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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부두 그 ‘목선’ 바다에 안기다
화수부두 그 ‘목선’ 바다에 안기다
그 부부를 만난 지 3년이 넘었다. 화수부두 한쪽 구석에 쳐진 거대한 장막 속에서 그들의 일상을 처음 ‘발견’했다.
그것이 인연이었다. 유동진 씨 부부는 8.5톤짜리 목선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겨울을 세 번 보내면서 ‘선광호’의
잉태와 탄생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이야기를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렸다.
이후 ‘화수부두의 노아’ 이야기는 ‘전국구’ 뉴스가 되었다.
글 사진 김민영 자유기고가
선광호, 바다를 달리다
당초 새벽 5시에 배를 타기로 했다. 며칠 후 아침 9시 30분에 늦춰서 출항할 것이라고 다시 연락이 왔다. “인간극장 보고 출발하려고.” 유동진(71), 강영자(65)씨 부부는 자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간극장’의 본방을 사수하고 싶어 했다. 부부는 선광호가 완성되면 필자를 꼭 한번 태워주겠다고 약속했다. 자신들을 세상에 알려준 ‘보답’이라고 말했다.
부두에 도착해서는 뛰다시피 해야 했다. 갯골에 물이 완전히 빠지면 배는 옴짝달싹 움직일 수가 없다. 사실 그날 오전 9시 30분은 배를 띄우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니었다. 물때가 맞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지구와 달이 가까워지고 태양과 일직선이 되면서 이날 전국적으로 바닷물 수위가 가장 높게 차오르는 날이었다. 화수부두에는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선광호는 힘차게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나갔다. 갯벌과 맞닿은 공장 담벼락, 원목을 쌓아 놓은 부두, 타워크래인으로 화물을 하역하는 북항, 그리고 경인아라뱃길의 입구 경인항 등 평소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것들이 인천이 품고 있는 원초적 소재들일 것이다.
선광호, 인간극장을 달리다
선광호 이야기는 2015년 1월 KBS 인간극장 ‘노인과 바다’로 전파를 탔다. 이를 본 사람들은 유 씨를 ‘현대판 노아’라고 얘기했다. 지난 10월에는 2편 ‘노인과 바다 그 후’가 방영되면서 또다시 세간의 입에 올랐다.
목선 ‘셀프’ 제작은 5년 5개월 전 시작됐다. 40년 어부 유동진 씨의 5번째 배가 고장이 났고 결국 폐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손주에게 물려줄 만큼 튼튼한 자신의 배를 만들겠다며 어느 날 갑자기 1억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나무를 사왔다. 6번째 배를 손수 만들기 위해서다. 그 배를 완성하기 위해 40여 년 어부로 살면서 마련한 30평대의 아파트를 팔았다. 아내 강영자 씨의 만류는 그의 귓가에 맴돌다 이내 사라지는 바람과 같았다. 아내의 속은 물 빠진 갯벌처럼 바닥을 쳤다. 작업 중 투닥거림은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인간극장 카메라는 2014년부터 꾸준하게 부부와 선광호, 그리고 화수부두의 시간을 담았다. 1부 방영 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선광호 때문에 이제 화수부두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화수부두는 1970년대까지 사람들의 발길로 시끌벅적했다. 우리나라 3대 어항으로 꼽힐 만큼 이 부두의 바다는 컸다. 오죽했으면 이곳에선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한때는 어부들이 돈을 세느라 밤을 새웠고 그 돈을 선술집에서 쓰느라 시내로 나가는 부두 입구의 철길을 넘지 못했다. 그 철길을 넘는 어부들만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과 도시의 변화는 화수부두를 빛바랜 흑백 사진 보듯 고요하게 만들었다. 잠자듯 고요한 화수부두가 다시 잠을 깼다. 먼 길을 마다 않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람들의 발길로 흑백의 화수부두가 다시 색을 입게 됐다. 선광호는 지난 봄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다. 44년 동고동락한 부부는 이 배에서 남은 인생을 함께하기 위해 배의 단장을 마쳤다.
선광호, 세월을 달리다
선광호가 멈춰 선 곳은 작약도 앞이다. “이 배는 바닥도 다른 배보다 훨씬 두꺼워. 파도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배의 디자인도 수없이 바꿨지. 그러다보니 완성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 거예요.” 어부의 아내가 한숨을 쉰다. “그래서 내가 더 힘들었어. 이 배 만드느라 주름도 많이 생겼지 뭐야.”
그동안의 우여곡절은 인간극장 3탄이 나와도 모자랄듯하다. 부부는 닻을 내렸다. 분주히 주낙 내릴 채비를 했다. 주낙은 한 줄로 연결된 낚싯바늘들에 미끼를 끼워 물고기를 낚는 방식이다. 부부는 주낙을 위해 새벽부터 고등어를 일정한 크기로 썰어 낚싯줄이 엉키지 않도록 둥근 함지박통에 말아 준비를 해뒀다.
물결이 다소 거칠게 요동친다. 한동안 엔진을 끄고 잔잔해지길 기다린다. 그 사이 아내는 배 밑창 기관실 안에서 점심을 준비한다. 미리 잡아뒀던 우럭을 꺼내 매운탕을 끊이고 밥을 짓는다. 바닷물을 퍼 올리고 그 물로 생선을 씻어 손질을 한다. 선상의 점심상은 그렇게 차려졌다. 바다 위에 멈춰선 작은 배는 넘실넘실 파도의 여흥을 쫒지만 그들의 손은 쉴 틈이 없다. 남편은 낚싯줄을 챙기고 아내는 주방을 오가며 정리정돈을 한다.
이내 닻을 올리고 시동을 건다. 작약도 앞바다를 달리며 미끼를 물고 있던 낚싯줄이 줄줄이 바다로 입수한다. 그리고 다시 고요다. 갈매기 한두 마리가 배 주변을 배회할 뿐이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도 이런 고요함을 즐겼으리라. 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고요는 또 다른 세상이다. 부부는 쉴 틈이 없다. 주낙이 담겨있던 통들을 열심히 깨끗하게 닦아낸다.
“이렇게 닦아놔야 다음에 쓸 때 기분이 좋지. 지저분하면 기분이 좋아요?”
이런 꼼꼼함으로 선광호를 설계도 없이 손수 디자인하며 완성했을 것이다. 70대의 노련한 어부는 바다 위에서 청년처럼 힘이 세다. 잠시 후 고요 속에 묻혀있는 낚싯바늘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며 바닷장어를 끌고 나온다. 선광호가 이제 바다를 내달리며 바다의 먹거리를 수확한다.
어부의 손은 재빠르게 낚싯줄과 바닷장어를 분리하고 어부의 아내는 어부 대신 배의 키를 잡는다. 그들은 순간순간 수신호로 대화하면서 배의 방향을 잡아간다. 분업과 협업이 일사불란하다. 어부 본연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 배는 바닷장어를 가득 싣지 못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어갈 때 뱃머리는 화수부두로 향했다. 부두의 선착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선광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빛과 손들은 그 어떤 만선보다도 화려하다.
“선광호 보러 왔어요. 아침에 TV를 보니 정말 대단해요. 배에 올라가서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서울, 일산, 그리고 멀리 전라도에서 한달음에 달려 왔다. 화수부두는 이제 조용하지 않다. 그곳에는 선광호와 유동진·강영자 부부가 있다. 그리고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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