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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편린 박혀 있는 ‘똥고개’
2017-01-04 2017년 1월호
삶의 편린 박혀 있는 ‘똥고개’
이미 드론 높이다. 송현동 수도국산 일대는 벌써 충분히 높다. 가장 높은 곳에 서면 웬만큼 드론을 띄운 높이와 비슷한 산동네다. 그 동네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만고의 진리가 고스란히 적용된 곳이다. 100여 년 전 산 한가운데에 물을 채워 인천 아랫동네 각지로 수돗물을 내려보냈다. 여전히 그곳은 산동네 비탈길이다. 피란민들의 위태로웠던 비탈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 유동현 본지 편집장 드론 촬영 홍승훈 자유사진가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송림산(松林山) 혹은 만수산(萬壽山)이다. 일제는 1910년 이 산의 꼭대기에 노량진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배수지를 만들었다. 수돗물은 이곳을 출발해 그 아래쪽 경인철도를 건너 개항장 일대와 제물포항에 정박한 기선(汽船)에 물을 댔다. 주민들은 수돗물 배수지를 깔고 살았지만 정작 그 맛을 보지는 못했다. 수도관을 끌어 올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산 밑까지 내려가 우물에서 두레박질해서 길어 먹었다. 물통을 머리에 이거나 지게로 지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게 일상이었다.
6·25전쟁이 터졌다. 인민군이 쳐들어 왔다. 매일 밤 수도국산에서 집회와 인민재판을 열었다. 한 집에 한 명씩은 꼭 그 자리에 출석해야 탈이 없었다. 인민군이 물러나고 이북에서 피란민들이 내려왔다. 그들은 이 산 주변으로 들어와 솥단지를 걸었다. 일명 ‘하꼬방’이라 불리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들어섰으며 꼬불꼬불 골목길들이 생겼다. 전국 제일의 피란민 동네가 되었다.
수도국산은 근 100년 가까이 통제 구역이었다. 산 둘레에 철조망이 높게 둘러 처져 있었다. 경비원들이 24시간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만약 간첩이 배수지 물탱크에 독약을 타면 인천시민의 절반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통제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똥고개
산 중턱 빈 땅에는 너른 배추밭이 있었다. 시내에서 거둬들인 인분을 실은 마차들이 이곳으로 올라왔다. 매일 거름으로 쓰는 인분이 뿌려졌다. 사람들은 이곳을 ‘똥고개’라고 불렀다. 산 아래 동네 만석동, 화수동, 송현동에는 인천제철, 판유리 공장, 대성목재, 한국기계 등 커다란 공장들이 있었다. 1960년대 호남, 충남 등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배추밭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주택 단지가 되었다. 그들은 똥고개를 넘어 부두 근처의 공장으로 출근했다. 몇년 전 도로가 뚫리면서 사거리가 생겼다. ‘똥고개사거리’가 맞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황금고개사거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솔빛마을
배수지 주변 18만㎡(5만5천 평)에 1천800 채의 판잣집이 다닥다닥 들어선, 우리나라 대표적인 달동네 수도국산은 1998년부터 재개발되었다. 그 자리에 3천 가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솔빛마을’이 들어섰다. 당시 주공 아파트로는 전국 최대 단지였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2005년 10월 개관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실제로 이곳에서 살아온 피란민과 도시 빈민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다. 연탄을 배달하던 유완선 씨, 대지이발관을 운영하던 박정양 씨 등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생생함을 더한다.

어영대장 동상
일단 폼은 난다. 거침없이 달리는 근육질의 말과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은 위엄 있다. 산비탈 풀밭은 언뜻 보면 광활한 벌판으로 보인다. 어영대장 신정희 동상이 최근 송현터널 위에 세워졌다. 신정희는 1878년 8월 고종황제의 명을 받고 화도진(花島鎭)을 지은 인물이다. 화도진은 조선 후기 인천 앞바다에 출몰하는 외세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설치된 군영이다. 동구는 매년 5월 화도진 축제를 열고 신정희 어영대장 축성 행렬을 재연한다. 신정희를 지역 대표 인물로 설정해 ‘터무니없는’ 동상을 건립했다는 비판을 하는 시민 사회와 볼거리 제공과 지역 홍보를 위해 필요했다는 구의 ‘동상이몽(銅像異夢)’이 계속되고 있다.

송현터널 고가도로
현재 수도국산 내부에는 커다란 콧구멍처럼 길이 나 있다.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 간 산업도로의 일부 구간으로 터널이 건설돼 있다. 송현동 누리아파트 쪽으로 나온 터널은 다시 고가도로와 연결돼 공장 지대로 뻗어 있다. 첫 삽을 뜬 지 10년이 되었지만 개통은 미지수다. 누리아파트 자리에는 1967년에 설립한 숭덕중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1982년 남동구 만수동으로 이전해 여중과 여고로 분리되었다.

제수변실
송현배수지에는 상단이 원통형으로 생긴 제수변실(制水弁室)이 있다. 제수변실은 배수관의 단수 및 유압 조절 기능 등 물을 통제하는 제수 밸브를 보호하는 시설이다. 출입구 위에는 ‘백 번 흐르면 만 번 빛난다’는 뜻의 ‘만윤백량(萬潤百凉)’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돼 있다.

도깨비 촬영 계단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부근 송현근린공원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인기 드라마 ‘찬란하고 쓸쓸하神 -도깨비’가 송현근린공원에서 촬영되었다. 은탁(김고은 분)을 데려가려는 저승사자(이동욱 분)와 이를 막는 김신(공유 분)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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