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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만든 다큐멘터리
커피로 만든 다큐멘터리
글 / 김정렬 인천공정무역단체협의회 상임이사
잘해야 본전인 시정 소식지 『굿모닝 인천』을 오랜 세월 멋스럽게 펴내고 있어 늘 든든한 후배가 연락을 해 왔다. 꽤 오랜만이라 반가운 맘이 앞서는데 이 친구 안부는 건성이고 다짜고짜 원고 부탁이다. 수화기 너머로 오간 몇 마디, 공정무역커피 잘 마시고 있다는 속삭임에 넘어가면서도 머릿속엔 태국 치앙라이 산꼭대기에 자리한 작은 마을 전경이 구름처럼 펼쳐졌다.
작년 이맘때다. 인천시와 함께 공정무역도시 인천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공정무역단체협의회(이하 인공협) 김성근 상임대표 일행이 태국 치앙라이 골든트라이앵글 지역 해발 1천500미터에 자리 잡은 파히마을을 방문했다. 미얀마와 오솔길을 함께 쓰는 이 작은 국경 마을이 공정무역커피를 생산하는 요크커피협동조합의 중심 마을인 데다 공정무역 다큐멘터리 로케이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웬 다큐멘터리인가? 사연인즉 이렇다. 인공협은 2014년 태국 치앙라이 요크커피협동조합과 공정무역 협약을 체결했다. 이 조합은 아카족 중심의 소수 민족이 모여 사는 파히, 리체, 팡콘 등 세 마을의 커피 농가가 구성원이다.
인공협은 이곳에서 생산한 원두를 한 번에 2~3톤씩, 연간 5회 정도 직수입해왔다. 그런데 거래 1년도 안 된 2015년 6월께 낭보가 날아들었다. 자기들이 치앙라이 시내에다 커피숍을 만들어 아카족 청년들을 바리스타로 채용하고 수익금은 마을 어린이 130여 명이 다니는 파히스쿨의 점심 급식비로 지원하고 있다는 자랑이었다.
아니 그럴 수가… 카페라니, 어떻게… 무슨 돈으로?
인천에서 보낸 생두 대금 일부를 공동체 기금으로 적립했고 그 돈으로 카페를 열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들의 능력으로 지속 가능한 일인가 걱정도 앞섰다. 이들은 소수 민족이라는 지위 때문에 수확한 커피 대부분을 거대 수집상에 헐값으로 넘기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합, 한 걸음 더 나아가 치앙라이 라찻팟대학과 함께 커피숍을 운영, 소수 민족 학생의 학비 지원도 한단다. 또 라오스 국경 지대에 위치한 치앙콩스쿨에도 취업 교육과 점심 급식비 지원을 위한 커피숍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니 이건 ‘대박’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도전이 공정무역도시 인천조성사업의 추진 방향은 제대로라고 증명한 것과 다름없어 감사했다.
공정무역의 프레임은 무상 원조가 절대 아니다. 저개발 국가 노동자 농민이 생산한 제품을 공정한(정당한) 가격으로 거래(구입)해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인천과 손잡은 지 2년도 안 된 소수 민족이 이를 실현하고 있다니 다큐멘터리 내용으로 부족함이 없다 판단됐다. 여기에 인천여성영화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참여가 더해져 희망 사다리 같은 공정무역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파렴치한 인간들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럽고 모두의 일상마저 흔들리고 있지만 우린 오늘도 다큐를 찍는다. 공정한 세상, 다 함께 행복한 공존 사회를 꿈꾸는 공정무역도시 인천의 촛불 커피로.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하며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알려진 고승 서산 대사의 선시는 인생의 빛과 소금으로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합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덮인 광야를 가는 이여 아무쪼록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그대가 남긴 발자국이 뒤 따라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인생은 참으로 절묘하다. 잘나가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광야로 내동댕이쳐지고 잠시 한눈팔다 보면 일어서 있으니. 아주 가까이 또는 먼 훗날이라도 너와 내가 몸부림친 흔적이 그들의 길잡이가 된다는 서산 대사의 가르침은 내 인생에 있어 공정무역은 어떤 발자국으로 남을지 뒤돌아보게 하고 그래서 두렵기만 하다. 선시는 평등과 공존은 사라지고 돈과 권력을 앞세운 우월한 갑을 관계만 존재하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예견했는지, 오늘도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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