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인천, 내일 더 맑음
인천, 내일 더 맑음
‘all_ways_Incheon’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 110여 년 전 항구를 열고, 철도의 역사를 시작한 인천으로부터 길은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땅 길, 바닷길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하늘 길의 시작도 인천이었다. 그 길 위에 서서 인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본다. 그 네 번째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기상 관측소이자 한때 전국을 아우르던 중앙관상대였던 인천기상대를 찾았다.
글 /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 류창현 포토디렉터
인천기상대 내 1923년에 지은 창고 건물
자유공원 아래, 기상대 마을
봄이 무르익었다. 이맘때면 가장 아름답고 싱그러운 자유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원 가까이 있는 제물포고등학교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오르막길이 나온다. 햇살 드리운 언덕길을 따라 인천기상대에 다다른다.
잊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사이, 기상대가 110여 년 동안 인천 도심과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1905년 1월 1일, 응봉산 꼭대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기상관측소가 세워졌다. 여기엔 수탈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바다를 품은 인천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러일전쟁을 앞둔 일본은 군사 작전에 필요한 기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랴부랴 관측소를 세웠다. 당시 이곳은 국내 13개 도시의 측후소는 물론 멀리 만주 지방의 관측소까지 아우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또한 일본 기상대,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와 기상 정보를 주고받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났다. 월미도에서 핼리혜성을 관측하기도 했다. 초대 소장으로는 일본 중앙기상대장을 지낸 기상학의 권위자 와다 유지 박사가 부임했다. 그만큼 인천측후소의 위상은 막강했다.
일제 강점기의 인천관측소
오늘, 하늘에서 본 인천기상대
흰색은 맑음, 녹색은 흐림
인천의 기상대는 광복 이후까지도 중앙관상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53년 11월 서울에 중앙관상대가 세워지면서 측후소로 기능이 축소됐고, 1992년 3월 인천기상대로 승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순태(87) 어르신은 1957년 인천측후소에 처음 들어갔다. 해군에서 통신 관련 임무를 맡은 게 인연이 됐다. 그때는 제대로 된 기상 장비가 없어 기상 관측 정보를 통신으로 받아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야 했다. 그렇게 작성한 인천의 관측 정보를 서울기상대에 보내면 서울에서 다시 방송을 하는 식이었다. “지금은 장비가 좋아져서 얼마나 편해. 기상 관측과 예보도 정확해졌고. 이렇게 발달한 거 보면 그때 우리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 싶어.”
지금처럼 통신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상대 철탑 안테나에 깃발을 올려 기상 예보를 전했다. 날씨가 맑으면 흰색, 날씨가 흐리면 녹색 깃발을 올렸다. 흰 천이 걸렸는데 비라도 올 때면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어긋난 일기 예보를 질타하는 가파른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인공위성, 항공기, 슈퍼컴퓨터…, 아무리 최첨단 시설로 무장한들 인간이 대자연을 온전히 예측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1928년 쌓은 돌계단 위에서 / 옛 생각에 잠긴 방순태 어르신
변하지 않은 건 하늘 뿐
“다 변했어. 나무는 그대로네. 대신 요만하던 녀석이 이렇게나 컸어. 허허.”
세월은 흘러 흘러,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천둥 번개라도 치는 날엔 마음 졸이며 하늘을 지키던 청년은 이제 백발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아직 인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통형의 하얀 기상대 건물은, 2013년 신청사가 들어서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인천기상대의 상징이었다.
변함없는 건, 관측 노장이 있는 봉긋한 언덕까지 이어진 돌계단과 1923년 4월에 지은 창고 건물이다. 빨간 벽돌을 쌓아 올린 네덜란드 식 건축물에선 고풍이 흐른다. 건물 정면에는 우아한 아치형 문이 있고, 옆면 양쪽에는 직사각형 창문 두 개가 단출하게 나 있다. 초록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도 멋스럽다.
“예전에는 이 안에 손으로 쓴 기록물이 가득 쌓여 있었어. 지금은 참 좋게도 만들어놨네. 세상 좋아졌어.” 옛 창고 건물은 시청각 교육 자료가 있는 역사관으로 쓰인다. 역사·문화적으로도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인천기상대 내 ‘세계지진관측망 인천관측소’ 이곳은 한국 최초의 지진관측 시발점이다.
평년보다 빠르게 찾아온 봄 물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기상 관측소이자 한때 전국을 아우르던 중앙관상대였던 인천기상대. 지금은 비록 중심에서 멀어졌지만, 바다와 공항을 품은 인천이기에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
“안개는 비, 바람보다 더 무서운 존재예요. 해무가 짙게 깔리면 해상 교통과 어업 활동이 위험해 지고, 통신에도 문제가 생겨 해상 자료가 잘 수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흐린 날엔 관측에 더 각별히 신경 씁니다.” 인천기상대는 날씨에 민감한 섬 주민과 강화 농민들을 위해 ‘해상기상서비스’와 ‘농업기상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올봄 인천 날씨는 어떨까? 아침 공기만 스쳐도 그날의 날씨를 직감한다는, 정길운(60) 인천기상대장에게 물었다. “작년보다 봄이 일주일 정도 빨리 온 거 같아요. 평년 기온인 11.5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평년보다 빠르게 찾아온 봄 물결. 그 온화한 기운이 인천의 앞날에 가득하길 바라며, 기상대 문을 나섰다.
기상대 들어가는 길목의 ‘기상대 슈퍼’ 1976년 ‘공원가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었다.
- 첨부파일
-
- 다음글
- 우리 집, 미니 발전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