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아시아 문화 교류의 ‘페이스메이커’
아시아 문화 교류의 '페이스메이커’
글 · 사진 / 유동현 본지 편집장
키타큐슈는 우리시와 1988년 자매 결연을 맺었다. 인천시립박물관과 키타큐슈 시립대학은 2014년부터 ‘한일학생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부터 19일 까지 4일간 인천시립박물관 상상발전소 청년자원봉사자 7명은 일본 근대화와 메이지유신의 근거지였던 고쿠라번(키타큐슈)을 비롯해 죠수번(야마구치), 하카타번(후쿠오카시) 지역을 답사했다. 이 기행에는 키타큐슈시립대학 문학부 학생 6명도 함께 동행했다.
야하타 제철소 흔적
아스카와 전기 로봇 박물관
규슈 철도기념박물관
공해도시에서 환경도시로
키타큐슈시는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고 현재는 혼슈와 규슈를 잇는 교통·경제의 중심지다. 1901년 일본 최초로 고로에 불을 지핀 야하타제철(현 신일본제철) 등이 자리 잡으면서 일본 4대 공업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6·25전쟁 때 이곳에 서 생산한 엄청난 군수품은 일본 경제의 쏘시개 역할을 했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로 회색빛 중화학도시가 되었고 앞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이후 키타큐슈는 엄격한 환경 개선 정책을 펼친 끝에 마침내 ‘환경도시’ 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른다. 110여 년 전 처음 불을 지핀 야하타제철의 용광로는 그대로 보존돼 있다. 거기에는 ‘190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첫 일정으로 키타큐슈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야스카와 전기를 방문했다. 1915년 설립된 이 회사는 설립 초창기 전기 모터 제조가 주력이었으나 점차 모터의 응용 분야인 산업용 로봇 제조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현재는 이 분야 세계 2위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5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로봇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제조’의 재미와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로봇 마을’을 개장했다. 특히 사람들과 로봇의 공존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이노베이션 센터(로봇박물관)가 유명하다. 엉킨 큐브를 건네받은 로봇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맞추기 시작하더니 90초 만에 ‘숙제’를 해결했다. 첫 삽을 뜨고 미궁에 빠진 인천로봇랜드의 난제도 술술 풀렸으면 하는 기대감을 갖고 박물관을 나섰다.
이어서 찾은 곳은 규슈 철도기념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본래 규슈철도가 사용했던 건물로 현재 등록유형문화재다. 이곳에는 지금은 퇴역한 오래된 기관차들과 객차 그리고 열차 사진, 승차권, 표지판 등 철도와 관련된 다양한 오브제가 전시돼 있다. 특히 ‘선망의 제복’이란 안내판이 달린 옛 철도원들의 복장에 눈길이 갔다. 한국 철도의 본향인 인천으로서는 철도박물관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모지항 바나나맨
출정의 비
키타큐슈시립박물관 자연사존
전장 출정의 출발지
1889년 개항 이래 대륙 항로의 관문으로 번성한 키타큐슈시의 모지항(門司港)은 런던, 함부르크 등과 항로가 연결되어 국제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다. 옛 모지세관, 구 오사카상선 등을 비롯해 아인슈타인도 묵었다는 미쓰이구락부 등 서양식 건물이 남아 있다. 이 항구는 쌀, 밀가루, 석탄, 황 등을 수출하는 국가 특별 항구로 지정되면서 번창했다. 특히 다이쇼 시대 초기 바나나 수입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대만 등에서 대량으로 들어왔다. 바나나를 고베로 보내기 전 상태가 나빠져 상품 가치가 낮아진 바나나를 즉석에서 싸게 판매하는 시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를 기념해 바나나 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해안에는 바나나맨 기념물도 있다.
어느 관광 포인트보다 눈길을 끄는 것이 항구 한 편에 있다. 모지항 출정의 비(門司港出征の碑)다. 이곳에서 만주사변 이래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200만이 넘는 장병이 출정했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인 100만 명이 다시는 일본 땅을 밟지 못한 사실을 전하기 위해 건립된 비(碑)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 여러 나라 국민들이 많은 고초를 겪으며 커다란 상처를 입은 침략 전쟁의 출발지였다.
이와 함께 군마(軍馬)에게 물을 먹였다는 작은 돌우물이 있다. 이 항구에서 동남아와 대륙으로 100만에 이르는 군마가 전장으로 끌려갔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말에게 작별의 물을 먹인 곳이다. 여러 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 곳만이 남아있다.
규슈국립박물관 기획전시실
규슈국립박물관 수장고
규슈국립박물관 면진시설
지진을 막는 ‘미래의 타임캡슐’
2002년 개관한 키타큐슈시립박물관은 ‘자연사 존’ ‘역사 존’ ‘교류 존’ 등으로 나눠져 있는 서일본 최대 박물관이다. 특히 자연사 존의 규모와 공용 관련 전시품이 눈길을 끈다. 지구의 탄생부터 신생대까지를 설명하는 티라노사우루스 등 다양한 공룡 화석들과 삼엽충 그리고 곤충 화석들을 볼 수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해외우호자매도시 박물관과의 인적·문화적 교류사업 확대를 위해 지난 2010년 키타큐슈시립박물관, 중국 대련시 여순박물관과 ‘동아시아우호박물관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그동안의 교류 내용이 키타큐슈시립박물관 한 편에 전시돼있다.
이웃 도시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국립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쿄, 나라, 교토에 이어 2005년에 개관한 국립박물관이다. 규슈 지역은 아시아 문화 교류에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 박물관은 일본 문화의 형성을 아시아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콘셉트로 개관했다.
답사팀이 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처음 안내된 곳은 전시실이 아니었다. 2층의 기계실이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쓰러져 문화재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면진(免震) 구조물이 설치된 곳이다. 실제로 이 내진 장치로 인해 몇 년 전에 발생한 진도 4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박물관은 진도 2의 충격만 받았다.
이어서 수장 공간을 탐방했다. 수장고 좌우에는 여러 방들이 배치되었고 상부는 전시실, 하부는 면진층으로 이뤄져 있다. 즉 상하좌우 모두가 외부와 직접 접하지 않도록 건물의 중심에 배치되어 있다. 수장고를 공기층이 설치된 이중구조의 상자 내부에 설치함으로써 최대한 외부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귀중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 ‘미래의 타임캡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시내에서 총 1만 명의 마라톤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2017 키타큐슈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키타큐슈 시청을 출발해 모지항을 돌아오는 풀코스(42.195㎞)이다. 지난해 이 대회에 인천시청 마라톤 동호회원 11명이 참가해 양 도시의 발전과 협력을 기원하는 우정의 레이스를 펼쳤다. 인천과 키타큐슈는 서로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골인 지점까지 힘차게 함께 달리고 있다.
박물관을 통한 ‘인-키-대’ 교류
인천시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키타큐슈시립대학과 양해각서를 맺고 한일학생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첫해는 ‘한국과 일본의 과자문화’를 주제로 작은 전시회 개최와 시민이 참가한 일본 과자 만들기 체험 ‘오후의 티타임’을 진행했다. 이어 2015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급식문화’를 전시했으며 한일 대학생이 함께 인천 개항장을 답사했다. 2016년에는 ‘후루룩 칼국수, 스스루 소바’를 테마로 전시회를 개최했고 시민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국수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인천-키타큐슈-대련 시립박물관 사이에 진행되어 온 동아시아우호박물관 교류사업의 틀에 발맞추어 앞으로 중국 대련시의 대학생과도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 첨부파일
-
- 다음글
- 지금, 봄에게로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