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수복호 사람들이 쓴 바다의 역사
수복호 사람들이 쓴 바다의 역사
‘수복호’는 50여 년간 인천 가까운 섬으로 굴을 따러 다니던 배다. 사진작가 김보섭은 이 배에 올라 뱃사람들의 눈물과 한숨 어린 삶을 거친
흑백 사진 속에 담았다. 작가의 사진집 <수복호 사람들>을 통해, 바다에서 굴을 캐며 희망을 끌어올린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사진 김보섭 사진작가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수복호’는 50여 년 가난한 사람들을 싣고 굴을 따 왔다. 칠득이 오반장, 금자엄마, 섭섭이 할머니, 넙순이 영배 엄마, 화수동 꼬부랑 할머니…. 대부분 이북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배 타고 섬에서 굴을 따고 또 밤새 굴을 까서 내다 팔며 어렵게 삶을 꾸렸다. 하지만 행복했다. 자식들 배고프지 않게 키울 수 있다면, 찬밥에 물을 말아 허기를 채우고 흔들리는 배 안에서 새우잠을 잔들 어떠리. 그렇게 어머니의 곱던 얼굴은 깊게 주름지고 섬섬옥수 같던 손은 두텁고 거칠어져 갔다.
초창기에 묵세기(배에서 며칠씩 자면서 굴 따고 다듬는 작업을 하는 것) 나갔는데, 하루 작업하고 나니까 그 담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심해. 그러면 일을 못하고 배 안에 있어야 되는 거야. 바람 불면 우리는 배속에서 굴러다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파도 때문에 하늘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때도 있지만 배에서 보면 하늘이 좋아.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떠다니고, 저녁때면 조각달이 요렇게 떠 있고.
어느 때는 이틀씩 작업을 못하고 바다에 떠 있었어. 배에서 3일씩 작업도 못하고 떠다니기만 하니까 선장이 집으로 간다고 거짓말하고 작업할 데로 가요. 파도가 너무 치니까 어찌어찌 바위들을 피해 배를 대고 작업하기도 했는데, 어느 때는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어.
배를 타고 돌아올 때, 판유리 공장이 보이면 다 온 거지. 대우중공업 뒤 굴막에서 집식구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었어. 굴 내리는 작업은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 잘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어. 마지막 힘을 다해서 내리는 작업을 마치면 끝난 게 아니라, 바로 또 굴 까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지.
지금은 굴막도 구청에서 만들어 주어 번듯하지만, 당시 부둣가 축대 위에 굴막을 처음 만든 건 나야. 축대 위에 비닐 막을 쳐 갖고 한 해 겨울 굴을 까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지각생’이 까고, 또 ‘섭섭이 할머니’가 까고 했어.
만석 부둣가 굴막은 30여 년 전에 굴 따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둘 만들어졌다. 무거운 굴 포대를 옮기느니 포구에 움막을 짓고 작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한창때는 굴 까는 사람만 수백여 명에 이르고, 40여 집의 불이 밤늦도록 켜져 있었다. 하지만 공장 담벼락에 기대어 가까스로 버티던 굴막들은 세월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바닷가엔 자식들 생각하며 밤새도록 칼질을 하던 우리 어머니들의 눈물과 한숨이 아직 남아 흐른다.
<수복호 사람들> 김보섭 | 눈빛 | 2008.04.
김보섭은 인천만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작업하는 인천의 사진작가다. 특히 개발로 인해 사라져 가는 도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사진집 <수복호 사람들>을 출간했다. ‘수복호’는 우리 어머니들을 싣고 50여 년간 굴을 따러 다니던 배다. 사진집 안에는 ‘끈끈한 바닷바람과 소금기가 진하게 밴’ 흑백 사진 88장이 담겨 있다.
- 첨부파일
-
- 이전글
- 내일, 더 높이 비상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