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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혼 서린, 강화 동쪽 바닷가에 서다

2016-09-02 2016년 9월호



민족 혼 서린,

강화 동쪽 바닷가에 서다

선조들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강화 동쪽 해안을 중심으로 빗장 같은 성곽을 둘렀다. 그 후로 시간은 300여 년이 지나, 성은 버려지고 허물어지고 잊혀 갔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도 한민족의 강인한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가을 햇살 스민 이끼 낀 석축을 따라, 기억해야 할 역사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오정식 자유사진가 


북일곶돈대

80일 만에 세운, 48 돈대

강화도는 작은 한반도다. 강화 땅을 걷는 것은 한민족의 기나긴 역사를 넘나드는 여정이다. 강화 깊숙이 들어갈수록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간의 층에 다다른다. 강화 해안을 따라 조성된 관방유적(關防遺蹟) 5진(鎭), 7보(堡), 54돈대(墩臺)는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의 발자취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선조들이 치른 투쟁의 자국이다.
강화도 돈대는 숙종 5년인 1679년에 쌓아서 만들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나라는 그에 맞서 싸울 힘이 필요했다. 병자호란에 마지막 요새인 강화도를 짓밟힌 통한은 뼈아팠다. 그래서 효종 때부터 강화에 군사시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숙종은 강화 해안을 따라 사방에 빗장 같은 성곽을 둘렀다. 나라 잃은 치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강화 땅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80일 만에 무려 돈대 48곳을 축조했다.


굴암돈대

백성의 피땀으로 쌓아올리다

돈대는 돌로 만든 작은 성이다. 그 성은 백성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렸다. 어영군과 승군을 비롯해 석수와 대장장이 등 1만 5천여 명이 동원됐다. 그들은 마니산과 별립산, 강화 주변의 섬에서 돌을 캐내어 수십 리 떨어진 바닷가까지 짊어지고 왔다. 몸이 빨려들 것만 같은 갯벌 위에서 집채만 한 돌덩이를 이고 온 힘을 다해 나라 지킬 성을 쌓았다.
이후 돈대는 숙종 16년인 1690년에서 영조 2년인 1726년 사이에 5개가 축조됐다. 이후 1871년 신미양요 때 용두돈대가 세워져, 현재 강화에 남아 있는 돈대는 모두 54곳이다. 특히 수도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동쪽 해안을 중심으로 성곽을 둘렀다. 강화 나들길 2코스인 ‘호국돈대길’을 따라 가면 갑곶돈대,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용두돈대 등 ‘나라를 지킨(護國)’ 돈대 10곳에 이를 수 있다. 외세의 침략에 치열하게 맞서던 덕진진과 초지진, 광성보에도 다다른다.


미루지돈대


후애돈대


버려지고 잊혔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

쌓은 지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돈대는 버려지고 잊혀졌다. 그러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때 프랑스와 미국군이 쳐들어오고, 1875년에는 일본 운요호가 침입했다. 백성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작은 성은 외세가 퍼부어대는 포탄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로부터 100년이 더 지났다. 돈대는 세월의 흐름 앞에서 또 한 번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오늘 그나마 남아 있는 돈대는 이미 오래전 제 모습을 잃고, 마른 푸서리 위에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한민족의 강인한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 가치를 기리고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 시와 강화고려역사재단은 강화 해양 관방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는 올 초 강화도 해양 관방유적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신청서가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검토해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한다. 한편 강화역사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까지는 시민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는 지역인사 간담회와 시민 공청회, 시민 여론조사 등을 거쳐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등재 추진 과정에 적극 반영해왔다.

짙어져가는 가을, 강화도 동쪽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옛날 포탄이 날아다니던 바다는 오늘 평화롭다. 이끼 낀 석축 위로 아픈 역사를 어루만지듯 가을 햇살이 다사롭게 내려앉았다. 그 빛을 따라,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300여 년 전 역사의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검암돈대

피라미드·만리장성 같은 ‘돈대’의 가치
‘강화 해양 관방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강화 해양 관방유적’이란 조선시대 보장처(保障處)였던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해안을 따라 축조한 5진, 7보, 54돈대를 가리킨다. 그 안엔 외세의 침략에 치열하게 맞섰던 한민족의 강인한 정신이 서려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강화처럼 관방시설이 밀집된 섬은 찾기 힘들다. 강화 관방유적은 유사시 국가의 임시수도로 세워진 유일한 해양 방어 요새이자, 해안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대표적 해양 군사유산이다. 또 군사시설물이라는 본래의 축조 목적이 현재에도 가치를 갖는 역사유산이기도 하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과 동아시아 국가 간 충돌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의미도 있다. 이에 우리 시와 강화고려역사재단은 강화의 해양 관방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첨부파일
KOGL: Type 1 + Commercial Use Prohibition + Change Prohibition (Typ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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