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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부부의 초대

2016-11-02 2016년 11월호


꽃보다 아름다운 부부의 초대

짙어져 가는 가을, 꽃향기에 이끌려 길을 나선다. ‘심도기행’을 쓴 화남 고재형 선생이 태어난 두두미 마을.
옛 선비가 시로 읊은 아름다운 고향에서는, 그의 후손들이 꽃피우고 밥 지으며 오붓이 살아가고 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고라니가 드나드는 꽃 마당

꽃향기에 이끌려 한 시골집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강화 두두미 마을에는 꽃 피는 마당이 있는 집 ‘꽃마니에뜨락’이 있다. 고승권(65) 씨는 ‘심도기행’을 쓴 화남 선생의 후손으로, 아내 정갑숙(60) 씨와 함께 20여 년째 이 공간을 향기롭게 가꾸고 있다. 처음에는 나들길을 걷는 여행객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마당 한편을 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소문을 타고 강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꽃마니에뜨락의 ‘마니’는 여의주라는 뜻. 6천 611㎡에 이르는 마당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보물 같은 꽃들이 한가득 핀다. 뱀, 오소리 등 야생동물들도 제집처럼 드나든다. 어느 때는 고라니가 마당까지 들어와 저 놀라고 부부도 놀랐다.
“어르신들이 집 마당에 꽃과 나무를 키우셨어요. 저희도 주말이면 내려와 함께 정원을 가꾸다 이곳에 정착한 후로 본격적으로 꽃을 심기 시작했죠.” 이 집은 남편 고승권 씨가 나고 자란 집이다. 부부는 도심에 살다,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14년 전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부모님 세 끼 밥해드리던 세월

아내는 북적이는 도시에서 살다 갑자기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새벽에 눈 뜨고 잠들기까지, 어르신들께 하루 세끼 찬 달리 밥해드리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남편이 도심으로 출근한 뒤엔 말 한마디 못 하고 하루해가 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돌담 너머 보이는 키 큰 사철나무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다.
“처음엔 외로워서 힘들었지만, 부모님께 그동안 못 해드린 것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언젠간 부모님을 모셔야지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젊을 때 도시에서 잘 살다가 늘그막에 들어왔으니까 됐지요 뭐.” 맘씨 고운 아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도, 남편의 뜻을 묵묵히 따르고 있다. 사람 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살림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일도 아니란다. 그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손님이 많다”며, 그 맛에 산다고 활짝 웃었다.
남편도 수더분한 시골 마을의 삶이 행복하다. “힘든 거 없어요. 재미있지. 나들길 코스에 있으니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 강화 명소를 둘러보고 우리 집까지 찾아와 주세요. 강화 나들길이 제주도 올레길보다 낫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땐 참 뿌듯해요.”



어머니의 그릇에 음식을 담다

부부의 마음 씀씀이는 강화 너른 땅만큼이나 후하고 따듯하다. 처음 보는 객을 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하더니, 때가 되니 식사를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낸다. 마당에서 자란 연으로 만든 향긋한 연잎 밥에 뜨끈한 된장국, 강화에서 난 재료로 빚은 정갈한 반찬으로 차려낸 밥상. 안주인의 정성스러운 손끝에서 나온 음식은 조촐하지만 맛이 야무지다.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에 우리 어머니께서 쓰시던 그릇이에요. 어머님 돌아가시고 장독대를 정리하다 보니 큰 항아리 세 개에 그릇이 한가득 담겨 있더라고요. 새카맣게 때 묻은 것을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고 또 닦았지요.” 손 때 묻은 그릇은 어머니가 물려주신 귀한 재산이다. 며느리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그 그릇은 훗날 그의 딸의 품으로 넘겨져 추억의 가보가 되리라.
“아, 달다. 고구마 묵이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네. 강화에 살았어도 속노랑 고구마로 만든 묵은 처음 먹어봐요.” 이채봉 씨는 3년 전 서울에서 강화로 이사를 왔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 형제가 모인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꽃마니에뜨락을 찾았다. 안주인의 정성이 스민 음식에 사는 얘기 두런두런 나누다 보니 어느덧 몸과 마음이 넉넉히 채워진다. 누군가 이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말한다. “복잡한 데 있다 강화에 오니 진짜 쉬는 것 같다. 참 좋다….”



다사로운 가을 햇살 같은 부부

“한 바퀴 같이 돌까요?” 이 집 마당에는 이른 봄 복수초부터 시작해 사시사철 꽃들이 질서정연하게 피어난다. 지금은 구절초, 용담 등 가을꽃이 한창 만발할 때다. 식사를 하고 고 씨 아저씨와 함께 정원 구경에 나섰다. 그야말로 꽃 천지다. “한 500여 종이나 될까?” 집주인조차 제 집 마당에 꽃이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자라고 있는 것도 모르고 같은 종을 자꾸 심어놓아 아내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심고, 가꾸고, 바라보고, 나누고, 그저 꽃과 나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마당 곳곳에 있는 감나무, 대추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아이고,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갑자기 고 씨가 한숨을 낮게 내뱉는다. 사람들이 대추 열매를 따려고 나무 아래 핀 꽃들을 자근자근 밟아놓은 것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피어나는 생명을 보지 못한 가파른 마음이 안타깝다.
돌아오는 일요일, 꽃마니에뜨락에선 큰 잔치가 열린다. 몇 년 전 연을 맺은 손님이 꽃 피던 봄날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이집 뒷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국수 말아야죠. 예쁘게 차려 줘야지.” 부부는 어떻게 해야 두 사람의 출발을 아름답고 의미있게 열어 줄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부부는 앞으로도 고향 집에서 꽃 가꾸고 밥 지으며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갈 것이다. “가끔 ‘우리가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곤 해요. 다들 좋아하니까, 찾아오면 밥해드리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려고요.” “그럼 됐지 뭐.” 부부가 주름진 두 손을 마주 잡고 다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서 환히 웃는다.



※ 꽃마니에뜨락에서는 순무 김치 담그기, 연잎밥·꽃차 만들기 등 전통 식문화 체험과 식물 심기, 꽃 누르미(압화) 등 화훼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체험비는 1만 원에서 3만 원 선. 식사는 1인당 2만 원으로, 예약해야 한다. 부부가 직접 키운 연잎으로 만든 연잎 밥에 강화 음식으로 차린 정식이 한 상 가득 나온다.
문의 꽃마니에뜨락(강화군 불은면 화남 2길 20) 937-4665, 010-3396-6300, blog.daum.net/kosk0818



꽃마니에뜨락 안주인이 빚은‘강화의 맛’



순무김치 강화도 사람인 시어머니는 김치를 잘 담그셨다. 시누이들도 뚝딱뚝딱 음식을 잘 만들었다. 순무김치는 절이지 않고 썰어서 간을 잘해야 한다. 다시마로 국물 우리면 시원하고 맛있다.



속노랑 고구마 묵 고구마로도 묵을 만드는 줄, 강화에 와서야 알게 됐다. 너무 긴 시간 우리면 강화 속노랑 고구마 특유의 맛이 빠져나가 감칠맛이 덜하다. 다섯 번 정도면 적당하다.



사자발 약쑥 차 구증구포(九蒸九曝).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 거듭해 차를 만든다. 또 잎에 상처를 내 영양소가 우러나오도록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떫고 쓴 맛이 사라지고 향기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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