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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들려주는 닭 이야기
2017-01-05 2017년 1월호
유물이 들려주는 닭 이야기
예로부터 닭은 개와 더불어 사람과 가장 친숙했던 동물 중 하나다. 아침이면 우렁찬 울음소리로 잠을 깨우고, 제 몸을 희생하여 여름날 무더위를 이기게 해주며,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빠지지 않는 안줏거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류와 함께 살아 온 닭, 그 닭의 해가 밝았다.
글 배성수 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사진 인천시립박물관

1927년 8월호 '별건곤' 표지사진을 응용해서 인천 시립박물관이 제작한 신년 그림엽서
훈련소에 갓 입소했을 때 제식훈련에서 열과 오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우리를 가리켜 조교는 ‘당나라 군대’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어슴푸레 알고 있는 상식으로도 중국 당나라의 군대는 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어째서 그런 표현을 쓸까 궁금했다. 받침이 많은 우리말의 특성 중 ‘자음동화’라는 것이 있다. 단어에서 두 자음이 연이어 올 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어느 한쪽의 발음이 바뀌거나 모두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닥나무가 ‘당나무’로, 독립이 ‘동닙’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훈련소 조교가 말했던 당나라 군대라는 것은 ‘닭나라’가 자음동화를 일으켜 당나라로 들렸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오합지졸이었던 우리의 모습이 시골집 마당에서 이리저리 제멋대로 다니는 닭의 무리, 즉 닭나라의 병사처럼 보였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중국의 역대 국가 중에서도 무력이 강한 축에 속했던 당나라 군대가 그런 취급을 받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처럼 닭은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한다. 우둔한 사람을 일컫는 ‘닭대가리’, 조는 모습을 가리키는 ‘닭 잡는다’, 세련되지 못한 사람에게 붙이는 ‘촌닭’ 등이 그것이다.

김유신 묘 12지신 호석 탁본 중 ‘닭’
사실 역사 속에서 닭은 인간에게 매우 이로운 동물이다. 아침을 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길조이자 땅을 지키는 12지신의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에 흰 닭이 등장한 이래 국가를 수호하는 신성한 동물로 숭상되었다.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은 신라라 불리기 전까지 나라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산세가 닭 벼슬 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이름 붙은 계룡산을 서악(西岳)으로 삼아 신성시하기도 했다.
전통시대 우리네 조상들은 마당에 닭을 놓아길렀다. 육질을 좋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마당에 서식하는 진드기나 모기 등 해충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근대에 수입된 의약품 이름에도 닭이 등장한다. 가장 유명했던 약이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 학질(말라리아)의 치료제 ‘금계랍(金鷄蠟)’이다. 금계랍은 1820년대 개발된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Quinine)을 음차한 것으로, 인천에 지점을 둔 세창양행에서 수입해서 판매했다. 약의 이름에 닭을 뜻하는 ‘금계’를 넣은 것은 닭이 모기를 없애주듯 이 약이 모기가 전염시키는 학질의 특효약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이지 않았을까? 아예 모기 퇴치제인 모기향을 출시하면서 닭의 이름을 사용한 것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오사카에 본사를 둔 대일본제충균(除?菌)주식회사는 경성에 지점을 두고 모기향을 판매했는데 그 이름을 ‘닭표 모기약’이라 했다.
후지산표 금계랍
뿐만 아니라 닭은 ‘삼계탕’처럼 영양가 만점의 음식으로도 사용된다. 닭이 사용된 영양식 중 인스턴트 라면이 있다. 삼양식품의 설립자 전중윤 사장은 전쟁 후 꿀꿀이죽을 사려고 줄을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이를 대신할 만한 서민들의 먹거리로 삼양라면을 개발했다고 한다. 라면을 개발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가격과 영양가였는데 당시만 해도 쇠고기 값이 비쌀 때라 닭고기를 사용해 라면 스프를 만들었다. 그런 이유에서 1963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으로 출시된 삼양라면의 겉봉과 스프 포장에 닭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닭은 제 온몸을 불살라 술자리를 풍성하게 해준다. 시원한 맥주와 곁들이는 통닭은 ‘치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국민은 물론 대륙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새해 첫 번째로 우는 닭의 소리가 우렁차고 시원할수록 그 해의 기운이 커진다고 한다. 정유년 새해 아침 닭의 첫 울음이 쩌렁쩌렁 울렸으면 좋겠다.
초기 삼양라면 스프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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