯바위가 가득이다.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발걸음을 느리게 붙잡지만, 그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싫지 않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다 아예 멈춰 섰다. 내친김에 바위 위에 털썩 앉아 섬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겐 세상 어디에도 소야도만 한 곳이 없다.
강화 출신 함석영 할아버지는 서구에서 살다 7년 전에 정년퇴직하고 소야도로 왔다. 섬 태생이 아니던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곧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 안에선 욕심낼 것이 없어. 바다에 먹을 게 지천으로 널렸으니, 굴 따고 바지락 캐고 그런 재미로 살아.” “육지에선 하루도 있기가 싫어. 아침에 나갔다 오후에 들어와도 갑갑해. 여긴 얼마나 좋아. 아무 때나 갯것 주어다가 안주 삼아 한잔씩 하고. 10원짜리 동전 한 닢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이 여기야.” 배용호 이장은 사업을 하던 10년을 제외하고는 소야도를 떠난 적이 없다. 그마저도, 언제라도 섬으로 달려갈 듯이 바다 끝, 땅 언저리 연안부두에 머물렀다.
외딴 바닷가 '한여름 낮의 꿈'
섬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해변들이 비밀스레 숨어 있다. 큰 마을 가까이에 있는 뗏부루 해변은 소야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바닷가다. 그래도 여느 해변보다 한적해, 게으르고 달콤한 여름날을 누릴 수 있다. 금빛 모래사장 위로 파도가 흰 물꽃을 일으키며 밀려왔다 가기를 반복한다. 해변 뒤로는 소나무 숲이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해당화가 붉은 낭만을 풍기며 익어간다.
“죽노골에 꼭 가보세요. 참 좋네. 진짜 깨끗해.” 소야도에 처음 와보았다는 관광객 한 분이 길을 권한다. 죽노골 해변은 소야도의 숨은 보석이다. 뗏부루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숲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한 10분쯤 갔을까. 세상은 온통 초록빛, 그 사이로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새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점점 켜지는 파도소리…. 발걸음을 천천히 해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다.
이윽고 죽노골에 다다랐다. 해변은 아담하지만 모래결이 곱고 물빛이 아름다워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영화 <연애소설>을 여기서 촬영했다. 주인공들이 모래 위에 쓴 ‘지환 경희 수인 여행 기념’ 이란 글씨는 지워졌지만, 그들이 남긴 사랑의 여운은 아직 파도와 함께 물결친다. 너와 나 단둘이 혹은 나 홀로 외딴섬 바닷가에서 보내는 ‘한여름 낮의 꿈’. 세상 모든 것이 멈춘 듯, 육지에서의 일상이 까마득히 잊혀간다.
쏟아지던 햇살이 누그러지고 어느덧 육지로 가는 배가 닻을 내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섬 어르신들과 소주 한잔에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 배를 타고 섬을 나왔다. 서쪽 바다 너머로 멀어지는 섬, 가슴 깊이 고이 접어 둔 그 섬이 벌써 그립다.
INFORMATION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정도 바다를 건너 소야도로 간다. 현재 덕적도와 소야도 사이에 한 시간 간격으로 종선을 운행한다. 오는 2018년에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놓인다. 선착장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소야리와 큰 동네를 오갈 수 있다. 문의 덕적면사무소 899-3710, 인천항 여객터미널 1599-5985, 고려고속훼리 1577-2891
소야도 즐길거리 3
바다갈라짐
소야도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의 섬이다. 가섬과 간데섬 사이 500미터, 간데섬과 물푸레섬 사이 800미터, 소야도와 뒷목섬 사이 200미터 구간에 바다갈라짐 현상이 일어난다. 간조시간은 국립해양조사원(www.khoa.go.kr)에서 확인한다.
바닷가 해산물
소야도 바닷가에는 조개며 굴이며 바다생명이 득시득시하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빗자루로 쓸듯 주워 담아가 날로 황폐해지고 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늘어나는 관광객이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스럽다. 갯것은 적당히 캐고 섬 주민들에게서 구입해서 먹을 것. 휴식을 선사해 준 바다와 섬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뗏부루·죽노골 해변
뗏부루 해변은 모래결이 보드랍고 경사가 완만해 물참에 물놀이하기 좋다. 또 샤워장과 화장실, 캠핑장 등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편리하다. 이용료는 단 1만 원. 이 가격에 바다를 빌리는 게 미안할 정도다. 곁에 있는 죽노골 해변은 아담 하지만 물빛이 맑다. 서해라고는 믿기지 않는 비췻빛 바다
는 눈에 닿기만 해도 청량감이 든다.
INFORMATION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정도 바다를 건너 소야도로 간다. 현재 덕적도와 소야도 사이에 한 시간 간격으로 종선을 운행한다. 오는 2018년에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놓인다. 선착장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소야리와 큰 동네를 오갈 수 있다. 문의 덕적면사무소 899-3710, 인천항 여객터미널 1599-5985, 고려고속훼리 1577-2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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