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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픔 딛고 뿌리를 찾다

2016-09-07 2016년 9월호



버려진 아픔 딛고, 뿌리를 찾다

한인 700만 명이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다. 그 가운데 20만 명이 해외 입양을 통해 바다를 건너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한국의 가슴 아픈 해외 입양의 역사를 한민족 이민사의 한 부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특별전을 연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본격화된 해외 입양의 역사를 박물관에서 공식 조명하는 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  사진 한국이민사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산하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8년 개관 이후 매년 다양한 특별전을 개최했다. 올해는 특별히 입양과 관련된 전시 ‘또 다른 이민, 해외 입양’을 개최한다.
현재 재외 동포는 700만 명, 그중 해외 입양인은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재외 동포의 3% 정도를 차지하는 입양인들을 재외 동포의 일원으로, 그리고 한민족 이민의 한 축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이번 특별전의 목적이다. 전시는 1부 ‘한국 해외 입양의 역사’, 2부 ‘모국의 마지막 보금자리, 인천’, 3부 ‘낯선 땅, 낯선 가족과 입양인’, 4부 ‘입양인의 귀환 그대로’ 순으로 꾸며져 한국 해외 입양의 역사를 살핀다.

해외 입양은 6?25전쟁 이후 발생한 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14개국에 20만 명이 넘는 아동이 입양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미국으로, 그 외 수만 명이 유럽, 호주, 캐나다 등지로 떠났다. 해외 입양은 우리나라가 산업화된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다가 80년대 중반부터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부평에 위치한 보육시설인 ‘성 원선시오의 집’ 현판



입양인 김성히 씨가 1964년 입양 시 가져간 한국 인형들


1955년 8명의 한국고아를 입양한 홀트(Holt) 가족

이번 특별전에는 많은 기관과 단체, 개인 소장가, 입양 당사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전시 계획 소식을 듣고 입양 당시의 옷과 신발, 서류 등을 보내준 입양 당사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입양인들은 사회에서 제대로 성장했는지 여부를 떠나 태어난 나라, 친부모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모국 방문이나 친부모 찾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부평 ‘성 원선시오의 집’을 운영하면서 1천600명이 넘는 고아와 혼혈인을 입양 보내고, 그들 개개인의 자료를 사후 관리하고 있는 서재송 원장님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을 거쳐간 입양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와도 안길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1956년 만료되는 미국의 난민구호법에 쫓겨
전세기로 입양 가는 한국의 고아들


영종도 쌍둥이 자매의 미국 입양 기사
The Osseo Press 1964년 6월 14일

토론토 공항에서 입양 아들을 처음 만난 슈트(Shutt) 부부

근대 한인 해외 이주사와 마찬가지로 해외 입양도 고난과 슬픔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성장한 남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해외 입양인들을 재외 동포로서 인식하고 그에 따른 배려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재외동포 사회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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